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으로 간 아이

by 민진

햇빛이 없어 안타까워하며 강으로 간다. 저벅저벅 얕은 물을 건넌다. 모래톱에 다다른다. 맨발로 강의 맨살과 마주한다. 발바닥이 간지럽다. 걸어 본다. 그동안 잘 있었느냐고 눈빛으로 말한다. 모래를 손으로 쓸어본다. 손안에 가두려 해도 스르르 빠져나간다. 물을 찰방거린다. 강물과 모래가 온통 딸의 차지다. 눈싸움하듯 물속을 들여다본다. 바람결에 밀물 져온다.


딸 어릴 때 찾던 모래톱은 풀과 수양버들 씨가 날아와 둥지를 튼 지 오래다. 작은 싹들이 나무로 컸다. 바람결에 실어 보내는 풀씨와 나무들의 애씀이 헛되지 않았다. 숲에는 새들만 날아든다. 시간의 더께가 밀어다 놓은 모래사장에 앉아본다. 따뜻한 느낌이다. 발가락에 사각거림이 느껴진다.


나는 강의 겉모양만 보고 다녔구나. 물이 깊어지면 깊어 진대로 얕아지면 얕은 대로 흐르는 것을 바라볼 뿐. 이파리들이 피어나 여리여리 한 연둣빛의 나무를 카메라에 담아내지 못한 것만 아쉬워했다. 꽃만 아닌, 향기까지 보낼 수 있기를 바랐다. 금 모래밭에 새가 앉아 노닐며 날아오를 때도 데면데면했다. 무디고 식은 가슴으로 바라보고.

딸이 모래 범벅을 되어 왔다. 강의 숨결인 물로 바지가 축축하다. 아직도 저 아이 안에는 자연과 함께 하고픈 자연 바라기가 숨어있구나. 그리움은 언젠가 해본 것에 닿기를 원하는가. 끊임없이 그때로 돌아가고픈 마음일까. 아이한테 배운다. 내 마음속에 있는 그리움들을 수도 없이 잠재웠다. 그리움이라는 실체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흔들어 깨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 우린 강으로 가곤 했다. 섬에서의 시간 같은 편안함은 모든 걸 잊게 했다. 발을 모래 속에 묻어보며 꼼지락거렸다. 도드라저 보이는 모래섬에 숨구멍이 나 있다. 파보면 커다란 조개들이 숨어있다. 재첩을 캐고, 물을 바라보고 자연이 된다. 해가 설핏해지면 조개들을 돌려주고 물길을 건너 자박자박 돌아왔는데.


아, 나도 강으로 가고 싶다. 그러나 딸처럼은 용기를 내지 못할 것이다. 그리움이 그리움으로 남아 있도록 마음 저 밑바닥을 헤집어 줄 뿐이다. 내 어릴 때 바다에서 온통 갯벌투성이가 되었다. 갯골에 앉아 게를 잡고, 비틀 이 고둥을 줍고, 맛 조개를 캐던 그 아이가 밀물이 들면 바다를 떠났다. 바닷물은 갯골부터 찬다. 갯벌에 푹푹 들어간 발을 조심조심 옮기며 빠져나왔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한숨 같은 바다다.

시간은 모든 것을 변하게 한다. 우리도 시간 따라 흐른다. 자그마하던 아이가 자라 청년이 되어 다시 찾은 옛 시간들. 거기 그렇게 앉아볼 뿐. 돌아갈 수 없는 것에 대한 미련일까.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누른다. 순간을 붙잡고 싶어 한다.


세월의 우듬지에서 꽃을 피우고 씨를 맺혀 바람결에 실어 보냈던 먼 시간들이다. 나무와 풀이 어우러져 숲을 이루듯, 우리도 뭔가를 이루기 위해 사는가. 시간의 틈으로 존재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서 애쓰는 것일까. 이 나이가 되어도 나는 어릴 때의 꿈을 찾아 헤매고 그리워한다. 희망을 머금고 추억 속에 사는 나이 든 아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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