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 한 번씩 만나는 필사모임을 근 이 년여 하고 있다. 김상혁 시인의 <<선물의 놓이기까지>>의 책에서 ‘존경하고 사랑하는 당신들을 기억하는 것으로 우리의 시간이 잘 쌓여가고 있다는 것을’이라는 말처럼 시간을 의미 있게 쌓아가고 있다.
성탄이 내일모레인데 저녁 모임이다. 김행숙 시인의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를 준비했다. 선물을 나눌 시간을 기다리며 시집을 가져온 것을 잘했다고 속으로 나를 칭찬한다.
책 한 권을 읽으면서 필사하고 싶은 곳을 따라 쓰는 것처럼 안 하던 짓 하기와, 행복했던 순간을 적어가는 것도 숙제다. 안 하던 짓 하기를 쥐어짜보니 한 가지밖에 없다. ‘수공예 소라 색 모자를 주문해서 산 것’ 큰 마트에 있는 것들은 만 원 대이면 살 수 있는데 굳이 손뜨개 모자를 사야 하나? 사치품 같은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노란색 스웨터가 있어 작년엔 노란색 모자를 주문해서 받았다. 차분한 노랑. 이미 샀는데 뭐가 안 하던 짓이냐면 굳이 할 말은 없지만 오랜 세월 그러지 않고 산 세월 때문이다. 노란 스웨터에 노란 모자? 행동을 굳이 에 머물지 않기로 했다.
겨울옷을 보니 유난히 하늘 빛깔과 같은 연한 파란색 계열이 많다. 여기다 같은 색 모자를 하나 곁들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피어났던 것. 비교해서 비싸다는 생각이 들면 일 년에 얼마의 비용이 드는 셈인가를 따져본다. 그렇게 하면 죄책감이나 아깝다는 감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물건을 함부로 사지 않고 살아온 몸에 밴 처지를 이렇게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책 내용을 나누고 ‘행복한 순간 찾기’와 ‘안 하던 짓 하기’를 이야기하고 있을 때 북아티스트 작가 선생님이 왔다. 수제 공책을 수북이 가지고. 나는 표지가 올리브 열매로 가득한 것을 선택했다. 차를 준비해 오는 선생님은 연보라 띠지를 두른 노트를 얼른 찜했다. 개성대로 탐한다. 그런 선택들이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는지도 모른다. 작가님은 산타처럼 선물 보따리를 준비하려 오후 시간을 다 들이지 않았을까.
모둠노트에 적을 것을 한 가지씩 준비해 와서 모두의 필사노트에 돌아가면서 옮기기로 했다. 사진은 복사해서 붙이니 색이 바랜다고 인화해서 붙이기로 하고. 각자의 필사는 따로 하라고 예쁜 노트 한 권씩 우리 앞에 놓인다. 노트 한 권을 채우기 위하여 얼마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지. 나도 준비한 시집을 꺼낸다.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을 때 우리는 따스함을 느낀다. 행복으로 바뀌는 찰나. 이런 순간을 여럿 만들어가다 보면 인생이 행복해질까. 시집을 준비해 와 나눈 것이 ‘안 하던 짓’이 되었다. 아무리 애를 쓰고 머리를 싸매어도 안 하던 짓 하기가 쉽지 않다. 사람은 자기가 하던 대로 쳇바퀴를 벗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해본 사람은 안다.
올 한 해 시작점에 오 년 다이어리를 샀다. 미루다 한꺼번에 적는 일이 있더라도 꾸준하게 기록하고 있다. 쓸 것은 많은데 지면이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지다 보니 생각을 간추리는 연습이 된다. 실컷 마음을 풀어헤치지는 못하는 아쉬움. 내년 오늘 이맘때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그날그날의 일을 적어 나간다면 오 년 후에는 ‘나의 오 년의 역사책’이 될까. 작년의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한눈에 보면서 현재의 시간을 기록하고, 내년의 시간에는 무슨 일이 있을까 싶어 오 년 다이어리 적기를 시작한 것이 잘한 짓인 것 같다.
모든 것의 시작은 생각에서 출발한다. 생각하는 것을 행동에 옮겨보면 때론 후회도 있지만 웅덩이에 고이지 않고 흐르거나 거슬러 오르게 된다. 몇 개월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지 못했다. 아예 글쓰기를 멈췄다. 글쓰기 공부는 하면서 글쓰기를 멈췄다는 것이 앞뒤가 맞지 않지만. 자신감이 뚝뚝 떨어져 나가 나를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어느 장르에 맞는지도 잘 모르는 것 같아 고민이 길어졌다.
문예창작학과에 편입해 한 학년을 마쳤다. 특별하게 바뀌거나 달라진 것이 없다.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방학도 했고 비어있던 마음이 아주 조금 차오른 듯하다. 다시 브런치 스토리를 가까이. 언제 바닥을 드러내고 나자빠질지 모르지만 조금씩이라도 샘물을 길어보려 한다. 몇 안 되는 글을 읽어주는 분들을 생각하면서 작은 이야기들이어도 찰나의 시간에 수를 놓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