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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가가일 Apr 06. 2024

아기가 태어났고 생각은 많아지고 겁은 사라졌다

화가 늘었고 이것도 산후우울증의 한 종류라고 한다

아기가 태어난 지 딱 한 달이 되었다.

어쩌다 응급제왕으로 예정보다 일찍 아기를 만나게 되었다.

너무 예쁜 내 새꾸...


수술에서 회복하고 모유수유를 하고 신생아를 돌보는 일은 정말 힘들지만 걱정했던 것보다는 힘들지 않다. 워낙 미리 걱정하고 모을 수 있는 최대한의 정보를 모아 물적대비 및 심적대비를 하는 편이라 그런지 으레 들어봤던 최악의 경우들은 모두 비껴간 것 같다. 아기야 자주 울지만 또 많이 울지는 않고 젖 물리고 기저귀 가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남편이 집안일과 기저귀를 한 달째 도 맡아하고 있고 또 앞으로의 한 달도 전담할 예정이니 나는 몸을 회복하고 젖만 물리면 된다. 이 두 가지가 엄청 힘들긴 하지만 예쁜 내 새꾸의 깜찍한 모습과 소리와 온도를 오감으로 느낄 때마다 이 보다 더한 것도 할 수 있다고 힘이 불끈 난다. 다만 새벽에 잠이 쏟아질 때는 이 마음을 잠시 잊는 것이 함정이지만...


산후우울증에 대해서 많이 들어왔고 또 나의 정신건강의학과 주치의도 상담 선생님도 나에게 임신 기간 내내 주의를 주셨다. 약을 끊지 말고 혹여나 약을 임신 후기에 끊게 되더라도 출산 후 바로 복용하라고. 하지만 출산 직전의 상담에서 상담선생님은 내가 원하면 출산 후에도 복용하지 않고 조금 상태를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하셨다. 다만 육아의 힘듦을 넘어 그저 이유 없이 눈물이 나는 날이 나흘이 넘으면 바로 가지고 있는 약을 복용하도록 내게서 약속을 받아내셨다.


출산을 하고 첫 일주일은 그저 수술의 통증과 싸우고 모유수유를 배우고 실천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눈물은 출산 당일 기뻐서 흘린 눈물과 매일 밤 진통제를 복용가능한 최대한으로 삼키며 상처부위가 아파서 흘린 눈물이 전부이지 태반이 내 몸 밖으로 빠지며 함께 빠져나간 무지막지한 양의 호르몬으로 인한 눈물은 한 방울도 없었다.


퇴원을 하고 집에 와서 이 주일 간은 육아가 힘들어서 매일밤 졸린 눈을 비비며 아기에게 젖을 물리곤 조금씩 울었지만 이 또한 상처부위가 아직 아프고 몸의 회복이 더딘데 수유까지 하려니 힘들어서 정말 몸이 힘들어서 나온 눈물이었다.


하지만 출산한 지 넷째 주부터는 조금씩 달랐다.


화가 났다.


그 화의 대상은 남편과 나의 아버지 그리고 나 자신이었는데 주로 남편에게 화가 났고 그 화를 매일 밤 알람 맞춰 놓은 것처럼 쏟아냈다.  


멍청하게 부지런하면 이렇게 되는 거야.

게으르게 미루고 미루면 이렇게 되는 거야.

너 3-4년째 운동 1도 안 하는데 올해도 운동 안 하면 나는 그냥 너한테서 도망갈 거야.

프리랜서 10년째 하고서도 이런 것도 혼자 못하면 그냥 이 길은 니 길이 아님을 인정할 때도 된 거 아니야?

순진하게 세상물정 모르고 사는 건 애 낳기 전까지야.

어떻게 나이 40이 다 되도록 이런 거 하나 모를 수 있어?

난 내 아이의 아빠가 이렇게 경제적으로 무책임할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아.

넌 독일인인데 우리는 독일에 사는데 넌 왜 새벽 두 시까지 질질 끌려가며 일하니.

하나만 해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살든지 그냥 쉬든지, 질질 끌려가며 목표 없이 열심히 살지 말라고.

나는 이 아기를 만나기 위해 지난 십 년 간 정말 열심히 살아왔고 이뤄왔는데 왜 너 때문에 내가 힘들어야 하니.

네가 열심히 하는 건 아는데 그래도 나에게는 부족한가 보다.


모두 내가 열흘 남짓한 시간 동안 남편에게 새벽에 퍼부은 말들이다. 이건 아주 일부이다.


누가 들으면 내 남편이 엄청 모자라고 게으른 줄 알겠지만 남편은 적어도 보통은 하는 사람이다. 아니 사실 사람만 보면 참 좋은 남편이다. 다만 나와 다르게 세상이치에 빠삭하지 않고 수지타산 계산을 잘하지 않는 순수한 독일 남자일 뿐. 독일이 아니라 한국에 살았으면 아마 인생이 아주 힘들었을 거라고 감히 짐작한다. 아니 한국에 살았으면 애초에 이런 성격이 되지 못했으려나.


이 가시 돋친 말들의 원인은 주로 육아수당 신청을 위한 준비서류 등 출산 후 행정처리에 필요한 경제적인 서류들과 정보들을 남편이 나와 약속한 시기에 제 때 알아보지 않아서였다.

