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고 난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불어난 신체는 물론이고 주변 아이들을 보는 나 자신의 눈도 달라졌다. 특히 임산부석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이 든다. 그 전에 지하철의 임산부 석을 두고 일부 극단적인 커뮤니티에서 “XX인증석”, “남의 남자의 아이를 가진 여자에게 왜 양보를 하냐” 이런 글을 보고도 별 생각없이 지나칠 뿐이었다. 굳이 뭐 필요한가?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막상 내가 임신을 해보니 임신의 불편함과 힘듦은 나라고 절대 예외는 아니었다. 하루하루 새로운 증상으로 아프고 고통에 몸부림 쳤으며 나도 모르는 나의 모습이 새로웠다. 출퇴근을 해야하는 입장에서 약 1시간 가까이 서서 가야하는건 몸에 큰 무리였다. "힘들면 회사를 그만두면 되지" 라고 쉽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치만 그 사람에게 위기가 닥쳤을때 생업을 두고 "힘들면 때려치워~놀아." 라고 누군가 쉽게 말하면 어떤 심정일지 묻고싶다.
그저 드라마에서 음식을 할 때 우웩~ 하고 헛구역질을 하면 주변에서 혹시 임신했냐고 물어보는 그런 얄팍한 지식만 알고 있었을 뿐. 막상 임신을 확인하고 얼마 안돼 곧 다가온 입덧은 이전에는 절대 알지 못한 그런 울렁거림과 몸살 기운의 연속이었다. (나는 살아오면서 멀미같은것도 한평생 느껴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초기 호르몬의 영향으로 온몸에 미열이 나서 졸음이 쏟아지는 것도 몰랐다. 그저 왜 이렇게 졸릴까 하면서 회사에서 졸음을 견디다 못해 화장실 변기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길을 걷다가 차들이 빵빵대는 대로변 벤치에 앉아서 졸기도 했다. 어쩔때는 기분이 한없이 가라앉아서 마치 우울증에 걸린 사람 마냥 옆에 앉은 동료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는 것 조차 힘들었다. 내가 우울증인건가 하고 검색해보니 임신 초기에 나오는 호르몬의 영향으로 기분이 다운되는 것은 정상이라고 했다. (나는 이 계기로 공황장애나 우울증 환자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정신무장으로 다 이겨낼 수 있다는 이론을 믿었던 나는 뇌 호르몬의 어쩔 수 없는 작용을 이제서야 알게된 것이다.) 겉보기에 아직 배가 나오지 않아 출퇴근길의 전철에서 임산부석에 앉기에는 눈치가 보였다. 그러나 단연코 장담하는데 가장 서있기 힘든 때는 초기, 그리고 만삭이다.
슬슬 배가 나오기 시작하며 생각지도 못한 다양하면서 사소한 증세들이 나타났다. 이명이 생겨서 귀가 잘 들리지 않으며, 온몸의 가려움증이 나타났다. 특히 내게는 허벅지 뒤쪽과 손등이 심했다. 여름에는 거의 걸어 다니는게 불가능할 정도로 허벅지의 가려움이 심했다. 한걸음 걷고 허벅지를 벅벅 긁고 또 한걸음 걷고 벅벅 긁었다. (뒤에서 보면 마치 미친X처럼 보였을 것이다.) 이빈후과, 피부과를 가봐도 임산부라 뭐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말뿐. 출산을 하고 혹시 계속 증상이 있으면 약을 처방해줄 테니 그때 오라고만 한다. 초기에 그렇게 잠이 쏟아지더니 중기에는 갑작스레 불면증이 찾아왔다. 밤을 새서 무언가를 해본 적이 인생에서 거의 없을 정도로 규칙적인 수면습관을 가졌던 내게 불면증은 난생 처음 겪는 일이었다. 분명 8시간은 자야 기운을 내는데 3,4시간을 자고 아침에 또 눈이 떠지곤 했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자고 싶은데 잠은 오지않고 아침엔 피로함에 컨디션이 다운되는 악순환을 겪었다. 그래도 초기와 만삭보다는 그나마? 나은 편이라 할 수 있었다.
현재 임신 후기를 겪고 있는 상태에서 몸무게가 많이 늘지는 않아서 그나마 낫지만 대부분은 2주에 1키로씩은 찌는 터라 다른 산모들은 더욱 힘들 것 같다. 배가 딱딱하며 무게가 느껴지고 걷기조차 힘들다. 변비가 심해진다. 밥을 조금만 먹어도 배가 빵하고 터질 것 같은 느낌, 그리고 책상에 앉아 무언가 집중을 하고 있으면 뱃속에서 느껴지는 강한 태동에 이내 자세를 바꾸거나 누워야 한다. 갈비뼈가 벌어지는 지 어느 날은 하루 종일 갈비뼈가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계단을 오르는 것은 물론이고 평지를 걷는게 이렇게 힘든 줄은 몰랐기에 천천히 앞에서 걸어가는 노인들을 앞질러 가며 한숨을 내쉬었던 과거를 반성해 본다. 요즘 내가 번화가를 걸어가면 느린 걸음 때문에 뒤에서 부딪히는 일들이 있는데 그럴 때 마치 이 수많은 사람 중에 내가 제일 느리고 약한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다. 과연 출산을 하고 다시 활기 있는 걸음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그런 생각은 꽤나 절망적이다.
임신 초기에 임산부 배지를 잘 보이는 곳에 매고 임산부 석 앞에 서있는데 그것을 보고도 끝까지 핸드폰만 바라보며 앉아있던 중년의 여성이 생각난다. 비켜달라고 말을 할 수도 있었지만 상대방이 임산부가 앞에 있음을 알고있음에도 양보할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차마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엄청나게 힘든 상황이 아니었기에 망정이지, 정말 힘든 상황의 임산부였다면 이 사회가 원망스러울 정도로 싫었을 것이다.
나는 “역지사지”라는 흔한 고사성어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임신을 겪으며 마인드가 많이 바뀌었다. 식당에서 아이가 소리지를 것을 보면 눈치를 주었고 부모 흉을 보았다. 임산부가 힘들다는 소리를 하면 본인이 원해서 임신해놓고 왠 하소연이냐 하며 친구에게 뒷담을 깠다. 나도 모르게 약자에 대한 혐오를 숨쉬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었다. 틀딱, 맘충, 애비충 등등... 혐오단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들을 받아들이며 나는 그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자만하고 있었다. 도대체 나는 무슨 근거로 확신했던 것일까.
막상 내가 그 상황이 되어보니 사람들의 조그만 양보와 배려가 왜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장애인, 노인, 아이들에 대한 작은 혐오도 멈추었다. 속으로 한숨 쉬며 느린 그들을 앞질러 가는 그런 오만한 짓은 이제 하지 않는다. 태어나면서부터 완벽한 사람은 없고, 죽을 때까지 건강 하리란 보장도 없다. 출산을 하고 시간이 지나서 이런 생각이 조금은 흐려질 수 있겠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인간으로써 인간다움을 갖고자 한번 발버둥 쳐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