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갱 Jun 02. 2021

[식탁으로의 여행] 마약 옥수수 그리고 뉴욕

고요한 소호의 아침 햇살을 기억하며

 나름대로 요리에 대한 글을 조금 쓰고 있긴 하지만, 내게 요리만큼 중요하고 또 사랑했던 건 바로 여행이었다. 자금의 여유, 시간의 여유만 생기면 일 년에도 몇 차례씩 가깝고 먼 곳으로 떠나곤 했고, 새로운 곳의 사람들, 문화, 풍경, 그리고 음식들을 접하며 나의 마음의 여유 공간을 조금씩 넓혀보곤 했었다. 나를 아는 이 하나 없는 이국의 공기, 그리고 그곳에서 먹었던 음식들은 얼마나 다채롭고 흥겨웠던가. 물론 관광객으로서의 파워 긍정 마인드가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고, 정작 현지인들은 매일 먹지 않는 각종 호화스러운 맛집을 찾아서 다녔으니 당연히 대부분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이 당연하다. 다만, 음식에는 그 지역만의 재료들, 향신료, 조리 방식, 먹는 방식, 담음새, 그리고 분위기가 있었다. 식당에 앉아 한 끼를 먹는 것은 약 한 시간 정도를 소요하는 어쩌면 짧은 시간이지만, 그 짧은 시간 안의 다양한 경험들은 어째서 내 머릿속에 이렇게 강렬하게, 명확하게 남아 있는 걸까?

 무튼, 나는 20년 봄에 남미로 떠날 계획이었고, 그 계획은 무참하게 실패했고, 그 꿈은 이뤄지지 못한 채 그저 마음속에 열어보지 못한 상자로 남아 있다. 이렇게 꼼짝없이 몇 년 간 발이 묶이게 될 줄은 정말 몰랐고 (누구나 그랬겠지만) 뭐 남미뿐만이 아니라 다녀왔던 많은 여행지들도 당분간, 혹은 다시는 가지 못하는 곳이 되었다는 슬픔과 그리움이 참 컸다. 이렇게 마음속의 불꽃같은 열정과 도전 정신이 사그라드는 이 시국을 어떻게 견뎌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다.

 그래서, 이 시국에 맞춰, 가장 안전한 나의 주방에서, 그간 떠났던 여행을 복기하며 그곳에서 먹었던 음식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재현해보는 가져보고자 한다. 이름하여 식탁으로의 여행. 부제는 과거로의 여행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때 먹었던 것과 절대 똑같지는 않겠지만, 앉아서 받아먹던 시절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나의 상에 따끈한 음식들을 올려주었던 이국의 요리사들을 기억해본다.




재료

옥수수 1개

버터 2T, 마요네즈 2T, 올리고당 1T

파마산 가루, 파슬리가루, 파프리카 가루


만드는 법

1. 옥수수를 깨끗하게 씻어 반으로 갈라놓는다.

2. 버터를 살짝 녹이고 마요네즈, 올리고당과 섞는다.

3. 2번의 소스를 옥수수에 골고루 듬뿍 발라준다.

4. 180도 예열된 오븐에 8분, 그리고 옥수수 뒤집어서 7분 더 돌려준다. (노오븐 레시피는 팬에 2번 소스를 넣고 굴려가며 익힌다)

5. 가열한 옥수수에 파마산, 파슬리, 파프리카 가루를 적당량 뿌려준다.



 그 시절, 미국은 내게 왜 그렇게 낯선 나라였는지. 피부색과 눈동자 색깔이 다른 사람들의 나라라기엔 나는 나름대로 짤막한 유럽 대륙의 거주민이었고, 생각해보면 한국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나와 가장 잘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진 이들이 아니겠는가. 그래도 미국은 내겐 낯설었고, 그 다채롭고 낯선 나라의 첫 경험을 나는 더 다채로운 도시, 뉴욕에서 시작했다. 글쎄, 그곳은 내가 갔던 그 어떤 곳보다도 무엇이라고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는 곳이었다. 어쩌면 그게 미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이며 색깔이겠지. 9박 10일의 여행에서 하루하루 새벽부터 저녁까지의 일정을 소화하고도 다 돌아보지 못한 큰 도시 안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의 얼굴도 입은 옷의 색깔도 제각각이었는데, 그들이 뿜어내는 그 에너지에 사실 기가 조금 눌리기도 했다.

 그렇게 머나먼 도시에서 참 많은 끼니를 먹었는데, 이상하게 유독 기억에 남는 시간은 바로 카페 하바나(아바나)에서의 시간이었다. 그날은 소호를 한 바퀴 돌아보는 날이었고, 엄청난 에너지와 기를 뿜어내는 뉴욕이란 도시가 너무 좋기도, 너무 지치기도 했던 시점이었다. 여행의 2/3 지점쯤 되었을까.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브런치로 배를 채우자는 심산으로 이른 시간에 방문했지. 불타는 주말과 휴일을 보내고 난 뒤 월요일 오전의 소호는 고요했고, 가을 햇살과 코 끝에 스치는 쌀쌀한 가을의 공기는 상쾌했다. 멋들어진 가게들이 가득한 거리가 텅 비어있는 것을 보니 좀 머쓱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진짜로 여행자가 된 것 같아서 발걸음이 가벼웠던 그런 날이었다.

