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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희 Oct 21. 2020

종이 위 활자로 아름다움을 노래하다

시인 안도현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몇 번이나 있던가. 성인이 되고, 사회에 발을 딛기 시작하면서 누구나 외면이 단단해지는 시간을 겪는다. 거친 사회에 더 잘 적응하기 위해, 또 여러 사람과 살아가면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 시간들을 지나면서 우리는 어린 시절의 마음을 점차 잊게 되는 것 같다. 얼마나 순수하고, 유연하고, 섬세했는지. 또 곁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에 얼마나 기민하게 감동할 줄 알았는지.

해를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바닷물결, 꺄르르 웃는 아이의 함박웃음, 반가워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의 발걸음, 폭 안겼을 때 느껴지는 상대의 체온… 저마다 그 순간은 다르겠으나 마음이 움직이는 장면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얼마 전, 한없이 건조해 보이는 미색 종이 위 까만 활자를 읽어 내려가다 가슴이 저릿했다.


“네가 아프지 않으면 나도 아프지 않은 거야.”
은빛연어는 눈맑은연어가 남기고 간 말을 곰곰 되씹어본다. 네가 아프지 않으면 나도 아프지 않은 거야, 라는 그 말을. 그 한 마디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 한 마디 말이 벌써 은빛연어의 가슴 깊은 곳까지 들어와버렸나?


안도현 시인이 어른들을 위해 쓴 동화 <연어>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를 만나기 위해 경상북도 예천으로 향했다. 고속도로 곳곳은 얼마 전 산천을 휩쓸고 간 태풍의 흔적을 지우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었다. 산에서 쏟아져 내린 흙을 메우고, 날아가버린 안전장치를 세우고, 부서지거나 흠이 생긴 곳을 점검하는 모습이 심심찮게 보였다. 여러모로 치유와 복구가 절실한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마음을 어루만졌던 문장처럼.

오는 10월 마지막 주 수요일, 경기도 문화의 날을 맞아 경기아트센터는 ‘안치환이 부르는 안도현의 시’라는 콘셉트의 공연 <가을의 소원>을 준비했다. 무대 위에 꾸려진 시인 안도현의 서재에 가수 안치환이 초대돼 대담을 주고받는 토크 콘서트 형식의 공연이다. 8년 만에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라는 제목의 새 시집을 내면서 “(신간이) 더없이 각별하지만 얼마만큼 한걸음 더 나아갔는지 내게 자꾸 묻게 된다”는 그가 바라는 올가을의 소원은 무엇일까.



전주에 오래 계시다 최근 고향으로 돌아오셨다고 들었어요. 이사는 지난 2월 말쯤 했어요. 스무 살 이후로 전라북도 전주에서 40년을 살았어요. 거기서 학교 다니고,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직장생활도 했죠. 글 쓰는 사람으로 자리를 잡은 곳이 전라북도인데, 지난해부터 단국대학교로 강의를 나가게 됐어요. 학교를 옮기고 나니 기왕이면 인생 후반부를 고향에서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곳은 예전에는 대여섯 집이 있던 조그만 마을인데 지금은 그나마 몇 집 없는 동네예요. 제가 태어난 곳을 찾아온 거죠. 이제 꼬박 반년 됐네요.


의미 있는 곳에 멋진 집을 지으셨네요. 보통 사람들이 서울에서 생활하다 고향에 돌아가는 것을 ‘하향한다’고 하잖아요. 내려간다는 거죠. 교수로 정년을 마치고 하향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내가 조금이라도 활동할 수 있을 때 고향에 가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려고 했어요. 고향을 위해서 뭔가 해 보고 싶은 여러 가지 생각이 있었죠. 얼마 전에는 <예천산천>이라는 계간지를 냈어요. 예천의 사람과 문화, 역사를 외부에 알리기 위해 예천 사람들과 함께 만든 책이에요.


오는 10월 경기아트센터에서 ‘안치환이 부르는 안도현의 시’를 주제로 무대를 준비하고 있는데요. 제가 쓴 시 중에 노래가 된 것이 적지 않아요. 다 모으면 거의 100곡쯤 되지 않을까 싶네요. 독자들은 잘 몰라요. 히트곡이 없기 때문에.(웃음) 이전에 시인 중에 김용택·도종환·정희성·나희덕, 가수 중에 안치환·김원중…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동인을 만든 적이 있어요. 시노래 모임 ‘나팔꽃’이라고. 5~6년 전까지 전국을 돌아다니며 공연도 했죠. 그때 가수들과 인연이 됐어요. 안치환도 당시에 자주 만났죠. 마침 경기아트센터에서 이런 공연을 해 보자고 제안을 했어요. 최근 2~3년 사이에 안치환이 제 시로 부른 노래가 두세 곡 있는데, 그것들을 중심으로 무대를 꾸려보려고 합니다.


중년 세대에게 특히 인기 있을 공연이네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공연이 좀 낡았다는 거네요. 나는 20~30대가 좋아하는 공연을 하고 싶은데.(웃음) ‘나팔꽃’ 멤버만 봐도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포크송 계열 가수들이 많아요. 그런 장르를 즐기던 사람들이 대부분 50대 이상이니 실제로 공연할 때 보면 객석에 그 연령대의 관객이 제일 많죠.


