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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희 Aug 18. 2020

기억에 대하여

"저쪽에 꼬마 둘이 꼭 우리 얘들 어릴 때 같아"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내가 주말에 출근하면 저 아빠처럼 데리고 왔었잖아"

"......"

"수건 좀 줘" 


대낮부터 장산 너덜길을 걸었다. 약 40분 정도 오르막을 올랐다. 허리 숙여 몇 번의 기침을 하고 나서야 고른 숨을 이었다. 고개만 살짝 들었을 때 남자아이를 봤다. 또다시 기침을 했다. 나무 의자에 앉아서 물 한 모금을 마셨다. 남편은 지나치다며 그만하라고 했다. 워킹맘으로 내가 살아온 시간, 남편과 어린 아들이 살아왔던 시간이 아프게만 다가왔다. 


아빠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저 집도 엄마가 주말에 출근했나 봐? 선배도 그랬잖아."

"그만해라"

"우리도 엄마 없이, 아빠 없이 얘들 데리고 다녔는데, 그렇지"

남편은 눈물 점을 확 빼버려야겠다고 했다. 뭐 어쨌다고......


40대 끝자락에 퇴직을 했다. 아들 둘 다 스무 살이 넘었다. 스물다섯에 결혼해서 어린 자식들을 두고 일했다. 일하는 엄마로 늘 미안했고 잘 키우고 싶었다. 놀이터에서 놀 때는 함께 뛰고, 미끄럼틀을 타고 그리고 정글짐을 올라갔었다. 걸어 다니면서 보이는 세상은 시간을 거슬러갔다. 기억 속 한 지점에 서서 나, 어린 아들과 남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우리는 어렸는데 왜 그렇게 어른처럼 굴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7월에 동료 과장님이 혈액암으로 돌아가셨다. 정비부서로 서울 발령을 받은 지 6개월 만이다. 수술과 10번의 항암치료를 받고 골수 이식을 위한 준비를 마친 상태였는데, 갑자기 피를 토하더니 심장마비가 왔다고 했다. 사모님은 죽음에 동의할 수 없다며 울부짖었다고 했다. 부산에서 아들이 도착할 때까지 살아있게 해달라고 매달렸단다. 심장을 압박해서 갈비뼈는 이미 다 부스러진 상태였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고 했다. 


과장님도 아들만 둘이다. 장례식장에서 상주 노릇을 하고 있다. 미혼이고 20대 후반이다.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지만 어려 보였다. 24년 전 남편 모습이다. 아버님은 췌장암 말기로 6개월 정도 살 수 있다는 선고를 받았다. 우리는 서둘러 4월에 결혼했고, 그 해 8월에 돌아가셨다. 남편은 29살이었다. '선배도 어린 나이였네, 혼자서 장례절차 다 치르고, 많이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너덜길을 계속 걸으며 말했다. 남편도 '그래 어렸었지'라고 했다. 뜻밖에 대답이었다. 스물아홉의 남편도 많이 무섭고 두려웠던 것이다. 한 발 앞서 걷던 남편 등을 토닥거려줬다. 그때 우리는 어른처럼 굴 수밖에 없었다.


장맛비에 길이 없어졌다. 갈대가 무성하게 자라서 길을 막고도 있었다. 지난 폭우에 작은 산사태가 난 모양을 하고 있었다. 굴삭기로 땅을 갈아엎은 모양새였다. 땅도 내려앉아있고 포장도로는 곳곳이 뜯어져 나갔다. 자연재해는 인간에게도 무섭지만 자연을 완전히 파괴해버렸다. 뿌리가 뽑힌 채 비스듬히 누워있는 나무, 물에 휩쓸려 떠내려온 큰 바위, 있던 자리에서 깊게 파여 내려앉아 분리된 땅과 바위. 그렇게 자리 잡고 시간이 또 지나면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을 것이다. 


기억과 현실이 충돌한다. 어떤 모습을 보면 연관된 기억이 소환된다. 마음이 좋지 않은 상태다. 도깨비처럼 보이는 과거를 다독여준다. 마음이 더 아프지 않게 말이다. 아팠던 그 자리에서 시간을 견뎌 준 마음에 조금이라도 쉬라고 하고 싶다. 이제 그만해도 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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