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에서 내 책 내는 법 - 정상태>
책을 읽고 투고하는 방법을 알기보다 난 책을 낼 생각이 없었다는 사실을 더 정확히 알게 되었다.
못된 편집자가 글을 쓰며 책을 내고자 하는 작자들을 후둘겨 패는데 나는 영문 없이 같이 뚜드려 맞았다.
이 책을 읽는 독자를 크게 2가지로 분류할 수 있을 텐데 첫 번째는 '나도 책이나 써볼까?' 거들먹거리며 즐거운 상상과 함께 가볍게 읽고 있는 독자다.
두 번째는 꽤나 진지하게 책을 낼 생각으로 여러 가지 방법을 골몰해보다 편집자가 말하는 출판사에서 내 책 내는 법이 궁금해 읽고 있는 독자일 테고 난 당연히 전자다.
나처럼 허황되지만 행복한 상상을 즐기는 몽상가 타입 독자까지도 굳이 현실로 끄집어 내어 매섭게 혹독한 현실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아주 실리적인 책이다. 쩝.
조지 오웰의 저 기막힌 은유를 다시 한번 빌려 오자면, 여전히 많은 예비 저자가 유리창' 같은 원고가 아니라 거울' 같은 원고를 보낸다. 이렇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의 원고는 유리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 (세상)과 사람들(독자)에게 말을 걸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거울 앞에 선 채 당신 자신만을 비추며 독백하고 있는가? 어쩌면 여기에서 "왜 투고하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p.25~26
굳이 투고할 생각이 없더라고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다.
특히나 남에게 보이는 글을 쓰기를 원한다면 편집자의 시선에서 내가 쓴 글을 바라보기는 꼭 필요하다.
언제나 독자의 관점으로 책을 맛보고 즐기기만 했지 편집자의 시선으로, 그러니까 자본주의 관점으로 판매 부수로써 책을 바라본 적이 없기에 더 신선하고 재밌다.
일주일 전 쓴 일기가 떠올라 책을 덮고 일기를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보았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에 관한 허무맹랑한 상상이 불어 터져 나온 글인데 내가 새벽에 글을 썼던가 착각할 만큼 손발이 오그라드는 와중에 한 부분이 눈에 띄었다.
난 책을 내고 싶다고 쓴 줄 알았는데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출판사에서 책을 내는 법'을 읽으며 투고할 때 필요한 구체적인 정보는 그저 흘려읽었다.
나에겐 그렇게 중요한 정보가 아니었다.
왜일까? 다시 한번 내가 글을 쓰고 싶은 이유를 생각해 봤다.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난 나와 같은 사람들을 찾고 싶었다.
나처럼 잘난 대학에 나오지도 매력적인 직업을 가지지도 않았지만 제 나름대로 기죽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사람. 기혼이고 딩크를 고려하고 있는 사람. 페미니즘을 지향하며 그 안에서 스스로 모순됨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 겁이 많고 세상이 참 두렵지만 그래도 알고자 하는 욕망이 커 벌벌 떨면서도 눈을 게슴츠레 뜨고 있는 사람. 책을 좋아하는 사람. 을 찾고 싶었다. 찾지 못하니 글을 써서 알리고 싶었다.
그저 한 번씩 찾아오는 외로움에 '사람을 찾습니다.' 전단지를 뿌리고 싶었던 거다. 저자의 말대로 이건 꼭 책을 써야 하는 일은 아니다. 이로써 난 손쉽게 포기했다.
이 책은 어리석은 허수 지망생의 의지를 미리 빼어버리게 함으로써 월평균 110개의 투고를 받는다는 편집자의 귀찮음을 조금이나마 덜었다는 점에서 도움이 되었고 한 독자의 상상하는 재미를 빼앗았다는 점에서 아쉬웠다.
왜 산티아고에 갔는가? 산티아고를 당신만이 얘기할 수 있는 다른 주제들과 연결할 수 있는가? 산티아고 이전과 이후에 무엇이 바뀌었는가? 그곳에서 얻은 당신만의 무언가를 특정 분야의 지식으로 가공해 전달할 수 있는가? 차별화된 콘셉트를 이끌어 내지 않는다면 설령 '산티아고'가 투고를 한다 해도 책이 될 수 없다.
p.49~50
그들은 자신의 원고가 책으로 출판되는 것 자체를 자기계발의 수단으로, 250쪽짜리 명함으로, 이력서에 적을 한 줄 경력으로 여긴다. 언젠가부터 '책 쓰기'가 (한 단어처럼 쓰이게 된 것도 모자라) 자기 계발 도서의 목차 중 한 챕터(“자기 이름으로 된 책을 내라", "책 쓰기가 답이다" 등등)에 당당히 자리 잡게 된 것 또한 이런 현상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p.76
자조와 한탄으로 가득 찬 간밤의 술자리를 마치고 난 다음 날 아침, 편집자가 몽롱한 정신으로 인터넷 서점에 접속한다. 바로 지난주에 출간된 책의 반응(편집자는 뉴스 아래 달린 댓글은 안 봐도 자신이 만든 책에 달린 독자들의 서평은 반드시 본다)을 살피기 위해서다. 그새 독자 서평이 몇 개 달려 있다. 게다가 모두 호평 일색이다. 몽롱했던 정신이 갑자기 활기를 찾는다. 그리고 부랴부랴 그 책의 저자에게 전화를 건다.
"선생님, 우리 책을 반가워해 주는 독자가 분명히 있을 줄 알았다니까요!"
p.82~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