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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Jun 05. 2020

외할머니 팥죽

그때는 싫고 지금은 좋은 

어린 시절 외갓집을 가면 먹을 것이 항상 많았다. 외갓집 문을 열고 들어가면 외할아버지가 시큰둥하게 앉아 계시며 우리를 반겼다. 외할머니는 똥강아지 왔냐며 버선발로 뛰쳐나오셨는데 멀리서 손자 손녀가 온다고 전 날부터 이것저것 먹을 것을 준비해놓으셨다. 무얼 그리 많이 준비하신 건지 모르겠지만 도착해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온갖 음식 냄새가 뒤섞여 내 코를 찔렀다. 나는 여러 음식이 섞여 나는 그 냄새를 싫어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들과 함께 방한 켠 아랫목에 둘러앉아 있으면 외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부엌에서 미리 만들어 놓은 맵쌀 반죽 한 덩이를 넓은 쟁반과 함께 가지고 방으로 들어오셨고 우리는 다 같이 반죽을 한 덩이씩 나눠 가지고 동그랗게 비벼 새알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이 다 같이 새알을 만들기 시작하면 어른들은 자연스럽게 부엌으로 건너가셨다. 잡담을 하며 열심히 새알을 빚다 보면 어느새 새알들은 넓고 둥근 쟁반에 가지런하게 놓였고 그러면 어른들은 어떻게 귀신같이 아시고선 다 빚어 놓은 새알을 가지고 가셨다. 그렇게 한참을 떠들고 있다 보면 팥죽 먹으라고 우리를 부르셨다. 


마루로 나가면 동그란 상 위에 팥죽이 한 그릇씩 놓여 있었다. 팥죽은 팥 알갱이가 듬성듬성 보이고 보랏빛이 살짝 돌며 하얀 새알이 동동 떠있는데 어찌나 오래 끓였는지 아무리 후후 불어도 쉽게 식지 않았다. 자리를 잡고 앉아 새알을 올려 한 숟가락 푹 떠서 한 입하면 입천장이 뜨거워 다시 뱉어내곤 했다. 숟가락으로 휘저으며 한 김 식혔다가 다시 한입 넣으면 입안에서 간간하게 짭조름한 맛이 퍼진다. 동시에 입에 들러붙는 새알까지. 외할머니의 팥죽이었다. 먹고 있으면 무심한 듯 옆에 오셔서 "한 그릇 더 해"라고 툭 한마디 하시곤 했는데 배가 부르다는 핑계로 숟가락을 내려놓곤 했다. 그럼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시곤 하셨다. 


어린 시절의 나는 단팥죽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티브이 너머로 보던 단팥죽은 팥 알갱이가 곱게 갈려 까맣게 빛이 나는데 그 위에 찹쌀떡 한 덩이가 무심하게 놓여있는 그것을 나는 동경했다. 그래서일까 단맛이 아닌 짭짤한, 쫄깃하게 씹히는 찹쌀이 아닌 2% 부족하게 쫄깃한 맵쌀로 만든 새알이 들어간 외할머니의 팥죽이 싫었다. 먹다 남긴 새알을 동생의 접시로 몰래 넣곤 했는데 그걸 기억할지는 모르겠다. 


세월이 흘러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았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아니면 아이를 낳아서 일까? 단 걸 좋아하던 나는 사라진 지 오래다. 요즘은 탄산 대신 생수가 더 시원하고 캐러멜 마끼아또보다는 아메리카노가 더 맛있다. 


얼마 전 그렇게도 싫던 짭짤한 경상도식 외할머니 팥죽이 생각났다. 뭐에 홀린 듯 마트에서 팥 한 봉지를 샀다. 팥을 불려 한번 깨끗하게 씻은 뒤 삶아내던 중 문득 그때는 그것이 사랑인 줄 몰랐던 어린 시절의 내가 생각났다.  요즘은 팥을 따로 옮길 필요 없이 핸드블렌더로 냄비에서 쉽게 갈아낼 수 있는데 그때는 그 많은 양을 어떻게 갈았는지 모르겠다. 팥을 불리고 끓이고 으깨는 수많은 과정이 들어간 팥죽은 그냥 먹고 싶다고 뚝딱 나오는 것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이제는 외할머니가 손수 끓여주신 팥죽을 먹을 수 없는, 돌아가신 당신의 팥죽이 그리운 나이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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