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멍멍, 낑낑, 멍멍, 왈왈'
"꿈인가? 꿈이라기엔 지나치게 가까운 소리인데 무슨 개소리지?"
어젯밤 회식에서 과음을 했고 술이 깨지 않은 채 비몽사몽이었다.
우리 집에 개가 있을 리 없으니 이렇게 가깝게 들리는 개 짖는 소리는 분명 꿈이었다.
'돼지꿈을 꿔도 모자랄 판에 개꿈이라니.'
숙취 때문인지 뱃속에서 나비가 요동치는 것처럼 울렁거려 더 이상 잠을 잘 수 없었다.
겨우 눈을 떠 몸을 모로 돌려 눕자마자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개, 아니 강아지가 침대 위에 두발을 턱 얹고 날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뭐지? 진짜 술이 덜 깼나? 아직 꿈인가?'
몸을 번쩍 일으켜 도망치듯 침대 가장자리로 엉덩이를 빼 앉았다.
꿈은 아니었다.
진짜 강아지가 새까만 눈으로 날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멍멍멍, 왈왈, 멍멍'
너무 놀란 나머지 엄마를 부르지도 못하고 침대 끝에서 강아지와 대치 중이었다.
강아지가 짖는 소리를 들었는지 그제야 엄마가 방으로 들어왔다.
"엄마 뭐야, 왜 우리 집에 강아지가 있어? 얘 뭐야!"
나는 거의 울 듯한 목소리였는데 엄마는 도리어 깔깔깔 웃으며 말했다.
"우리 예겸이가 강아지 그렇게 좋아하잖아. 마침 엄마 친구 아들네 강아지 데려가라고 해서 데려왔지. 귀엽지?"
어이없을 정도로 천진한 엄마의 대답에 머리가 멍해졌다.
손주가 길에서 지나가는 강아지만 보면 쫓아다니던 게 마음에 걸려 강아지를 덜컥 데려온 엄마의 이유였다.
엄마가 거실로 나가자 발을 올려놓고 날 뚫어지게 쳐다보던 강아지는 유유히 졸졸졸 쫓아나갔다.
나는 동물을 특히 개를 무서워했다.
한 번은 동네 산책 중 반대편에서 주먹만 한 강아지가 총총총 걸어오고 있었다. 말 그래도 주먹만 했고 목줄도 차고 있었고 그런 강아지가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주인도 곁에 있었다.
그런데도 난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렇게 가만히 있으면 강아지가 나를 모른 척하고 스윽 지나갈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강아지는 내 앞에 멈춰 서더니 갑자기 두 발을 내 정강이에 턱 올리고는 그 짧은 뒷다리를 힘껏 펴 기지개를 켜는 것이 아닌가. 솜털같이 가벼운 강아지였으니 두 발을 올렸다 한들 아무 느낌도 나지 않았을 텐데 마치 사자 다리가 얹어진 냥 비명을 지르고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주인은 놀라 강아지를 들어 올렸다.
'망고야 가자. 많이 놀랐지?'
개에게 물린 적도 없고 이렇게까지 정색할 이유가 없는데 내내 이상한 마음만 담고 있었다.
최대한 천천히 거실로 나가보았다. 마음 같아선 침대에서 절대 내려오고 싶지 않았는데 출근 준비를 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엄마는 강아지 앞에 반쯤 엎드려 한없이 즐거운 목소리로 '손, 쪽, 빵' 등을 외치고 있었다.
강아지는 난생처음 듣는 알 수 없는 단어들에 고개가 꺾이도록 이리 갸우뚱 저리 갸우뚱거렸다.
웃음소리 날 일 없이 고요하기만 한 집이었는데 엄마가 웃고 있으니 나도 같이 피식 웃음이 났다.
흐뭇한 마음도 잠시.
강아지가 엄마의 이상한 소리에 정신이 팔려있을 때 거실을 가로질러 화장실로 뛰어야 했다.
크게 심호흡 후 넓지도 않은 집에서 도움닫기까지 하여 화장실로 와다다다다 뛰어 들어가 문을 탁 닫았다. 유난스럽고 호들갑스러운 내 모습에 또 한 번 피식거렸다.
3일 동안 강아지를 피해 다녔다.
출근 전엔 집 안에서 혼자 100m 달리기를 했고 퇴근 후엔 쥐도 새도 모르게 방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목이 말라도 꿋꿋하게 참아냈다.
강아지를 피해 도망 다닌 지 3일째 되던 날, 퇴근 후 현관 비밀번호를 띡띡 누르고 문을 열었는데 가슴팍에 갈색 솜뭉치가 턱 하니 안겨졌다. 본능적으로 두 손으로 받아 들었는데 강아지였다.
놀랄 새도 없이 포옥 안기는 강아지를 어쩌지 못하고 그대로 들고 소파에 앉았다.
"엄마 얘 좀 어떻게 해봐."
"어머 우리 라떼가 언니가 벌써 좋은가보다. 저렇게 포옥 안겨있잖아."
"얘 이름이 라떼야?"
"응, 전에 있던 집에서 라떼라고 불렀대. 조금 촌스럽긴 한데 환경 바뀌고 힘들 텐데 이름까지 바뀌면 저 작은 애가 얼마나 혼란스럽겠어."
갈색 솜뭉치 라떼는 무게가 느껴지지 앉았다.
엉거주춤 안고 있는 팔인데도 편안한 자세로 턱을 괴고 코를 킁킁거렸다.
팔에 닿는 라떼의 배가 따뜻했다.
잠시의 시간이 지나자 30년 넘게 개에 대한 공포로 살았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빠도 갑자기 집에 온 라떼가 내심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쟤 다시 데려다줘. 안 데려다주면 내가 나갈 거야."
"잘 됐네. 우리끼리 잘 살면 되겠네!"
대수롭지 않은 엄마의 대답에 당황한 아빠는 머쓱한 걸음으로 안방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라떼와 단 둘이 산책을 해보고 싶었다.
라떼와 산책을 마음먹고 난 후 사흘 밤낮 개통령 아저씨의 유튜브를 정주행 했다.
태생이 쫄보인 나는 일상생활에서 용기 내는 일이 좀처럼 없었는데 개통령 아저씨의 특훈 덕분인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났다.
주말 아침, 부드러운 갈색 솜뭉치 앞발에 하네스를 걸고 응아를 볼 수도 있으니 비닐도 대여섯장 챙겼다.
"너무 걱정하지 마, 라떼 산책 잘해."
엄마의 말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라떼는 내 발에 맞춰 종종종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걸었다. 살랑 부는 바람에 라떼의 곱실거리는 귀털이 휘익 날렸다.
"라떼야!"
자기 이름이 라떼인 것을 아는지 나를 올려다보고 활짝 웃었다. 아침 해에 갈색빛 라떼 털이 금색으로 반짝거렸다.
가슴에서 알 수 없는 뜨거움이 훅 끼쳤다.
갑자기 나에게 뛰어들어온 이 작은 갈색 솜뭉치를 평생 사랑해야지. 온 힘 다해 사랑해야지.
"라떼야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