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를 좋아하세요

- 나가며

by 리라
인간에게 있어 가장 우아한 쾌락이 무엇일까.
인간의 정체성은 결국‘나’, 개인에게 있고, 그것의 의미를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최상의 멋짐, 즐거움이 아닐까. 나만의 시간 속에서 나만의 느낌을 만들며
젊은이다운 열정을 부여하는 것. 그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오롯이 이 글자가 남는다.
‘독서’


밤 12시와 새벽 2시의 공기는 사뭇 달랐다. 낮의 마지막에서 아침의 시작으로 넘어오는 것처럼, 여름의 열기를 닫고 가을의 서늘함을 조금 내어주는 늦여름의 새벽 2시. 나는 불면의 침대에서 일어나 조용히 스위치를 켰다.

많은 사람이 ‘책을 읽었다’라는 것에서 마무리하고 싶어 한다. 그것이 너무 성의 없어 보인다면 그저 간단히 평가하고 싶어 한다. “재밌었어.” 또는 “읽어 볼 만해.” 스마트폰 전성시대에 책을 끝까지 읽었다는 것은 사실 대단한 승리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일회성 경험이 아닌, 앞으로도 계속 읽을 수 있는 의지 또는 습관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책을 1회 읽은 다음부터 진정한 독서 여행이 시작되는 듯하다. 이른바 책과 내가 진정성 있게 만나며 생각하는 시간이다. 이것은 마치 남녀의 만남 같다. 상대를 추천받아 만난다. 읽는다. 그리고 끝난다면? 어른들이 우리에게 누누이 당부하시는 고전적인 명언이 있다. 모름지기 2번은 만나봐야 안다고. 그 사람에게 호감을 느낀다면 어디 2번뿐일까. 神技가 넘치는 인간이라도 한 번 만남에 상대에 대해 온전한 매력을 느끼기란 힘든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같은 책에 만남의 횟수를 늘리며 손때를 묻히는 것, 새로운 호기심을 발산하며 자신의 느낌을 배가시키는 것. 물론 이 모든 행위 이전에, 그만한 가치가 있는 상대를 만나는 것이 최고의 행운일 듯!

다회성 독서의 매력을 비유하면, 짧게 짧게 여러 번 연인을 바꿔 가며 만난 사람과 한 사람을 적어도 일 년을 만난 사람 중에 어떤 사람에게 끌리는지. 우리는 이왕이면 성실하게 인내하는 가운데 멋진 인간관계를 만드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할 것이다. 독서도 그렇다. 우리가 톺아본 만큼, 그 책이 지닌 온전한 가치에 가까이 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독서를 위한 책은 온전히 본인의 소유여야 한다. 여러 이유로 빌린 책으로 읽을 수밖에 없다면, 시간이 너무 흘러가기 전에 다시 빌려 재탐색을 하길 권유한다. 나의 학창 시절에는 컴퓨터로 대출 기록을 하기 전이라, 종이카드에 대출자를 기록하게 했는데, 한 책에 여러 번 내 이름을 적는 것은 참으로 뿌듯한 일이었다.

책을 여러 번 읽으면 너무 거창할지 모르겠지만 그 책을 결국 사랑하게 된다. 우리는 정성을 들이는 대상에 대해 애정을 갖게 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이 좋다. 우리는 오감을 통해 대상을 인지한다. 외출할 때 옷을 고르고, 향수를 뿌리는 것과 같다. 화면을 통해 인지하는 책의 색과 향은 상당히 무덤덤하다. 사이버 공간을 통해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실제 만나는 것이 더 좋지 아니한가! 나의 종이책에 나무의 숨결이 피어오르고, 나의 손때가 묻는다. 나의 역사가 덧입혀진다. 책의 맨 뒷장에 읽은 날짜와 나의 이름을 기록할 수 있다. 나는 커 가고, 성숙한다. 그때마다 나의 존재성은 다르다. 나는 그것을 시절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기록해 왔다. 그 책을 펼쳐볼 때마다 나의 손때에 묻은 ‘성장 나이테’가 느껴져 좋다.

반복해서 읽으면 처음에 안 보이던 부분이 크고 자세하게 다가온다. 내가 책을 제대로 읽었다는 것은 그 책에 대해 얼마나 다르게, 그러나 바르게 설명할 수 있는가에 있다. 즉 다른 사람의 책에 대한 표현과는 색이 달라야 하며, 그 가운데 본질을 짚어내야 한다. 고등학생 시절, 도서 반에 있었던 때 보통 일주일에 한 회 독서토론회를 했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으면 읽어야 했다. 토론회 진행을 맡을 때는 그보다 더 많이 읽어야 했다. 학업에 대한 부담이 상당했던 때라 시간을 쪼개어, 몰래 읽었다. 그 만남이 짜릿하다. 아까 무심코 넘겼던 페이지의 의미가 지금 페이지에서 스며들 때도 짜릿하다. 아까 읽었던 내용이 생각나지 않아, 이전의 페이지를 다시 찾아 읽을 때도, 그 페이지가 주는 느낌이 거대한 산과 같아 넘어가지 못할 때도 역시 짜릿하다. 내 머리통, 생각 통을 계속 늘려주는 느낌이 든다. 풍선 인형과 같이 부질없이 살아가던 내가, 책 바람이 계속 들어가며 생기를 얻고 신나서 춤을 춘다. 그러면서 이해의 차원을 넘어서 추론을, 비판을, 나의 삶에 대한 성찰을, 적용을 하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나에게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는 사람처럼 애당초 좋은 책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친구들을 만나러 삼성역에 간 적이 있다. 그곳을 가면 20대의 기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나름 독서광이었던 내가 친구들과 주로 만났던 약속 장소는 서점이었다. 기다리는 상대가 늦어도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그곳엔 서점을 압도하는 거대한 도서관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엄청난 사람들이 책과 만나고 있었다. 우주 정거장 같이 만들어진 세련된 공간에서 사람이 아닌 책이 자신만의 아우라를 당당히 뽐내고 있었다. ‘책을 만나세요. 그리고 젊음의 타임머신을 타세요.’라고 속삭이는 것 같은 별빛 정거장.

책을 읽으며 나라는 인간의 삶을 성찰하게 되고, ‘인간으로서의 완성’에 몰두하게 된다. 이른바 몸을 움직이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나아가 경제 활동하는 건강함도 의미는 있겠으나 그것이 감탄이 아닌 讚歎으로 가기 위해서는 ‘살아있음에 대한 본보기’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즉 삶이 누가 되고 구차해지지 않는 것이 나의 목표다. 책을 읽으며 제 생각을 글로 쓰고 하루하루의 삶을 정말 ‘젊음 - 살아있는 것’으로 채색하는 것. 그러니 지혜와 사색은 깊어지고, 안색은 평안해지며, 깜깜한 밤중에도 별을 찾는 희망과 행복이 있지 않을까. 애초에 독서라는 것은 옥상에 홀로 앉는 것 같은 철저한 고독 속에 나만의 느낌을 별처럼 흩뿌려 얻는 최고의 인간다움, 바람직한 열정이 아닐지!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나도 사는 날까지 책을 만나는 정거장에 홀로 서, 젊음을 향해 매일 밤 스위치를 켜고 싶다. 낮이 돌아 밤이 아닌 아침이 될 때까지…. 아름다운 빛을 만들며 달려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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