수많은 시가 노래로 재탄생했는데요. 그중에서 선생님이 좋아하는 곡은 어떤 것인가요. 안치환이 부른 노래 중에 <연탄 한 장>이라는 시가 있어요. 나는 잘 못 부르지만…. 그리고 가끔 듣는 노래 중에는 양희은이 부른 <사랑, 당신을 위한 기도>. 그렇게 두 곡 떠오르네요.


시는 노래만 아니라 다른 장르와도 자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시는 ‘종이 위에 활자로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런데 시가 무용이 되거나, 그림이 되거나, 또 노래가 되는 경우가 가끔씩 있거든요.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시는 노래를 만날 때 가장 행복해지는 게 아닐까 싶어요. 요즘 발표되는 시들은 시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던 운율과 리듬으로부터 멀어진 경우가 많아요. 저조차도 운율에 배려를 많이 하지 않는 편이니까요. 그런데 노래라는 건 리듬을 그 자체의 몸으로 갖고 있잖아요. 시가 노래의 리듬을 얻게 되니까 가만히 갇혀 있던 시가 날개를 달고 날아가는 느낌이랄까요. 또, 시라고 하면 대중이 좀 어렵게 느끼지만 노래를 통해 누구에게나 훨씬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거죠.


‘시’라는 예술은 그 자체로 다른 예술에 많은 영감을 주는 존재인 듯합니다. 예전에 만난 어느 화가가 자신은 제자들에게 그림을 가르칠 때 스케치를 많이 하기보다 시를 많이 읽으라 한다고 해요. 그 이유를 물었더니, 시가 대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가르쳐준다는 거예요. 똑같은 사과가 있어도 시에서 다루는 걸 보면 어떤 식으로 대상을 바라봐야 하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죠. 그걸 알게 되면 그리고 싶은 대상을 잘 그리고, 또 남들과 다르게 그릴 수 있겠죠. 시라는 예술 양식 자체는 인류의 시작과 함께 태동한 것이지만, 요즘 관점에서는 좀 케케묵은 느낌이 들기도 해요. 다만 시가 다른 장르의 예술을 만나면서 원래 가지고 있던 기능들이 점점 분화되는 느낌은 있어요. 때때로 광고 카피가 되고, 무용가에게는 영감을 주는 메시지가 되기도 하죠. 그러니 시 자체는 낡은 양식이지만 시가 해야 할 일은 아직도 많지 않을까요?


양식이 고전적이기 때문에 더 많은 것들이 가능한 것이겠죠. 그렇죠.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해요. 소셜 미디어 시대에 시라는 양식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 요새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오래 읽고 탐구하기보다는 빠르게 보고 넘기잖아요. 소셜 미디어가 대체로 그런 성격이고, 시가 그에 적합한 양식이죠.


시가 ‘다르게 보는 법’을 알려준다고 하셨죠. 그 대상이 되는 글감과 영감은 어디에서 발견하시나요. 일상이라는 게 사실 좀 지겨운 거잖아요. 되풀이되는 생활이죠. 그런데 우리가 그 일상이 지겹다고 생각하면 살기가 좀 힘들지도 몰라요. 그렇죠? 시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것 중 하나가 ‘세상을 낯설게 보기’예요. 지겨운 일상의 틈새에 있는 어떤 것을 낯설게 보기 시작하면 일상 자체가 굉장히 새로워지기도 하죠. 늘 보던 익숙한 얼굴이지만 새끼손가락의 손톱이 그 사람을 다르게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처럼. 자꾸 낯설게 보기를 시도하는 시가 일상에 아주 작지만 정서적 충격을 주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트위터를 하고 계시죠. 시작한 지 몇 년 됐어요. 8년쯤 됐나… 요즘은 잘 안 들여다봐요. 한창 열심히 할 때가 있었죠. 어떤 때는 트위터를 내 일기장처럼 활용해 보기도 하고, 메모장처럼 쓰기도 했어요. 140자 제한이 있으니 딱 좋죠. 트위터에 쓴 글 244편을 엮어 <안도현 잡문>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어요. 시라고 생각하지 않고 메모하듯, 일기 쓰듯 썼는데 가끔 읽어 보면 시 같기도 하고 그래요.


이전에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칼럼에 이런 문장이 있더군요. “내 시에 걸려든 것!” 독자들에게 내 작품이 어떻게 읽히기를 바라시나요. 시를 막 쓰고 발표할 당시에는 잘 몰라요. 가끔 독자를 염두에 두고 시를 쓸 때가 있어요. 그렇지만 독자의 입맛에 맞는 시를 쓰기 위한 건 아니죠. 적어도 내가 시를 쓰면서 느낀 ‘요만큼’을 독자들도 최소한 느낄 수 있어야 하잖아요. 나는 겨우 1 정도만 쓰고 독자는 10을 느끼기를 바라는 시인이 많은데, 대부분 실패해요. 내가 느낀 만큼 독자와 공감하려면 시인은 자기 말만 하면 안 되고, 자의식도 어느 정도 조절해야 하고, 목소리의 톤도 조절해야 하죠. 여러 가지 배려할 것이 많거든요.


