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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에 Nov 09. 2021

나는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내가 보는 나’와 ‘남이 보는 나’

zoe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지는 않을까?

내 첫인상이 안 좋으면 어쩌지?

저 사람은 왜 나를 보고 웃지 않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신경 쓰느라 정작 ‘나는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도 없이 살아가고 있지는 않나요?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어 주도적으로 살아내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탐색하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내가 보는 나 자신’이 늘 못마땅하고 부정적이고, 부끄러운 존재라면 남들에게도 내가 좋은 모습으로 비칠 리가 없습니다. 즉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나를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달라집니다.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인생의 모든 면에 영향을 주고 스스로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면 세상도 우리를 딱 그만큼의 가치로 평가합니다. 

  



 ‘사람들이 보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요?’  

‘남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를 생각하지 않는다.’ 

(정신과 의사, 알프레드 아들러)


나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은 매우 주관적이고 일시적이며 심지어 통제할 수도 없습니다.    

 

사실상 우리는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 그 사람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비친 그 사람의 모습’, ‘투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투사 (Projection)는 심리학 용어로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자신의 행동과 생각을 마치 다른 사람의 것인 양 생각하고 남을 탓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일한 사람'에 대해 서로 각기 다른 평판을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눈에는 그가 정말 유능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비치는 반면 누군가의 눈에는 보기만 해도 괜히 거슬리는 ‘얄미운 밉상’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어떤 사람은 그를 맑고 투명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마치 깨끗이 닦지 않은 뿌연 안경을 끼고, 미움과 질투에 가득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본 것입니다.   

      



‘나는 타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타인들의 시선, 인정과 평판에 자신의 정체성의 기반을 두면 점점 ‘나다운 나’는 사라지고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맞추어 사는데 연연하는 허무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멋져 보이기 위해 다양한 가면(학력, 돈, 명예, 인맥 등)을 쓰고 그것이 마치 ‘나’인 것처럼 살다 보면 어느 날 문득 ‘타인의 시선 속에 갇힌 자신의 모습’과 마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타인의 시선이라는 허구‘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내 입장, 내 기분, 내 상태’ 즉, 나에게만 초점을 맞춰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를 수동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저 사람이 저렇게 행동하는 데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에 관점을 두고 주도적이고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나를 질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내가 그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란 뜻이고, 누군가가 나를 비판하고 판단한다면 그들은 나에게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향한 부당하고 억울한 타인의 시선에 대해서는 스스로를 위해 친절한 설명이나 억울함을 증명해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마음의 거리두기, 경계선     

일상의 삶에서 시간을 내어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확보해 보세요.


나의 민낯과 마주하는 시간,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마음의 소생’이 이루어지는 선물 같은 시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들은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끌어안고 서로의 따뜻한 체온을 유지 하지만 서로의 날카로운 가시에 찔려 고통스럽고 아프기 때문에 끌어안다가 떨어지고를 반복합니다. 그러면서 서로 상처 주지 않고 따뜻할 수 있는 적절한 거리를 찾아갑니다.

(쇼펜하우어의 ‘고슴도치 우화’ 중에서)    


사람들도 혼자는 외로워서 서로를 간절히 필요로 하지만 너무 가깝게 지내다 보면 서로의 상처에 찔려 고통을 받습니다. 그러다 보면 상처 받지 않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관계 자체를 회피해 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면 상대와 관계를 단절하지 않으면서도 불필요한 상처를 받지 않을 정도의 거리는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감정, 욕구를 표현하는 것, 하고 싶지 않은 것은 솔직하게 말하고 상대방의 질문이나 뜻을 어디까지 수용할지에 대한 ‘결정권’이 나에게 있음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나의 사생활에 대해 과도하게 구체적으로 묻는 어른들에게는 ‘제가 지금 말할 준비가 안 된 것 같습니다.’와 같이 입장을 말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나를 향한 많은 시선들’에 연연하기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좀 도 긍정적으로 바꾼다면 타인의 시선에 덜 상처 받고, 더 관대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타인의 평가에 연연할수록 정체성을 읽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외부의 시선과 내면의 목소리 어느 쪽에 중점을 둘 것인가?

(에픽테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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