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고 익숙한

by 라일라



“가고 싶은 나라는 아니었어. 아는 것도 별로 없었고. 아니 별로가 아니고 전혀지 전혀. 전혀 몰랐어. 너 페루 수도가 리마인 거 알고 있었어? 아! 요즘은 많이들 알고 있더라. 나 페루 다녀오고 한 달 뒤쯤이었나. 티브이에서 출연자들을 납치하다시피 해서 페루에 떨어뜨려 놓고 여행하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더라고. 내가 저곳에 있었나 싶을 정도로 굉장한 이질감이 들었어. 아무튼, 페루라는 나라. 누군가의 버킷 리스트로 작성되어 있을 마추픽추, 그곳에 가기 위해 들러야만 하는 도시 쿠스코. 그런 거창한 이유로 가게 된 건 아니야. 일단 멀잖아. 내가 갈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멀리 떨어져야겠단 생각을 했지. 그즈음 A 선배 바람병이 도져서는 이 나라 저 나라 쏘다니고 있었는데 마침 그때 선배가 있던 곳이 페루였던 거야. A 선배 알지? 한 번 같이 만났었잖아. 그래도 A 선배가 거기 생활이 있을 텐데 무작정 들이닥칠 순 없잖아. 그럼 그럼. 그건 예의가 아니야. 아 그래, 그날도 목요일이었어. 주말에 술 한 잔 할까요? 금세 답장이 왔어. 그래, 기다리마. 그 자리에서 바로 비행기 티켓 사서 내일모레 떠났어. 제주도 가는 것보다 더 쉽게 말이야.”

“많이 추웠어. 짐 쌀 때 물어봤지 안 그래도. 살고 있는 사람이 정확하게 알겠지 싶어서 A 선배한테 물어봤다니까. 음.. 초여름과 초가을을 왔다 갔다 하는 정도?라고 답이 왔어. 초여름과 초가을이라면 사이에 여름도 있다는 얘기잖아. 그래서 다시 물어봤거든. 더워요, 추워요? 돌아온 대답은 여긴 바람이 참 좋다. 라더라. 나도 참 멍청하지. 문자를 받자마자 그즈음 내가 입고 다니던 옷들을 캐리어에 주섬주섬 챙겼어. 5월 말쯤이었으니까 옷들이 꽤 얇았거든. 나, 핫팬츠도 하나 쑤셔 넣었잖아. 남미, 왠지 더울 것 같지 않아? 알아. 그렇게 한심해할 필요 없어. 그런데 검색 같은 건 하기 싫었어. 룰루랄라 신나서 가는 여행도 아니고. 아무렴 어때라는 마음이었어. 그래도 가을이란 단어가 언급됐으니 예의상 후드 집업을 하나 챙겼지. 야, 나 그 집업 점퍼 아니었으면 쿠스코 공항에 발도 못 대보고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잡아탔을 거야. 정말이지 너무 추웠어.”

“가는 동안 3번의 기내식이 나왔는데 먹지 않았어. 좌석 앞 작은 모니터에선 비행기가 어디쯤 지나고 있는 지를 계속 알려줬거든. 날짜 변경선. 날짜 변경선을 지나고 있는, 구름 사이사이를 혹은 구름을 뚫고 날아가고 있는 비행기 안에서 은박 그릇에 뻣뻣하게 마른 파스타는 도저히 먹고 싶지 않았어. 대신 와인을 달라고 했어. 레드냐 화이트냐 묻길래 소리가 나야 할 알파벳 모든 모음 자음을 정성껏 아주 정성껏 발음해서 레드와인, 이라고 대답했는데 맙소사. 화이트 와인을 주는 거야. 그렇지 너도 이상하지? 맞아 나도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아무리 내 발음이 보잘것없어도 레드와 화이트 둘 사이엔 잘 못 알아들을 만한 것이 있을까. 잠시 시무룩해졌다가 금세 괜찮다, 생각했는데 ‘무엇’을 연구하기 위해 페루로 간다는 미국 아저씨가 분명하게 레드와인이라고 했는데 화이트 와인을 가져다주는 걸 보고서였어. 사람이 그렇게 간사하더라니까. 남의 불행을 보고 자기 위안을 삼는 일을 사람 말고 또 어떤 종이 그렇게 할까. 그렇지?”