그 배려는 소통을 위한 것인가요? 그렇다고 독자와 100% 완전히 소통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웃음) 손을 떠나는 순간, 내 시가 아닌 거니까요. 옛날에야 시인의 의도와 세계관을 이해하고 시를 읽어야 한다고 했는데, 요즘은 안 그렇거든요.


다작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시를 쓰는 것만 아니라 시를 소개하는 데도 적극적이시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수능이 끝나면 시를 안 읽더라고요. 여성들은 결혼하면 안 읽고, 아이 낳고 나면 바빠서 더 안 읽고… 남성들도 마찬가지예요. 연애할 때는 좀 읽는 척하다가 결혼하면 완전히 돌아서죠. 제가 20대였던 1980년대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집회가 열릴 때면 연단에 오른 사람이 시 구절을 읽으며 시작을 알리기도 했죠. 어떤 사람들은 그때를 ‘시의 시대’라고도 불러요. 그때만 해도 시가 현실과 현장 속에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시가 시험 문제 속으로, FM 라디오 방송 속으로 들어가 버렸죠. 시를 쓰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스스로 시를 읽는 일이 재밌어서 시를 쓰도록 해 봐야겠다. 시를 읽는 일은 굉장히 즐거운 거거든요. 다만 사는 일이 바빠서 사람들이 그걸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읽은 시 중에서 좋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엮어서 책도 내고, 신문이나 방송에서 소개하기도 하죠.


데뷔작으로 꼽는 두 편의 시 ‘낙동강’(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서울로 가는 전봉준’(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은 비슷한 시기에 나왔지만 결이 상당히 달라요. ‘낙동강’은 대학교 1학년 때 쓴 시예요. 1961년에 태어나서 고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대통령이 한 사람이었어요. 다른 대통령이 당선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고, 그런 말도 할 수 없던 시기였죠. 스무 살이 되어 대학에 입학했고, 그즈음 대학 안에 꽁꽁 묶여 있던 생각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어요. 얼마 안 있어서 광주항쟁이 일어났죠. ‘낙동강’은 역사나 사회에 대한 의식이 그렇게 여물지 않은 때 쓴 시라면, 3년 뒤에 낸 ‘서울로 가는 전봉준’은 광주항쟁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고 동학농민혁명에 대해 공부한 시기의 영향을 받았어요. 전봉준의 실패와 광주의 좌절을 오버랩시켜 보고 싶었던 거예요. 표현의 자유가 없던 시기이지만 세상이 변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던 나이였기에, 전봉준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빌려왔죠.


1996년에 출간한 <연어>는 100만 부 넘게 판매됐는데요.‘어른을 위한 동화’만 아니라 ‘동시그림책’도 내셨죠. <연어>는 나온 지 이제 20년도 더 됐네요. 중·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있던 당시에 쓴 책이에요. 아이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동화를 집어던지고 소설을 읽게 돼요. 그 시기부터 죽을 때까지 동화책은 거들떠보지 않는 거죠. 유럽이나 남미에는 동화에서 소설로 넘어가는 시기에 징검다리처럼 읽고 넘어가는 장르가 있어요. 대표적인 작품이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예요. 완전한 동화도, 소설도 아니고 중간쯤 되는 양식의 작품이죠. 이전부터 그런 글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중에 나온 게 <연어>이고, 그 책이 독자들의 호응을 받다 보니 그만 쓸 수 없어서 <연어 이야기>까지 냈죠. 또 동시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요.


좋은 작품이란 어떤 것일까요. 보통 학교에서 수업할 때, 문학의 기능을 두 가지로 설명해요.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하나는 흥미, 재밌어야 한다는 것. 다른 하나는 뭔가 전달하는 것, 교훈성이나 교육적 효과를 말하는 거죠. 문학에 한정해 말하자면, 일단 문학예술은 재밌어야 해요. 그동안 문학은 너무 심각해 보이는 측면이 있었잖아요. 흔히 따라다니는 말들, 작가의 세계관, 인생관, 존재… 그런 것 말고 재미가 더 강조돼야 할 것 같아요. 수업을 하던 중에 학생들하고 한 이야기인데… 요즘 젊은 친구들은 스마트폰을 좋아하잖아요. 뭐든 다 할 수 있으니까. ‘우리가 스마트폰 속에 있는 콘텐츠보다 더 재미있는 시를 쓸 순 없을까?’ 쉽게 안 되겠지만, 꿈꿀 순 있잖아요. 언젠가 그런 시기가 오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런 즐거움이 전해질 때 감동이 생겨나게 될까요? 뭔가 심각하게 이야기를 하다가도 어디선가 깔깔 웃으면 자연스럽게 쳐다보게 되잖아요. 왜, 무엇 때문인지 모를지라도요.


김태희 디자인이끼 에디터. 문화예술과 공연예술을 기록하고 아름다운 형태로 엮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제12회 젊은 비평가상을 수상했다.

사진 조주호


*경기아트센터 매거진 [예술과만남] 2020 10/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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