 그렇게 찾아간 카페 하바나는 엄청난 맛집이라는 평가와는 다르게 텅 비어있었다. 동네 식당 같은 작은 규모에 감성이 담겨 있는 아기자기한 벽화와 꾸밈들, 알록달록한 색깔들과 소박한 식기들에 왠지 모르게 참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이제야 어떤 '동네'에 온 것만 같은 설레는 기분. 다만 너무 고요하게 비어있어서 좀 쭈뼛거리며 눈치를 보고 있는데, 스타일이 멋진 서버 언니가 후후 웃으며 바로 안내를 해주었다. 음, 그냥 친절이 아니라, '야 거기서 쭈뼛거리지 말고 얼른 앉아~'라고 말하는 친한 네일숍 언니 같은, 정말 언니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주말을 맞이하고 피곤한 월요일, 오픈 첫 손님으로 뻘쭘한 표정으로 옥수수를 시켜먹는 작은 아이라니. 그 언니 입장에서도 좀 웃기는 일이었을 것 같긴 하다.

 무튼 손님도 없고, 또 혼자고 해서 바 테이블에 앉아서 아침 햇살을 받으며 한가로이 콜라를 쪽쪽 마시고 있자니, 영롱한 자태의 옥수수가 어느새 내 앞에. 그것은 매우 아름답고, 커다랗고, 맛있고, 그리고... 흘리기 좋은 음식이었다. 일단 사진 찍을 때까지는 좋았는데, 음, 옥수수란 음식은 자고로 두 손에 야무지게 들고 하모니카처럼 먹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 옥수수를 칼로 썰어서 먹자니 안 그래도 쉽지 않은데, 겉면에 잔뜩 올려진 치즈 가루와 파프리카 가루가 사정없이 여기저기로 흩뿌려졌다. 열심히 잘라가며 옴뇸뇸 먹기 시작하는데, 이미 내 자리는 온갖 가루와 탈출한 옥수수 알들로 엉망진창. 그걸 보던 그 멋진 언니가 짤막한 감탄사를 뱉었는데, 마치 칠칠맞은 동생을 보며 '아이고...' 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라 어쩐지 웃겼다. 그 언니 입장에서는 아침 오픈하자마자 가게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손님에 대한 질책이었을까? 하지만 어쩐지 그 느낌이 밉거나 날카로운 게 아니고, 옷을 탁탁 털어주고 턱받침이라도 대줄 것 같은 느낌이라 (한국 언니 었으면 무조건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쩐지 더 정감 가는 순간이었다. 아무튼, 맛있었으면 된 거 아닌가? 여행자의 배를 가볍게 채워주는 달콤한 맛.

 이제 나는 그 음식을 한국의 나의 주방에서 만들어 먹는다. 몇 년 전 혜성처럼 나타난 초당 옥수수라는 존재는 제 아무리 뉴욕의 옥수수 맛집이라도 이길 수 없는 식감과 달콤함을 가지고 있기에, 그때 느낌은 아니어도 무조건 맛있을 수밖에 없다. 버터와 마요, 옥수수, 치즈가루라니 완전히 상상할 수 있는 맛이지만 여기서 파프리카 가루가 킥이었던 것 같고, 하바나는 오븐 말고 화로에서 조리를 하던데 나는 오븐으로 조리해서 타지 않고 속까지 익히도록, 하지만 미리 삶는 과정 없이 아삭한 식감을 살리도록 했다. 솔직히 이 간단한 레시피와 초당 옥수수, 그리고 오븐이 있다면 거의 실패할 확률이 없는 요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식탁은 소중하므로 가루로 참사가 나지 않게 손으로 들고 먹었다. 나이프로 옥수수를 썰어 먹는 것은 한국 정서에 옳지 않은 일이지. 미국 음식이라도 한국에 오면 한국 법을 따르시라. 하지만 브런치 시간에 내리쬐는 그 햇살과 고요함은, 지구 저 먼 반대편에서나 여기서나 나와 함께하고 있다는 점이 마음속에 따뜻하게 내려앉는다. 짓궂은, 하지만 애정 어린 눈길로 열심히 먹는 나를 바라보던 그 언니, 잘 살고 있나요?

  (근데 이름은 하바나인데... 정작 진짜 쿠바 아바나에 가니까 옥수수 먹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앉은 바 테이블에서의 시선.
Cafe Havana의 grilled corn. 사람들은 어느샌가 이것을 마약 옥수수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Cafe bomgang의 마약옥수수 한국산. 달고 기름진데 아삭해서 계속 먹혀.
작가의 이전글 텃밭과 함께하는 식탁_21년 4월 3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