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오브제

뾰족한 코, 둥근 입술

버선

by 김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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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搏沙) 고깔에 감추오고 /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 오동(梧桐)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 조지훈 ‘승무’


버선목부터 단 한 번의 붓질로 그린 듯 매끈하게 떨어지는 수눅, 하늘로 살짝 올려붙인 버선코, 도톰한 발바닥의

선을 따라 밀착한 앞부리와 뒤축. 직선과 곡선이 화합하며 만들어내는 미감은 우리 전통복식이 가진 매력이지요.


저고리의 둥근 소매와 가슴 아래로 풍성하게 부푼 치맛자락, 그 아래 고개를 빼꼼 내민 새하얀 버선의 맵시는 여성의 자태를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버선은 발을 보호하기 위해 남녀노소 누구나 착용했지만, 그중에서도 춤추는 여인의 버선발만큼 아름답고 정결한 것도 없지요. 앞꿈치를 꺾어 버선코의 콧대를 세우고 뒤꿈치부터 내디뎌 물결이 일렁이는 듯한 발디딤. 땅을 디뎌 사람을 통해 하늘에 닿고자 하는 순환의 원리가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발현됩니다. 우아한 백조 이면의 치열한 자맥질처럼 무용수의 고고한 움직임에는 둥근 치마 속 살짝살짝 얼굴을 내비치는 숨은 공신이 있답니다.


글 김태희 | 사진 전강인


※국립극장 「미르」 2017년 8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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