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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i Sarang Sep 19. 2019

사귀는 사람이 허언증이라니...

주변인을 괴물로 만드는 거짓말


한때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다. 처음 만남부터 스파크가 튀었고 다음날, 또 그 다음날 계속 만나면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사랑을 빠르게 속삭이게 되었다. 꿈꾸던 이상형은 아니었지만 시원시원한 성격과 외형, 나를 좋아해주는 그 마음 씀씀이가 걷잡을 수 없이 나를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렇게 1년여 가까이를 만났다.


하지만 1년이 지난 후, 나는 그에게 화를 내는 괴물 같은 여자가 되었다. 자꾸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였다. 빠져나갈 수 없는 증거를 내보이고 솔직히 말해달라고 어르고 달래도 그는 끝까지 사실을 말할 줄 몰랐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그 사람은 허언증 환자였다.


허언증 : 엉뚱한 공상을 현실이라고 믿으며 헛된 말을 하는 정신병 증상.

 

조그만 사업을 했던 그는 본인이 가진 돈의 몇 십배를 부풀려 말하는 것이 습관이었다. 월에 몇천만원씩 들어온다는 말을 하고는 막상 사무실에 가면 밀린 월세를 내지 못했고 연체된 각종 고지서가 뒹굴고 있었다. 직원 하나의 월급도 주지 못해 노동청에 고발을 당하기도 하였다. 부모와 사는 본인의 집이 몇 평이라고 하였지만 가보면 사실과 달랐고, 본인의 친척이 어느 회사 대표라 말했지만 알고 보니 그런 사람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등… 조금만 알아봐도 들통날 사실을 떠들고 다녔다. 계속 지켜보면서 아니다 싶은 것을 깨달았지만 바보 같이도 그때는 너무 사랑을 했기에 그것을 눈감아 주었다.




여름이 되어 리조트를 가기로 했다. 예약을 하고 돈을 냈지만 이후 컨펌전화를 직접 해보니 취소된 것이 아닌가. 알고보니 예약금을 그후 몰래 취소하고 남자친구가 돈을 환불 받아갔다고 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이라 다시 남자친구에게 전화해 보았지만 정말 이상한 일이라며 본인이 연락하겠다고 했다. 그러고 내게는 업체측의 착오가 있었던 것이라며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설마 하던 나는 여행 당일까지 짐을 싸서 준비하고 만나기로 하였고 약속장소를 나가는 도중이었다. 갑자기 남자친구가 교통사고가 났다고 병원에 입원을 했다고 전화를 했다. 그동안의 거짓말에 지쳐 있었기에 혹시 하는 마음에 (확인을 하러) 병원에 병문안을 가겠다고 하니 끝까지 병원을 알려주지 않았다. 가겠다고 실랑이를 벌이자 그 와중에 다시 퇴원을 했다며 밖에서 만나자고 하여 집 근처 길거리에서 그를 만났다. 그렇게 리조트에 대한 것은 묻게 되었다. 아마도 그 리조트 금액이 꽤 큰 금액이라 본인상황에서 그 돈이 한푼이라도 아쉬워서 그러지 않았나 싶다.


기념일에는 유명한 레스토랑을 예약했다고 하였다. 늘 어디 가자고 하기만 하고 막상 간적은 없는 터라 기대를 하고 근사한 선물도 준비해서 시내로 나갔다. 만나자마자 갑자기 레스토랑에 전화를 하는 척을 하더니 그곳에서 더블 부킹이 되어 예약이 취소되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말도 안될 뿐더러 나는 그때 액정에 아무것도 뜨지 않았는데 전화 하는 척을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심지어 선물을 준비했는데 "차에 두었다"며 차를 뒤적이면서 또 "사무실에 있나보다" 하고는 사무실에도 없는데 이상하다는 말을 반복하기도 했다. 항상 그렇게 막다른 골목까지 가서는 이상하다며 본인도 갸웃하며 넘어가곤 했다.


한번은 바람도 피웠다. 두여자에게 동시에 같은 초콜렛과 인형을 줘놓고 절대 동시에 주지 않았다고 했다. 3자대면으로 증거를 내밀어도 “어? 이게 왜 여기있지?” 하는 식으로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우연이라며. 이후 내게는 바람핀 상대와 정리가 되었다고 미안하다고 했지만 뒤에서는 그 말을 상대 여성에게도 똑같이 하고 있었다. 내 눈에 비친 그의 표정과 행동은 정말로 본인의 거짓말을 사실로 믿고 있는 듯 했다. 조금의 죄책감이나 거리낌이 없었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그가 아직도 원망스럽다 거나 화가 나진 않는다. 그저 아마도 본인의 재정적인 컴플렉스가 심해서 병적으로 허언증이 생긴 것이 아닌가 싶다. (참고로 그를 아는 사람 2명이 나에게 따로 연락이 와서 그의 허언증에 대하여 심각하게 언급하였다.) 허나 그 이후로 나는 후유증이 남았다. 누굴 만나도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게 되었다. 당시 그에게 화를 내며 사실을 왜 말하지 않느냐고 다그친 내 모습이 아직도 스스로 생소하다. 평소의 내 성격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만큼 화를 냈고 원망했다. 그것이 스스로 자괴감을 느끼게 한다.


그저 허물을 알고도 감싸려고 했던 연인에게 조금이라도 진실한 모습을 보여주길 바랬을 뿐이었다. 허언증은 사랑과 신뢰를 와장창 깨트릴 뿐더러 상대방에게 마음의 상처를 깊이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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