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ei Sarang Sep 05. 2019

애매한 비혼주의의 역설


갓 성인이 되었던 시절 가장 관심 있었던 것은 역시 이성이었다. 연애와 결혼생활에 대한 책, 연애고수들의 비법, 남녀의 선천적 차이에 대하여 친구들과 술을 한잔하면서 이렇더라 저렇더라 토론하는게 일상이었다. (불평등하다고 입을 모아 말하면서 결론은 “그래~남자나 여자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태어났어” 늘 이런 식 이였다.) 이후에 직장을 다니는 20대를 통과하며 나는 비 자발적이면서 애매한 비혼의 포지션을 취하며 살아왔다. 연애는 끊임없이 탐하면서 결혼을 밀어부칠만한 적극적인 스탠스는 취하지 않는, 그런 평범하디 평범해보이는 싱글이었다. 그렇게 사람들과 만나기만 하면 이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비혼이라 하는 모순도 알고 있었다.

불과 5, 6년 전만해도 비혼에 관하여 별로 사람들이 관심이 없었다. 비혼주의라고 하면 ‘미혼’도 아니고 ‘비혼’이란 단어가 대체 뭐냐 라는 식이었다. 허나 요새는 사회적으로도 많이 알려졌고, 언론에서도 자주 다루니 결국 제대로 자리(?)를 잡은 느낌이다. 요즘 세대 결혼율이 낮은 이유는 언급하지 않아도 수많은 방송과 책에서 다루었기 때문에 굳이 이야기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내가 비혼을 고집했던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문제였다. 혼자서 작은 원룸에 살아도 내 몸 하나 살기 충분했다. 큰 집이 굳이 필요할 이유도 없었고 회사까지 15분이면 도착하는 편리한 교통, 문밖을 나서면 줄 서 있는 수많은 밥집과 술집들, 배달 어플을 켜면 몸 하나 꿈쩍 안하고 앉아서 먹고 싶은 것을 배달 받았다. 월급이 그리 많지 않아도 아파트에 살지 않는 이상 그 돈으로 내 몸 건사하기엔 충분했다. 어느 달에 돈이 좀 많이 들었으면 다음달에 비용을 좀 줄이며 금전적으로 스스로 통제가 얼마든지 가능했다. 홀로 살 때의 생활비는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결혼을 하여 2명이 살게 되면 현재 내 공간에서 딱 1명분의 공간만 더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일단 좀 큰 집이 필요하며, 적어도 1, 2년 안에는 아이가 태어날 환경을 신경 써야 했다. 싱글일 때 챙기지 않았던 부모님과 친척도 갑자기 어른스럽게 챙겨야 하고, 미래를 위한 저축도 늘려야한다. 그 전에 결혼식이라는 행사에 생각보다 목돈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현재의 편함을 상쇄시켜줄만큼 좋은 것이 아니였고 돈이 아주 많지 않으면 곧 내게 부담으로 다가올 것만 같았다. 나의 비혼주의는 그렇게 ‘경제적인 이유’였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 경제적인 여건이 해결된다면 그래도 비혼주의를 고집할 것인가’ 라는 질문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게 직접적으로 다가온 현실이 아니었기에 웅얼대고 대답하길 회피했던 것도 사실이다. 주변인들에게 비혼주의라고 말은 했지만 나의 명확한 주관이 아님을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가끔 결혼을 하고 큰 집에 살며 지원을 많이 받아서 싱글일때보다 풍족하게 사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런 친구들을 볼 때면 또 결혼이란 참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질투인지 모를 그런 감정을 나는 비혼주의로 포장했다. 그렇게 애매한 나의 비혼주의는 그런 경제적인 사정을 어느정도 해소시켜줄 사람을 만나니 사라졌다. 이 과정에서 나는 주변인들에게 늘 피력해왔던 나의 입장을 스리슬쩍 바꾸는 주관 없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기에 이후 뭐든 확실하게 내 미래를 확정 짓는 것을 그만두었다. 위선자가 된 기분이었다.




최근에 회사에서 30대 여자 동료와 대화를 나누며 듣게 되었다. 그 동료는 자신이 비혼주의자라고 명확하게 스스로를 정의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내가 여태 듣지 못했던 이유였다. 본인이 이성에게 인기가 없을 만한 외모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결혼을 위하여 잦은 부자연스러운 만남을 갖기에는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것 이였다. 한마디로 나 좋다고 하지 않으면 굳이 나도 노력해서 만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나이가 좀 있는 상사가 “이래선 안돼~ 노력을 해야 생기지.” 그리고 또 다른사람은 "나중에 이런애들이 꼭 결혼한다고 갑자기 그러더라." 라는 등의 소리를 했지만 나는 그 동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그 동료는 가장 좋은 게 KFC 치킨을 먹는 것이고, 특정 아이돌 덕질을 하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한다. 그런 즐거움을 즐기면서 인연을 갑자기 만나서 결혼을 결심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속도는 각자 다른데 그런 사람에게 어느 누가 아이를 키우고, 저축을 해서 아파트를 늘려가라는 그런 조언을 해 주겠는가. 행복의 조건은 정말 사람 마다 다르다.


나는 그전에 속마음과 다른 애매한 비혼주의를 주창 했었지만 그 동료는 본인주관을 끝까지 밀고 나갈 수도 있다. 그가 마음속으로 실제론 어떤 생각을 갖고 있든, 나는 그 앞에서 미래는 확신못한다는 등의 말은 하지 않았다. 아주 어릴 때부터 본인의 성향을 고찰하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높다. 그렇기에 그 판단을 지지할 것이고 그 판단과 다른 미래를 살아도 이해할 수 있다. 필연적인 사회의 변화이고 사람들의 개인적인 신념을 충분히 존중해야한다는 생각이다. 비혼주의가 갈수록 늘어가는 현재, 출생률 감소를 이유로 그걸 비판하는 짓은 가장 시대에 역행하는 행동인 것 같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이 선택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곧 한국에서 멋드러진 1인 가구들의 발전이 더욱 기대된다.


작가의 이전글 우울증 치료제, 떡볶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