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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가가일 Apr 19. 2023

왜 병원에 다녀왔더니 더 우울하냐

우울증의 세 번째 발병은 약을 최소 3년을 먹어야 한다는 절망적인 진단

지난 3주 간의 휴식 후 다시 출근하기 직전 병원에 들렀다.

한주 반의 병가 그리고 2주 간의 휴가가 준 효과는 실로 대단했고 나는 다시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희망을 안고 병원에 찾았다.


'그냥 약이나 더 받아놔야지. 예약 잡기도 힘들었는데 귀찮아도 그냥 바깥바람 쐬는 겸 나가자'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섰다. 헬멧을 쓰고 조심스레 타는 자전거가 사뭇 내 기분을 좋게 했다.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매우 나답게 할 말들 할 질문들을 노트에 우선순위를 매겨가며 정리했다.

Escitalopram은 10mg를 계속 먹어야 하나? 휴가동안 운동도 거의 매일 하고 많이 좋아졌는데?

약에 의존하고 싶지 않은데 최소로 복용해야 하는 기간을 얼마나 되는지도 물어봐야지.

5mg로 언제 줄일 수 있을까?

출근하고 일주일 뒤에 상담가와 예약이 잡혀있는데 그때까지는 풀타임 일을 계속해보는 게 좋은 지도 물어보고, 회사에서 제안한 파트타임 50%를 의사가 추천하는지도 물어봐야지...


번호를 매기고 정리를 하고 이름이 불리자 의사가 마중을 나왔다.

한 열 번째 보나, 지난 4년 간 이 의사.


2017년 독일 대학원 생활 첫 해 첫 학기 마지막 시험을 앞두고 공식적으로 (?) 처음 발병한 번아웃 & 우울증.

2년간 꾸준히 2주에 한번 한 달에 한번 꼴로 상담치료만 하면서 대학원 생활을 잘 마무리했다. 졸업논문을 쓰기 전까지는..


2019년 가을 졸업논문을 쓰기 직전 결혼식을 했는데 결혼식을 하자마자 일주일 사이에 연달아 벌어진 세 가지 악재들(남편의 응급실행 그리고 한 달간의 병원생활, 집에 물난리 그리고 부엌 공사, 남편 사무실 도난사고)과 논문주제를 엎어야 하는 어려움등이 겹치며 상담의 힘으로는 어렵겠다고 판단. 그때 처음 상담선생님의 추천으로 방문했던 정신의학과. 그 이후로 일 년가량 약을 먹으며 논문도 잘 마치고, 졸업도, 여행도, 취업준비도 취업도 했다.


취업 직전 아 이제 나는 우울증과는 안녕이구나. 잘 지내도 너무 잘 지낸다 운동도 하고 하며 의사와 상담 후 약을 서서히 줄이며 단약을 했다.


그리고 반년 후... 맞지 않는 첫 직장 생활 반년 차에 다시 발병한 나의 공식적인 두 번째 우울증. 그리고 병가와 퇴직기간에 다시 방문한 병원과 다시 시작된 Escitalopram 복용기. 다시 약을 먹고 일을 쉬고 산책을 하고 겨우겨우 반년만에 살아나 한국도 방문하고 가족들을 만나고 여행을 하며 다시 재취업 준비를 하고 재취업을 했다. 이번엔 일 년 삼 개월 정도 복용했던 10mg. 여름이 되니 다시 살만해졌고 그렇게 의사와 상담 후 다시 5mg로 복용량을 반으로 줄인 후 몇 주 뒤 단약.


아 우울증은 이제 안녕이다.


상담만 꾸준히 다니면서 부러졌던 다리뼈가 잘 붙어 있는지만 확인하고 회사 적응 잘 될 때까지만 조심하자.


그리고 거짓말처럼 딱 반년 후 나는 그냥 울고만 있었다. 하루 이틀이 한 주, 두 주가 되고 거의 세 달 동안 정신을 못 차리고 겨우겨우 회사 생활을 해 나가고 있었다. 코로나 감염으로 1월에 한주, 남은 피로감으로 2월에 한주, 그리고 3월에는 3주 내내 울기만 하다가 어느 날 사무실에서 처음으로 패닉이 와서 남편에게 실려오다시피 조퇴를 했다. 그 이후로 팀장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8일을 다시 병가 내고 계획되었던 2주간의 부활절 휴가까지 연달아 쓰기로 합의했던 게 벌써 3주 전.


