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진 Jun 15. 2024

그 한마디

   세 달 전에 약속된 식물교실에 갔다. 꽃을 사 오고, 도서관에서 그림책을 빌려왔다. 몇 번 읽어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발음이 안 되고 목소리에 감정을 넣어야 할 때 빗나간다. 강의안을 세 바닥 이상 준비하면 강사료에 수당이 지급된다기에 처음 해보는 일을 했다. 원래도 견본을 준비하여 가지만 이번에는 사진을 찍기 위하여 꽃 주머니를 만들었다. 그림책 설명과 꽃을 꽂는 순서를 넣고 기대효과를 넣었다. 십 포인트로 글을 적으니 한 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아는 선생님께 강의안 예시를 부탁하였다. 밖으로 내 돌리지 않는 조건으로 보내왔다. 강의 전반에 대한 것들이 알 알 히 알곡처럼 빼곡하다. 내가 하는 것들은 그렇게 말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사진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았다. 옳다구나! 그림책 표지 사진을 찍고, 카네이션 주머니 만드는 순서를 하나하나 담았다. 설명과 사진을 곁들이니 드디어 세 바닥이 되었다.


 잘되었거나 별로이거나. 처음으로 강의안이라는 것을 만들어 보았으니.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잘하려고 하지 말고, 하는 것으로 좋아하자고 요새는 마음을 먹는다. 그러면 잘못했으면 어쩌지! 하는 가슴을 짓누르는 돌멩이가 찾아오지 않는다.

 

 늘 교안 비슷하게 한 장은 준비했었다. 어느 곳에서는 강사님만 준비해 온다고. 후기를 보내 달라는 곳도 있다. 그러면 나도 잔꾀를 부린다. 미리 예상한 후기를 교안에 넣어간다. 손을 두 번 대고 싶지 않기에. 강사료 얼마나 지급한다고 보내라는 서류는 몇 개고. 영수증에 대한 것은 까다롭기만 하다.

  

 초등학교 늘봄 교실로 갔다. 요즈음은 빨리 가도 안 되고 늦어도 싫어한다. 정확한 시간을 맞춰서 가야 한다. 처음 가본 곳이라 일찍 장소를 알아놓고 나무 그늘에서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원래는 두 아이인데 갑자기 한 아이가 수술이 잡혀서 나오지 못했다고. 날짜를 바꿀까도 싶었지만 준비물이 마련되어 있을 것 같아서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대신에 보조교사가 같이 하기로 하였다.


 여러 생각들이 교차했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맞기는 한 것인가. 몇 되지도 않은 아이를 위해 힘들여 여기까지 와야 할까. 이런 발칙한 생각들이 똬리를 틀었다.  


 가지고 간 가위가 위험하다고 교실에서 쓰는 것으로 사용했다. 거의 일대일 수업이다. 그림책 두 권 읽어주고 꽃 하나하나를 자르도록 하고 꽂는 것도 함께했다. 아이가 나름 열심히 하였다. 마무리 단계에 이르자 카네이션이 투명 컵 안에 자리를 잡았다. 아이 입에서 ‘신기하다’ 한마디가 무심코 흘러나왔다.


 그거면 되었다. 그 한마디를 위해 얼마든지 수고할 수 있다. 아이의 작은 감정과 한마디를 위해 어쩌면 많은 이들이 수고하는 것이다. 상상의 나래를 펴며 조금씩이라도 자신을 찾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나는 오늘 내 노력에 대하여 충분히 보상받았다.


                     

작가의 이전글 블루베리 한 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