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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림 Jun 11. 2024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와 나의 구역

나 하나 지키기도 벅차다는 세상에서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는 루돌프 회스와 그의 가족의 일상을 다룬 작품이다. 이 설명에는 수식어가 반드시 필요하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옆 사택에 살던 소장' 루돌프 회스와 그의 가족의 일상. 더 나아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옆 사택에 살던 소장' 루돌프 회스와 그의 가족의 '행복하고 평화로웠던' 일상이라고 해야 한다. 평범한 어느 가족의 일상이 역사적 소재로 영화화되기까지, 그 간극이 관객들이 머무르게 되는 구역(Zone)이어서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스틸컷


영화 속 주인공은 집을 쓸고 닦고,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일상의 영위자이나 어딘가 스산하다. 쉽게 말해, 쎄하다. 직접적으로 악행을 하진 않는다. 그러나 관객은 회스 가족이 아우슈비츠 사택에서 보내는 일상을 지켜본 뒤 자연스럽게 판결을 내린다. 그 판결은 일찍이 한나 아렌트가 남긴 판례와 나란히 한다. 악의 평범성.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스틸컷


회스 가족과 관련한 기사를 찾아보다가 딸의 생존 당시 인터뷰를 읽었다. 2024년 3월 24일 영국 <가디언>이 공개한 회스의 자녀 브리지트의 생전 마지막 인터뷰였다.


“He was a wonderful, absolute wonderful person,” she said. “I couldn’t have wished for a better father.” (16 Dec 2021, Thomas Harding)

‘Mum knew what was going on’: Brigitte Höss on living at Auschwitz, in the Zone of Interest family | Holocaust | The Guardian


브리지트는 더 나은 아버지를 바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히 훌륭한 아버지였다고 회스를 회상했다. 브리지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100만명 이상을 대량 살상한 소장 회스를 그렇게 회고했다. 어머니도 좋은 분이었다며, 집에서 일하던 수감자들이 어머니를 "아우슈비츠의 천사"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브리지트는 70년 세월과 상관없이 여전히, 양갈래 머리를 한 채 집안의 풀장에서 수영을 하던 소녀였다. 담벼락 하나를 두고 있었던 건물의 샤워실에선 물 대신 가스가 나오고 있었지만 말이다.


평범한 이가 악인이 될 수 있다면, 악인의 입체적인 면모 또한 이해해야 할까?

그러니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연민을 갖고 모든 걸 용서해야만 하는 걸까?


질문을 던져보지만 납득, 아니 용납되지 않는다. 악인의 입체적 면모는 평범한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경고여야 한다. 악인을 이해하고 그에게 도달하려는 안내여서는 안 된다. 용서의 백지수표는 세계의 부도로 이어진다.


인간이 악의 없이 악해질 수 있는 이유.

루돌프와 헤트비히 회스가 아우슈비츠 사택에서 평범한 가정을 꾸렸던 당위.

브리지트 회스가 부모를 여전히 'wonderful', 'angel' 같은 단어로 떠올리는 자신감.


그 모든 건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생각하게 한다. 루돌프는 수용소 굴뚝에서 시신을 화장하는 연기가 나와도 당장 피고 있는 시가의 연기에 집중한다. 헤트비히에겐 수감된 이들의 울부짖음보다 자신의 아기 울음이 선명하다. 나의 출세, 나의 일상, 우리 가족이 구역을 경계짓는 꼭지점이다. 문제는 관심의, 이익의 영역이다.


영화 제목이기 이전에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수감자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설정한 구역이기도 하다. '나의 영역'만 지키려는 건 다시 말해 어떤 이데올로기가 정의한 생존과 이익에 잡혀 스스로를 가두는 걸지도 모른다. 회스 가족이 집을 아무리 낙원처럼 꾸며놨대도 결코 아우슈비츠를 벗어날 수 없고, 결국 긴 시간 홀로코스트 영화로 회자될 <존 오브 인터레스트> 안에 단단히 갇혔듯이 말이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스틸컷


덧붙이는 글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 폴란드 소녀 알렉산드라는 위험을 무릅쓰고 강제노역장에 사과를 심는다. 이것은 실화다. 루돌프 회스의 손자 라이너 회스는 "할아버지의 죄악은 내 선에서 끝내고 싶다"며 반나치 활동을 했다고 한다. 이 영화를 만든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은 유대인임에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비판했다. 이 글이 향했던 관심은 결국 이 세 명을 향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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