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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Yonu Sep 17. 2019

아니야, 나쁜 건 다 일본꺼라구!

Rugulopterix okamurae를 아시나요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드리드로 가는 비행기에서 만난 페페아저씨와의 이야기다.


통성명을 했는데 이름이 페페라길래 당연히 이 페페 더 프로그부터 떠올랐다구요


이 개구리 말고 스페인 생태학자 페페아저씨.

내가 "어? 그 개구리?" 하니까 페페아저씨가 개인적으로 이 개구리를 싫어한다고 했다. 아마 놀림 좀 받으셨던 듯.

미안합니당. 호호호.




스페인 태생이나 독일에서 공부했던 페페아저씨는 프랑크푸르트에 사는 자신의 옛 동료가 급히 수술을 해서 병문안을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나도 친구 때문에 프랑크푸르트를 방문했고 거의 열흘 가까이 있었다니까 놀란 토끼눈을 하며 "아니 대체 거기서 열흘 동안 뭘 했어?" 한다. 네, 그렇습니다. 프랑크푸르트는 이틀이면 충분해요 정말. 그래도 나는 친구들이랑 재밌었다. 근처 도시도 구경 가고, 한 이틀은 푹 쉬고 호텔에서 만난 그리스 할아버지 톰, 아일랜드 데이터 분석가 조쉬랑도 잘 놀았다. 물론 런던에서도 놀림받았다. 무슨 여행자가 프랑크푸르트에서 일주일씩 머무르냐고. 하하하. 웃음 줬으면 됐지.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자, 그는 자기 조카가 BTS를 좋아한다며 조카에게 오늘 자신이 BTS의 매니저를 만났다고 거짓말 칠 것이라고 유쾌하게 웃었다.


그는 생태학자답게 요즘 한국 생물이 스페인의 환경을 해치고 있으니 나보고 책임지라고 했다. 나는 들은풍월이 있어서 "그거? 개구리?!" 했다.


전 세계 개구리 200종을 멸종시킨 대한민국의 무당개구리... 너 좀 무섭다


그러자 페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또 개구리라고 해서 그러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그 생물은 해조류고 이름은 "~~~~ Okamurae"라고 했다. 처음 듣는 단어라서 앞의 용어는 전혀 귀에 걸리지 않았지만 오카무래는 정확히 귀에 걸렸다. 이건 한국어가 아니다. 분명 일본어다. 나는 그에게 "그 이름은 절대 한국 이름이 아니다. 오카모랜지 오캐무랜지는 일본식 이름이다. 그건 일본 생물이다. 나쁜 건 다 일본거다. 스펠링을 적어달라."라고 고집을 부렸다.

 



페페가 적어준 스펠링은 이랬다. "Rugulopterix okamurae" 아쉽게도 인터넷이 되지 않는 비행기의 환경상 확인해볼 순 없었지만 분명 오카무래는 한국식 이름이 아니었다.


페페는 그제서야 씩 웃으며 "사실 이거 일본에도 있어"라고 했다. 나는 "그 거봐. 나쁜 건 다 일 본 거야"라고 킥킥 웃었다. "나 완전 인종차별주의자 같지? 사실 장난이야. 한국사람은 역사 때문에라도 일본 얘기 나오면 좀 이러는 경향이 있어. 근데 진짜 이름이 일본식 이름이라고." 하면서 일본의 제국주의 역사에 대해 애기나 꺼내보려는데 페페가 먼저 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이 아시아에서 저지른 만행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다.


서양인 중에 일본의 제국주의 역사를 아는 사람은 태어나서 딱 두 명 봤다. 한 명은 캐나다에서였는데 내 직장동료였다. 그녀는 사실 남편이 한국사람이고 한국에서 영어교사로 2년 여정도 일한 경험도 있다. 그런데 한국에 방문조차 해본 적 없는 스페인 남자가 이 정도 지식을 갖고 있다니. 나는 경탄했다. 어떻게 알고 있냐 물었더니 책을 많이 읽어서란다.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영어 문장이 있다면 "I read a lot"이다. 이 문장이 페페아저씨 입에서 나오니까 또 좋았다. 


그리 길지 않은 비행이었지만 페페아저씨와의 대화 덕에 비행 시간이 풍성했다.




아 물론 그의 장난기가 발동해 나에게 "너도 개 먹어봤냐?"를 물어본 건 빼고. 그렇다. 사실 나는 개를 먹어본 적이 있다. 속아서. 그때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는데 가족모임 때였다. 나이 지긋하신 집안 어른들은 내게 "이거 돼지고기다. 많이 먹어라"라며 고기를 주셨고 어린 나는 아무 거리낌 없이 받아먹었다. 평소 먹던 돼지고기와는 좀 맛이 달랐지만 구운 고기가 아니라 삶은 고기여서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먹었다. 그게 개고기였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거짓말을 못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나는 페페아저씨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았고 페페아저씨는 속아서 개고기를 먹어봤다는 나의 말에 깔깔깔 웃었다. 어떻게 그걸 구분 못하냐면서. 그래서 나는 그에게 "처음 먹어보는데 그걸 어떻게 구분해. 너도 먹어보면 구분 못할걸???" 하고 받아쳤다. 그랬더니 그는 또 사뭇 진 지 해지며 "흠 생각해보니 그렇군." 했다.


내친김에 나는 그에게 '문화상대주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개고기를 먹는 것도 아시아권의 하나의 식문화라면 너희가 존중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그러자 페페아저씨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자기도 돼지가 개보다 똑똑한데 돼지는 먹으면서 개는 안 먹으려고 하는 점은 돼지에게 좀 미안하다고 했다. 그렇지만 돼지고기는 맛있다고... 그리고 그래도 개고기는 안 먹을 거라고. 허허허.

 




그리고 그는 비행 말미에 이렇게 아날로그 느낌 팍팍 나게 그의 번호를 적어 내게 주었다. 요즘은 휴대폰에 직접 번호를 찍어주는데.


아, 그리고 Rugulopterix okamurae의 한국 이름은 도무지 찾지를 못하겠다. 네이버에 검색해봐도 영문기사만 나온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91&aid=0007383934


연합뉴스 기사. 여기선 동양 미역의 한종류라고 한다. 너는 대체 무엇이길래 어떤 연유로 스페인까지 넘어가서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는 것이냐. 이렇게 보면 자연도 자연 그대로 잔인하다.


(나쁜 건 다 일본 거다는 다분히 장난이 섞인 말입니다. 부디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세요 제발)

(개고기도 저는 찬, 반 모두 존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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