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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Yonu Sep 02. 2023

비행기에서 바선생을 만나다


새벽에 싱가포르에 도착해 해돋이를 봤던 경험도 뒤로하고... 출국날이 다가왔다.



출국부터 쉽지는 않았다. 마닐라 상공 기상이변으로 인해 출발은 1시간 가까이 지연됐고...


내 자리 모니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싱가포르 항공 승무원들이 4번이나 내 자리를 다녀갔다. 4번이나 모니터를 리셋했으나 오작동은 여전했다. 덕분에 지루한 비행을 겨우겨우 이어가던 찰나,


바선생이 출몰했다.

어두운 기내에 내 커피 컵 근처에 시커먼 물체가 왔다갔다하길래 불을 켜고 보니 바선생이 맞았다. 갑자기 쏟아진 빛에 바선생은 황급히 자취를 감췄고 잡아보려던 나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승무원에게 항의하려다가, 아무래도 확실한 물증이 있어야겠어서... 커피 한 잔을 다시 부탁하고 바선생을 잡기 위한 함정수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바선생을 카메라에 담는 데 성공했다. 바선생의 모습은 카카오톡 이모티콘으로 가렸는데 대충 사이즈도 저만했다. 실물 사진을 본 친구들은 "와 진짜 커"하며 "기절할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는 이미 모니터 문제로 진이 빠진 상태였다. 이 증거물(바선생 사진)을 승무원에게 보여주고 항의를 할까 말까 고민까지 했다. 그만큼 나는 지쳐있었다.


그러다 화장실 근처 좌석의 중국인들이 삼삼오오 이야기의 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을 봤다. 마침 나도 화장실에 가는 길이었어서, 기다리는 동안 그들에게 "내가 비행기에서 뭘 봤는지 보여줄까?"하고 바선생 사진을 보여줬다.


사진을 본 중국인들은 "캌크로취!! 캌크로취!!"하고 소리 지르며 당장 승무원에게 얘기하라고 했다. 게다가 오히려 자기들이 나서서 지나가는 싱가포르 항공 승무원을 붙잡고 "이 사람이 찍은 사진 꼭 봐라. 기내에 캌크로취가 있다"고 나 대신 나서주었다.


그리 많은 비행을 경험하진 않았지만 기내에서 벌레를 만난 건 처음이었다. 싱가포르 항공 관계자는 내 바선생 사진을 찍고, 바우처를 줬다.


사실 모니터 고장으로 바우처 한 장을 이미 받았으니 바선생으로 인한 바우처 한 장을 추가하면 총 두 장의 바우처를 받았다.


하지만 이번 비행에 너무 실망해 싱가포르 항공을 향후 이용할 일은 없을 것 같고, 바우처도 사실상 쓸모없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당근마켓에 올려야 하나...


즐거웠던 싱가포르 여행. 마지막 귀국 편 비행기 때문에... 오점이 하나 남은 느낌이다. 이것도 추억으로 남겨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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