"저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다음 주에 3주 반 만에 출근인데 쌓인 메일도 두렵긴 하지만 그냥 일단 다음 상담예약까지 한 주만 눈 딱 감고 회사 다녀보려고요. 정 안되면 50% 파트타임, 회사에서 먼저 제안해 줬으니 생각해 보고요. 약은 언제부터 줄이면 될까요? 운동도 계속할 거예요!"


의사 선생님은 그저 웃으며 조용히 계시다가


"이번이 세 번째 발병이라 최소 3년은 최소 10mg을 계속 복용해야 합니다. 세로토닌 부족이 확실해 보이네요. 이건 약에 의존하는 게 아니에요. 특정 비타민이 부족해서 건강보조제를 먹는 사람들, 심각하진 않더라도 질병이 있어서 꾸준히 약을 복용해야 하는 사람들처럼 환자분은 세로토닌 역할에 이상이 생긴 게 지난 4년간의 히스토리를 보면 확실해 보입니다. 1년 복용하고 반년 내 다시 재발하는 사이클이 벌써 두 번 있었고 지금 세 번째 발병이기 때문에 이번에는 장기간 복용하며 운동도 회사생활도 병행해 봅시다. 임신계획이 올해 후반기에 있다고 하셨는데 임신 기간에도 문제 되지 않습니다. 5mg로 줄이고 싶다면 50% 파트타임을 추천드려요. 100%의 업무를 해 내기에 약 없이는 힘들 겁니다."


몇 번의 토론 끝에 일단 Escitalopram 10mg의 세 달 치 처방전과 세 달 후의 진료 예약을 하고 나왔다.


약국에서 약을 수령하는데 젊은 직원이 "아 정신건강을 위한 약이네요, 처음인가요? 질문 있나요?"


굳이 약의 이름도 아니고 약의 효능을 네이밍 해서 말한 점이 거슬렸지만 무성의햐지만 예의는 차리고 빨리 약을 사서 나왔다.


약국 앞 벤치에 앉아 검색을 해 봤다. 나는 세 달 정도만 복용하고 운동 열심히 하고 일을 줄이든 계속 풀타임을 해보든 일단 잠깐 급한 불만 끌 생각으로 약을 다시 복용한 건데... 자꾸 우니까, 울어서 아무것도 할 힘이 없으니까 일단 울지 않으려고 약을 다시 복용하라는 상담선생님의 말씀에 병원에 갔던 건데...


3년?


검색해 본 결과 거의 모든 블로그, 대학병원의 정신의학과 사이트 등에서 우울증이 3번째 발병한 경우 재발의 확률은 95에서 100프로에 가깝고 평생 우울증을 관리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나와있었다. 특히 약의 복용기간의 경우 3번째 발병의 경우 3년에서 5년, 의사가 그냥 교과서대로 옳게 처방하고 안내한 것이었다.


절망적이었다. 왜 그렇게 절망적이게 느껴지는지는 일단 알 수 없었지만 일단 빨리 자전거를 타고 남편이 있는 집에 가야지 라는 생각과 함께 헬멧을 쓰고 페달을 밟았다.


눈물 한 방울이 왼쪽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쓱 닦고 다시 페달을 돌렸다.

이번엔 오른쪽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다시 닦고 그냥 페달을 돌렸다.


왜? 왜 그렇게 슬픈 거야? 3년 복용? 3년이나? 이 기간을 이겨내고 나도 다시 재발할 확률이 거의 100프로 가깝다고 이제? 나 지난 8년 동안 독일에서 열심히 살아왔는데 잘못 산건가? 내가 나를 너무 맞지 않는 곳에 몰아넣고 채찍질만 하며 살아왔나? 너무 억울하다... 너무 안타깝다 그냥 이 모든 것이...


눈물이 흐르고 눈물을 닦고 페달을 돌리기를 수십 번.


집에 도착했다. 남편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말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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