“아니야 비행기를 한 번 더 타야 했어. 리마에서 다시 쿠스코로 가는 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하는데 그제야 실감이 났어. 나 진짜 멀리 와버렸구나. 긴장하고 있었어. 그럴 만도 하잖아. 처음 해외여행이 20시간 넘게 떨어져 있는 페루라니. 한편으론 다행인 일이었어. 내가 날 지켜야 하는, 나만이 날 지킬 수 있는 그 상황 말이야. 무엇보다 14시간의 시차, 완벽히 바뀐 밤과 낮. 누군가를 습관적으로 짐작하기에 불편하잖아. 여러모로 다행인 거였어, 페루. 네가 날 지나치게 오냐 해서 그런 거지 나 꽤 야무진 가봐. 별문제 없이 수속을 모두 마치고 나니 5시간이 남더라고. 그제야 배가 고프다 생각을 했어. 새벽 시간이었는데도 여행자들로 공항이 꽤 붐볐던 것 같아. 식당가를 찾았는데 한국에서도 유명한 햄버거와 피자 브랜드 가게가 있었고 현지 브랜드인 것 같은 샌드위치 가게 3곳이 쪼르륵 붙어 있었어. 공항 다른 쪽에 진짜 식당들이 있지 않을까 잠깐 의심했는데, 한번 의식한 허기가 점점 사나워져서 더 이상의 이동은 무리였어. 리마에 도착해 처음 맡는 음식 냄새. 내 기억엔 낯선 냄새. 얕은 두려움을 동반하는 그 냄새. 우리 집 강아지가 음식을 보면 얼굴을 반쯤 쳐들고 집요하게 킁킁킁킁 냄새를 맡는데 아마 곁에서 날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면 강아지, 아니 개와 비슷하게 냄새를 맡는군요.라고 말을 걸었을 거야. 결국 냄새의 답을 찾지 못하고 샌드위치 가게 앞으로 갔어. 이상하더라. 그 음식 냄새 좋다고 느껴지진 않았거든. 아니 정정할게. 좋다 나쁘다 보다, 지나치게 낯설어서 피하게 되는 그런 냄새였어. 그럼 분명히 샌드위치 가게일 가능성이 높잖아. 두 곳은 세계 곳곳에 매장이 있는 프랜차이즈인데 페루라고 얼마나 맛이 다르겠어. 그렇지? 그런데 난 굳이 그 샌드위치 가게로 갔다니까. 여행자의 마음가짐 같은 거였나. 스페인어와 영어가 뒤섞여 적힌 메뉴판을 한참 보다가 치킨이 들어있는 샌드위치랑 커피 한 잔을 주문했어. 돈을 내니 이름을 묻는 거야. 이름은 왜 묻죠? 음식이 나오면 당신을 부를 이름이 필요해요. 그렇군요, Daisy라고 불러줘요. 응, 내 영어 이름이야 Daisy. 몰랐구나. 너랑은 영어 이름을 주고받을 일이 없었으니까. 잠시 뒤에 Daisy라고 부르더라고.”

“굉장히 허술해 보이는 샌드위치와 일회용 종이컵에 찰랑하게 담겨있는 커피 한잔이 놓인 트레이를 들고 적당한 구석에 앉았어. 가지고 간 돈 계산을 해야 해서 그 자리가 딱이었어. 맙소사. 강아지처럼 아니 개처럼 킁킁킁킁 맡아내려고 했던 그 냄새, 내 기억 속엔 낯선 그 냄새의 주범은 역시나 샌드위치였어. 생긴 모양은 핫도그에 더 가까웠는데 왜 그런 핫도그 있잖아. 길쭉한 빵 사이를 갈라서 소시지를 넣고 그 위에 다진 양파 올리고 소스를 주르륵 뿌려놓은 그런 거. 그런 모양이더라고. 이걸 샌드위치라고 불러야 돼 핫도그라고 불러야 돼. 아무튼 곤란한 냄새의 정체는, 샌드위치라고 할게, 샌드위치 위에 뿌려져 있는 고수였어. 그래 난 그때까지 고수를 먹어본 적이 없었어. 우리가 쌀국수 먹으러 가도 원하는 사람한테만 조금 내어줄 뿐이잖아. 고수가 지배하는 식당의 냄새를 맡아봤을 리가 없잖아. 샌드위치를 몇 번을 들었다 놨다 하는 중에 내 허기는 그 성이 점점 과해져서 오른쪽 옆구리를 마구 찔러대고 있었어. 제발 좀 그냥 빨리 먹어. 라길래 겁에 잔뜩 질려서는 한 입 크게 베어 물었지. 나 어렸을 때 엄마가 밤마다 얼굴에 바르는 영양크림이 있었어. 그걸 바를 때 엄마는 손가락 두 개로 크림을 듬뿍 떠서 얼굴에 문질문질 했거든. 그런데 그렇게 듬뿍 뜰 때 꼭 생크림 같다고 생각했는데, 하필 그 맛이 너무 궁금한 거야. 그래서 하루는 엄마 몰래 그 크림을 손가락으로 찍어서 먹어봤지. 그 맛이었어. 영양크림 맛. 그 샌드위치에서 엄마 영양크림 맛이 났어. 냄새는 낯선데 맛은 익숙하다니.”

“아니, 다 못 먹었어. 영양크림 맛이었다니까. 다행히 커피가 아주 맛있었어. 커피 한 모금 크게 마시고 나니 긴장이 조금 풀렸어. 그런데 외롭더라고. 거리가 얼만큼인지도 모르게 떨어진 나라에서 패딩 점퍼를 입고 있는 사람들 틈에서 집업 점퍼 하나 걸치고 떨고 있는 내가 그렇게 외롭고 그렇게 다행이었어. 한참 만에 찾은 내가 나만 위하는 시간, 그게 다행이었다고. 아무튼 덕분에 페루에 있는 내내 맥주만 마시다 왔지 뭐야.”

“지금? 한국에 와서 종종 생각이 났어. 아니지 그립다가 맞는 건가. 완벽하게 혼자였던 공항에서의 그 시간. 가끔 날 찔러. 다행이었던 그 시간이 아프더라고. 또 아플 땐 먹는 게 힘이잖아. 그래서 비슷한 냄새가 나는 곳을 찾아온 거지. 이거 듬뿍 넣어. 이 집 쌀국수는 고수 듬뿍 넣어야 맛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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