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마르고 얼굴에 웃음기가 없다. 그럴지라도 큰 눈에 웃음을 물게 되면 천진한 소년처럼 보이는 오십 대 중반이다. 산업재해로 휠체어를 탄다. 어느 회사의 론볼 선수로 뛰고 있다. 나는 그의 근로를 돕는 지원인이다. 사람이 늘 한결같아 안심이 된다.
어머니가 아프고 나서 혼자 모신 지가 팔 년 여의 시간이 흘렀다고. 형제들이 여럿이어도 그동안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았다. 혼자서만 요양원으로 어머니를 보러 다니고 병원에 모시고. 모든 비용마저 부담하였다.
처음에야 장애를 입은 아들을 안쓰럽게 여기고 아들과 같이 살기 시작했을 어머니다. 나이가 들어 어머니는 치매를 앓게 되고 요양원으로 모실 수밖에. 이틀 전에도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셨다고 뵈러 간다고 했다. 살아생전 그때가 마지막 만남이었던 것 같다. 그전에도 몇 번의 고비를 넘기셨다고. 아들이 밟혀 차마 눈을 감지 못하셨던 것은 아닌지. 어머니에 관한 것은 장애가 있는 동생에게 맡겨버린 형제들에게 원망도 없다.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면 되지. 뭐가 어렵냐는 듯.
론볼 친선 경기가 열리는 날 어머니가 떠났다. 막내아들 걱정이 되어 어찌 눈을 감으셨는지. 큰 형님이 살고 있는 충청도로 어머니를 보내라고 했다. 부산의 여동생이 올 때까지 병원에 있다가 경기 시작시간이 다 되어 경기장에 왔다. 마지막 공을 던지는 사람은 중앙선을 넘어가면 안 되는 것을 잊어버리고 왔다 갔다 한다. 규칙이 규칙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시간대에 있었으리라. 오후에 잡혀 있던 세 번의 경기에 다 출전했다.
저녁에 전화를 해 보았다. 언제 어머니한테 올라가느냐고. 큰 형님이 장례식장에 계단도 많고 여러 가지로 힘드니 올 필요 없다고. 이제껏 모시느라고 애썼으니 좋은 마음으로 어머니 보내드리라고 했단다. 이제 자신들이 모시겠노라고. 차편까지 잡아놓았는데 오지 말라는 그 한마디로 모든 것을 멈춰야 했다.
‘야만’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제껏 몸이 불편한 막내아들이 어머니를 모신 것을 감춰버리고 싶은 것인지. 동생이 두 눈뜨고 곁에 있으면 이제껏 한 처사가 드러날까 껄끄러웠나. 걸리적거리는 장애 동생이 부끄러워 서였나. 어머니가 그리 마음 아파한 아들을 마지막 가는 길에 얼굴도 못 보이게 해야 만 하는지.
이별이란 여정이라 생각한다. 잘 가시라고 마음과 몸을 숙여야 한다. 그래서 장례문화가 있는 것 아닐까. 슬픔을 같이 나누어야 다시 새로운 시간들을 살아갈 힘을 얻는. 그는 어머니를 어떻게 떠나보낼는지. 행방을 찾지 못한 자식의 죽음은 가슴에 묻을 수도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만큼 우리는 어떤 의식을 통하여 맺음을 하는 것이다. 마음에 병이라도 얻을까 걱정이다. 줄담배를 태우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형제이기를 거부당한 시간. 잔인한 시간이다. 동생을 생각하여한 일이라고 포장을 한다 해도 그 말을 누가 믿나. 포장이 내용물보다 훨씬 두드러지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껍질은 껍질이지 내용물을 대신할 수는 없다. 보기에 그럴싸하더라도 사용하는 것은 포장지 안에 들어 있다. 화려한 포장지가 될 것인지 내용물이 될지는 우리가 선택해야 한다.
누가 누구를 뭐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길거나 짧거나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우리 안에 들어있는 야만의 그림자는 늘 웅성거린다. 어느 때에 도드라져 보여 질지. 그들은 부모님 장례식을 통하여 드러났을 뿐. 어쩌면 그런 부분들을 다스리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삶이 아닐까. 나이가 적든 많던 마음이 자라 가는 사람이 많아야 건강한 사회가 될 것이다. 더 배려하는 삶을 사는 것이 성숙으로 나아가는 길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