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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Yonu Apr 07. 2024

느릿느릿 '코타키나발루 타임'

한국에는 '코리안 타임'이 있었다. 약속시간을 정시에 지키지 않고 늦는 문화였다. 하지만 누구보다 성격 급한 한국인들이기에 이제는 친구와의 약속도 정시에 혹은 조금 일찍 도착하는 게 예의가 됐다. 비즈니스라면 더더욱.


이와는 반대로 코타키나발루는 모든 게 느리다. 12시에 영업을 시작한다고 해서 식당에 가면 12시부터 개점을 시작해 거의 1시나 돼야 '주문'이 가능하다. 음식 나오는데도 또 한세월이다. 12시 영업 시작이면 11시부터 영업을 준비해 개점과 동시에 주문과 서빙이 이뤄지는 한국과는 정말 다르다.


나는 자유여행 파고, 여행 계획도 대충 세워서 간 뒤 현지에서 정보를 주워 들어가며 떠도는 편이다. 하지만 스노클링과 반딧불이 체험은 하루짜리 코스로 미리 예약을 해서 갔다.


 


아름다운 코타키나발루 바다에서 스노클링을 즐기고 남은 것은 반딧불이 투어였다. 그런데 코타키나발루에서 또 배를 타고 다른 섬으로 나간 상황이었기에 다시 돌아가서 반딧불이 투어 시작 시간을 맞추는 게 문제였다. 나는 가이드 아론 Aaron에게 수차례 "늦으면 어떡하냐"라고 물었고 돌아온 답변은 "늦어도 돼~ 내가 데려다줄게~"였다.


반딧불이 투어 출발 차량 탑승 시간은 3시. 우리는 정말 늦고 말았다. 돌아오니 3시 20분이었다. 아론은 수차례 질문 세례를 퍼부은 나와 다른 한국인을 차량 탑승지로 아주 느긋하게 데려다줬다. 그런데 차는 비어있었고 탑승자도 나와 다른 한국분 2명뿐이었다. 아론과 안면이 있는 반딧불이 투어 가이드는 밖에서 전자담배를 피우며 정말 아무 문제없다는 듯 여유를 즐겼다. 기다리다 보니 오히려 우리가 일찍 온 승객들이었다. 중국인들은 20분을 훨씬 넘겨 차에 탑승했다.(만만디?)


반딧불이 투어지에서도 우리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가이드들은 음악을 틀어놓고 즐기기에 바빴다.

막간이용 DJ Tommy의 트러블메이커

가이드 탕탕은 DJ Tommy라는 예명으로 주말에 클럽에서 디제잉을 한다고 했다. 주중에는 클럽이 쉬기 때문에 가이드 일을 한다고. 2000링깃이나 주고 샀다는 스피커를 들고 다니며 어디서든 음악을 틀었다. 이번에는 한국인인 나를 위해 현아&장현승의 트러블메이커를 틀고 가사까지 따라 부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저 인생이 즐겁다는 그를 보며 조금 부럽기도 했다.


간식과 저녁도 제공해 줬지만 출발을 하도 안 해 결국 왜 출발 안 하냐 물어보니 돌아온 대답은 "아직 타고나갈 보트 주인이 안왔엉~"였다. 결국 보트 주인이 올 때까지 또 기다려야 했고 주인이 온 뒤에야 우리는 출발할 수 있었다.

심심함을 못 참기 때문에 그동안 나는 나대로 낚시하는 사람들도 구경하고 보트 주인의 아이들 여섯 명이 노는 모습도 구경했다. 특히 막내인 이제 돌 지난 듯한 어린 아기는 나의 까꿍놀이를 좋아해 줬다. 기다리는 동안 원숭이 가족도 봤다.



담수호 투어를 나가서 아주 잠깐 야생의 악어도 봤다. 가이드가 처음에 악어가 있다고 해서 거짓말일줄 알았는데 진짜 있었다! 물론 야생의 악어인지라 배를 보자마자 바로 물속으로 숨어버렸다.


문제는 석양과 반딧불이 투어를 갈 때 갑자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일정이 취소되나 했는데 5링깃짜리 우비를 입은 채 우리는 억수 같은 비를 뚫고 다시 담수호로 나갔다.



진짜 이 비를 뚫고 나갔다.



다행히 석양 즈음에는 잠시 비가 잦아들어 바다와 석양을 함께 보았다. 다만 반딧불이를 보러 갔을 때는 또 비가 억수같이 내려 기대했던 것보다는 적은 반딧불이를 볼 수 있었다. 그래도 반딧불이 한 마리를 손에 쥐어보는 경험도 했다. 따뜻했다. 당연히 다시 놓아줬다.


코타키나발루의 시간은 느리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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