코로나 이후 번아웃으로 최근 4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남편은 운동도 전혀 하지 않고 그저 일에 질질 끌려 살아왔다. 쉬어도 제대로 쉬는 게 아니고 일해도 제대로 일하는 게 아니고 그저 수동적으로 우울을 바탕에 깔고.. 우리 부부는 그렇게 동시에 우울증에 걸린 채 몇 년을 살아왔던 것이다.


다행히 내가 지난여름부터 상태가 아주 좋아져서 일도 다시 하고 돈도 모으고 임신 중 이것저것 준비하며 집안의 분위기도 살리고 남편의 기도 살려주며 작년에 참 즐겁고 행복하게 한 해의 마지막 절반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출산을 하고 나니 10년을 넘게 사랑해 온 이 남자가 갑자기

무능, 멍청, 심지어 한심해 보이기까지 하는 것이다.

그리고 화가 났다. 내가 그렇게 미리 준비하라고 했는데 왜 제 때 준비를 못해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거야. 왜 제대로 해내지도 못할 프리랜서를 아직도 그만두지 못하고 계속해서 행정절차도 복잡하고 보험이며 연금이며 미래에 대한 준비도 못한 거야. 일억이억 통장에 있으면 뭐 하니 그 돈 중 얼마가 니 연금이고 얼마가 니 유동가능한 현금인지도 모른 채 돈 쓸 때마다 늘 불안하게 쓰는 게 그거 뭐 하는 짓이니. 등등등.


가시 돋친 말을 하는 나 자신이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남편을 보채고 이거 했니 저거 했니 채찍질하는 내 모습에 환멸이 났다. 또 화가 났다. 나 자신에게.


이런 남편의 모습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나처럼 약아빠지지 않은 순수한 사람이라서 애초에 사랑에 빠졌던 것 아닌가? 지난 십 년 동안 나를 서포트해 주고 나도 그를 도와가며 우리는 느리지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고 나름 이뤄낸 것들도 꽤 있는데 왜 이 모든 것이 나는 갑자기 불만일까. 그것도 아주 몸서리치게 불만일까. 정말 내 한계에 다다른 것일까. 아니면 아이를 낳고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 것일까. 그도 아니면 그저 호르몬의 탓일까. 아님 이 모두가 한 번에 터진 것일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새꾸를 낳고 나는 둥지를 트는 엄마 새가 되었다. 하지만 안전한 보금자리에 대한 욕망이 너무 커진 나머지 안 하던 걱정도 늘었고 특히 안정적인 집안 경제에 대해 엄청 민감해졌다.

경제관념 없이 이자 없는 통장에 목표도 없이 그저 현금만 넣어두고 살아가는 남편이 갑자기 꼴 보기가 싫어진 것이다.


우리 부부가 돈이 없지도 않은데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한 것도 아니고 저축액도 꽤 있는데도 모든 플랜을 생각하며 왜 너는 아직도 연금계획이 없니 니 대안은 뭐니 재취업은 할 거니 등등 육아수당 신청조차 못 하고 있는 남편을 아주 매일 열 가지 다른 질문들로 들들 볶고 있다. 쓰다 보니 미안하다.. 하지만 쓰고 보니 남편이 더 한심하다...


앞으로 함께 하나씩 공부하고 준비하고 대비하고 실천해 나가야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하고 있고 그럴 거지만 그리고 분명 잘할 거지만 남편에 대해 갑자기 변해버린 내 마음이 나는 걱정된다.


아빠로서 남편으로써 너무 잘하고 있는데 매일 요리하고, 세탁기며 건조기며 서너 번씩 돌리고, 아기의 기저귀를 하루에 열번도 넘게 갈고, 나보다 잠을 반도 못 자면서 하는 일은 두 배 세 배로 많은데 매일 욕만 먹고 있는 내 남편이 불쌍하다.


내가 마음속으로 결혼한 걸 처음으로 후회하고 있다는 걸 알면 얼마나 슬플까. 온전한 후회는 아니지만 티끌만큼도 흔들리지 않았고 사랑으로 굳건하던 나의 마음이 엄마가 되고 계산적이 되어 후회의 히읗은 자꾸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다는 걸 남편이 알면 얼마나 슬플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제발 이 마음이 그저 산후우울증에 의한 일시적인 마음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 새꾸는 그저 예쁘고 나는 내 둥지를 아주 단단하게 만들고 싶다.


이 와중에 친정아버지는 내 속을 또 뒤집는데 출산 전에는 그냥 넘어갈 것을 나는 이번에 제대로 경고를 드렸다.

참 싹수가 없는 딸이다. 하지만 부모가 된 나는 친정아버지가 예전보다 더 용서가 안된다. 뼈 빠지게 돈 벌어 내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 주신 점과 나에게 주신 부분적 사랑은 감사하나 그 보다 더 큰 원망과 미움은 내 마음속에 지난 10년 동안 그대로 있었는데 출산 후에는 그 정도가 배가 된 것 같다.


그리고 내 몸과 마음과 돈 그리고 내 딸의 몸과 마음의 안녕보다 내게 중요한 것은 없어졌다.

내 남편의 몸과 마음과 돈의 안녕도 아직은 중요하다.


엄마가 된 나는 생각은 많아졌고 겁은 상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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