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시간들은

중요한 그 무엇이 되기도 한다

by 민진

정지된 것만 같은 시간들. 최소한의 이동만이 허락된다. 해 왔던 일들의 줄임을 말하기도. 한계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숙제가 주어진다. 들락거리던 도서관들이 일제히 문을 걸어 잠근다. 집안에서만 맴맴 거리라고. 읽지 않고 두었던 책들을, 읽었던 것들을 다시 읽는다. 핵전쟁을 그려놓은 어린이 책 ‘바람이 불 때에’가 생각난다. 공포들을 어떻게 이겨 나가냐의 문제와 마지막이 된다면 의 물음표가 놓여진다.


『올리버 카트리지』를 만난다. 새삼스럽게 삶이라는 것에서 풍겨 나오는 여러 가지의 느낌를 맡는다. 향기와 냄새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어린아이처럼 옳고 그름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나와 다른 삶을 들여다보며 채워야 될 것들에 대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큰소리치던 젊음의 뒤안길이 어쩌면 약함을 가리우기 위한 행동들이었지 않았을까. 올리버가 먼 과정을 돌아와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시간들과 만난다. 정말로 소중한 것들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아간다. 아프긴 하지만 고통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이다.


다시 읽는 『수레바퀴 아래서』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진정한 인간의 삶이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는다. 커버린 아이들의 시간에 놓인 나 자신의 꿈을 투영하려고 애쓰던 모습이 초라하다. 대리만족으로 채워지기를 바라고 발버둥 친 것은 아닌지 돌아봐진다. 사랑스러운 것들과 소소한 즐거움 가운데서 와지는 꽃밭 같은 행복을 심었어야 되었는데. 다행한 것은 빚어지던 갈등들과 힘의 대결에서 엄마가 졌다는 것. 헤르만 헤세에 나오는 아이를 망쳐가는 어른들의 비슷함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우선 곁에 있는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다.

책을 많이 읽기를 원해서 도서관을 뻔질나게 드나들며 빌려다 준 책들에서는 독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연령층이 나뉘어져서 다양한 장르의 책들이 주어졌을 때의 막내에게는 오염이 되기도 했음을 인정한다. 다섯 살 무렵 스스로 글씨를 터득한 큰 딸은 그림을 보지 못하는 그림맹이 되지는 않았을까. 다른 것을 할 기회를 빼앗겨 버린 것은 아닌지. 좋아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성장기를 보내지는 않았는지. 마음이 아프다. 자기 전 책 두 권쯤 꿀꺽 읽고 잘 수 있는 것이 부럽긴 하지만. 그것이 엄마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돌아봐진다. 친구들보다는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과의 만남이 더 즐겁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마음 편하지가 않다.


어떤 시간들은 가려져 있던 것들의 드러남이며 돌아보아야 될 것들에 대한 채찍이다. 가져야 될 자세들이 공포 앞에서 파르르 떤다. 정리해야 될 정서들이 필요하다. 근원적인 질문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순간들에 놓여진다. 들여다보아야 할 내면과 이 시점에서의 도달해야 할 믿음으로서의 삶의 기준이 필요하다. 사람다운 사람으로서의 삶을 생각하고, 속에서의 갈등들을 교통정리를 해야 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시간들은 중요한 그 무엇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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