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을 기억하는 방법 3
한국에서는 토마토를 송송 썰어서 설탕을 뿌려 먹는다고 한다면 포르투갈인들을 비롯한 남유럽인들은 기겁을 할 것이다. 마치 제주에서는 수박에 쌈장을 찍어 먹는다는 말에 육지 사람들이 놀라듯 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더운 여름이면 나는 설탕 토마토가 땡긴다. 적당한 신맛과 적당한 단맛, 그리고 겉은 질기고 속은 물컹한 꽤 괴상하지만 싫지 않은 식감, 무엇보다 풍부한 과즙(아니 채즙이라고 해야하나?)은 갈증 해소에 제격이다. 사실 어릴 적 할머니가 해주시던 추억의 맛 때문에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게 크겠지만 말이다.
토마토가 한국에서는 채소로 알려진 것이 과일보다 채소가 관세를 덜 내도 되기에 채소로 수입해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가 자기 오빠가 알려준 상식이라며, 자신의 오빠는 여행책을 많이 읽어 상식이 풍부하다고 했다. 그렇구나! 여행책은 상식을 풍부하게 해주는구나! 그저 박물관 입장료와 휴관일 정보만 있는 줄 알았던 론니플래닛 류의 여행책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는데 그런 선입견이 무너진 일화였다. 제아무리 토마토 스파게티와 샐러드에만 익숙한 포르투갈인이라도 이 달달한 설탕 토마토 맛을 보면 그동안 토마토에 대해 갖고 있던 선입견이 깨질지 모른다.
그러나 절대로 깨트릴 수 없는 선입견 같은 것도 있다. 그러니까 소중이 지켜야 할 선입견 같은 것 말이다. 선입견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도 선입견이다. 포르투갈의 초밥 뷔페에서 만난 딸기 초밥이 그렇다. 딸기는 밥과 먹어선 안된다. 딸기는 후식이고 과일이라는 선입견은 소중히, 두고두고 지켜져야만 한다.
같이 살던 포르투갈 아주머니는 상추를 깨끗이 씻은 후 그냥 손으로 대충 찢어 토마토를 썰어 넣고 소금을 조금 뿌린 뒤 올리브유를 한 바퀴 돌려 샐러드를 만드셨다. 대충대충 만든 것 같은데 재료가 신선해서 그런지 다른 소스가 필요 없었다. (한국에 와서 몇번이나 따라해봤지만 그 맛이 안난다.) 처음 아줌마가 해준 이 샐러드를 먹고 요리 솜씨에 감탄했는데 사실 아줌마는 샐러드 담당이셨고 그외 모든 요리는 아저씨가 도맡아 하셨다. 또 하나의 선입견이 깨지는 순간.
나중에 올리브유를 만드는 공장에 통역을 하러 간 적이 있는데, 그때 들은 이야기가 좋은 올리브유에서는 토마토 향기가 난다고 한다. 새콤하면서 상쾌한 과일향. 그러고 보니 올리브유에서 나는 향이 토마토 향이었구나. 비슷한 향이 나서 토마토와 올리브유가 그렇게 잘 어울렸나 보다.
생모차렐라 치즈와 함께 썰어 만든 카프레제도 좋은 올리브유만 슬쩍 뿌려주면 풍미가 확 살아난다. 상큼한 토마토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이런 얘기를 꺼내서 죄송하지만, 토마토를 많이 먹으면 암내가 독해진다고 한다. 오랫동안 그 범인이 치즈인 줄 알았는데 토마토, 이 앙큼한 녀석의 짓이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