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슬

'강으로 간 아이' 다음 이야기

by 민진

비가 개인 뒤 딸이 다시 강으로 갔다. 물이랑에 빛나는 조그만 빛의 조각들을 담아 왔다. 믿기지 않는 것들이 숨어있다. 이게 가능하기는 할까. 놀랜다. 혹여 카메라가 마술을 부린 것은 아닌지 의심을 해 보기도.


맞는지 확인 차 강에 나섰다. 다리 위에서 물살을 내려다본다. 쨍하게 맑은 것은 아니지만 해가 떠있다. 가만 집중한다. 자그마한 빛 무리들이 물속으로 빠져든다. 하, 저걸 잡았구나.

너무 좋다며 사진을 보여 준다. 빛살이 들어가 물이 반짝인다. 내가 아는 윤슬 하고는 아주 다른. 하마터면 이게 무슨 윤슬이야. 고개를 저을 뻔했다. 찬찬히 보자 물속으로 떨어진 빛 조각들이 자그맣게 제각기 빛난다. 물속에다 꼬마전구를 넣어서 전원 스위치를 딸깍 켠 것 같다. 햇빛의 밝기와 강바닥의 색으로 인한 나타남의 정도가 다르다.


물은 저 혼자서는 빛나지 못한다. 떨어지는 빛을 사선으로 채우며 반짝 일 때도 햇살이나 달빛이 비치어야만 한다. 내가 본 것은 물이 넘실거릴 때의 윤슬이고 딸이 찍어온 것은 얕은 물의 것이다. 바다도, 강도, 호수도 빛이 있어야 파랗게 색을 가지며 반짝거린다. 이 간단한 사실을 모른 척하는 것은 아닐까. 자신이 빛으로 존재하고파서. 우리는 달처럼 스스로는 빛을 내지 못한다.

우물이 빛나고 있는 것을 어릴 때 보았다. 깊은 물에 달이 빠졌다. 두레박으로 퍼 올려도 될 것 같은. 사위는 달빛으로 은은한데 우물 속의 반짝임이 아이 가슴에 와 박혔다.

초등학교 때 소 몰러 갔다. 너른 들에 소와 나만 놓였다. 온통 보랏빛으로 빛났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읽고 보랏빛 하늘이 어디 있어! 하는 마음을 품고 었었다. 그날은 나만을 위하여 하늘이 움직이지 않았을까. 지금도 그 생각이 구석에 남아 있다. 가끔 초자연적인 것을 경험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고도가 높은 것 때문에 보랏빛 하늘이 될 수는 있지만, 그곳에 나 혼자, 그 하늘 아래 있게 된 것을 말한다.


내가 본 것만을 모든 것으로 알았던 얄팍함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알프스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아롱져 왔다. 하늘이 어린 나를 위하여 연출해 낸 것이라고 믿으면 안 될까.

담아온 사진에서 태고의 모습이, 반짝이는 물 이랑이 눈부시다. 에스에프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장면들을 마주한다. 혼자서는 빛이 될 수 없지만 서로 곱게 어울려 빛들을 만들어 내는 것은 어떨까. 작거나 크거나 기대어 비추어주는 존재들로. 내가 네게, 네가 내게.

물속으로 떨어져 내려온 빛의 파장이 꽂힌다. 이랑이랑 퍼지는 빛의 너울거림을 본다. 빛은 빛으로서 존재할 뿐 무엇을 바라지 않는다. 작은 빛이라도 낼 수 있는 윤슬이 되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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