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느Yonu Oct 22. 2019

졸지에 캘리포니아 걸이 된 여느


영국-프랑스-벨기에-네덜란드를 운행하는 유로트레인은 달리고 달려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내가 탄 좌석은 아슬아슬하게 만 27세를 맞춰 할인을 받아 1등석. 바로 이어지는 2등석에는 다음 날 있을 암스테르담 게이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벨기에 LGBT 인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차분한 분위기의 1등석과 달리 떠들썩하고 이미 축제 분위기에 휩싸인 2등석의 분위기를 가만히 앉아 느끼며 문득 영화 타이타닉이 떠올랐다.


왼쪽 1등석은 서버의 서빙을 받으며 차분히 앉아 사업이야기, 책이야기 들을 하고 있고 오른쪽 2등석은 이미 자리에서들 일어나 떠들썩하게 그들만의 축제를 벌이고 있다.


이윽고 기차에서 내릴 시간이 됐다. 2등석은 흥분에 휩싸였고 한 게이 남성이 허리를 숙여 짐을 꺼내려 하자 다른 게이 남성이 그의 엉덩이에 자신의 하반신을 밀착하며 마치 성관계를 하는 듯한 포즈를 취했다. 나는 황급히 눈을 돌렸고 한 백인 남성이 두 남성의 모습을 보고 '으'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 것을 보았다. 그 백인 남성과 나는 눈이 마주쳤다. 나는 그 순간 그 백인 남성이 절대 유럽인이 아닐 것이라는 확신을 할 수 있었다. 유럽인이라고 동성애에 다 관대한 것은 아니지만 절대 공공장소에서 저렇게 표정에 대놓고 티를 내지는 않기 때문이다. (못한다고 해야 정확하다.) 나는 백인 남성 역시 자신의 지나친 솔직함을 깨닫고 얼른 표정을 바꾸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미리 말하지만 나는 성관계 시늉을 한 두 남성이 게이여서가 아니라, 이성애자 커플이었어도 공공장소에서 저런 행동을 한 것이 정당한 행위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백인 남성에게


"The world, Huh?"


하며 말을 붙였다. "세상 참..."이라는 의미 정도가 되겠다.


그러자 그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Yes... 참 빨리 변해"


라고 대답했다. 그의 영어에는 영국식 억양이 없었다. 유럽인이 아닐 거라는 내 추측이 맞기는 한 것이다. 나는 그래서 또 물었다.


"네덜란드에는 무슨 일로 왔니?"


"어 나는 미국인이고 영국에서 공부하는데(아마 캠브릿지였던 것 같다) 주말이라 놀러 왔어. 미국 ooo 출신인데 아마 모를 거야.(기억에 잘 안 남는 미국 중부 도시였던 것 같다.) 너도 미국에서 왔니?"


"나? 글쎄, 한번 맞춰봐"


"음... 캘리포니아?"


캘리포니아라. 어쩌면 그는 백인 인구가 훨씬 많은 미국 중부 출신이라 내가 동양인인 점을 감안해서 동양인이 많은 캘리포니아 쪽 출신일 거라고 추측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웃으며 내가 한국사람이고, 캐나다에서 공부한 적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기차의 문이 열렸고, 우리는 헤어졌다.


 


캘리포니아 걸


그의 말을 듣고 케이티 페리의 노래 캘리포니아 걸이 떠올랐다.


https://www.youtube.com/watch?v=F57P9C4SAW4


California gurls We’re unforgettable Daisy Dukes, bikinis on top Sun-kissed skin so hot We’ll melt your popsicle Oh oh oh oh California gurls We’re undeniable Fine fresh fierce We got it on lock West Coast represent, now put your hands up Oh oh oh oh


캘리포니아는 가본 적도 없고 비키니도 입어본 적 없고 Sun-kissed skin도 가져본 적 없지만(태닝도 하기 전에 피부에 물집부터 올라온다), 기분 좋은 칭찬이자 오해였다.

이전 09화 런던에서 이란 사람에게 "칭챙총"소리를 듣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