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

반달로 차기나 했을까

by 민진

까만 하늘 모서리에 초승달이 내걸린다. 그 서늘한 자태에 숨이 멎을 것 같다. 한 번에 끝낸 붓 터치가 예사롭지가 않다. 별 하나 달 가지 끝에 매달린다. 초사흗날에만 돋아나는 눈썹 모양의 달은 내게는 늘 그리움이다.


대보름 날 낮달처럼 희끄무레한 둥근달이 동쪽 하늘에 살포시 떠오른다. 처음부터 하늘 중간으로 내달리지 않고 서둘지 않으면서 천천히 밝혀간다. 사위가 조용해지기를 기다린다. 해가 자리를 비켜줄 때에야 비로소 주인공임을 자처하는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별들과 사이좋게 즐기는 번잡하지 않는 넉넉함. 실핏줄처럼 번지는 어둠살을 헤집는다. 가만히 빛나 은은한 빛살을 뿌리는 달빛은 고즈넉하다. 사람들의 바람과 끝없는 넋두리를 모르는 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으로 유유히 흘러간다.


아홉 살 무렵 싸우던 부모님. 밤이 이슥해도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두 살 아래 동생 손을 잡고 찾아 나선다. 가 볼 수 있는 곳은 바로 위, 집안의 할머니 네다. 낮이라면 개구멍을 통해 폴짝폴짝 뛰어올라갔을 것을. 마당을 지나 길로 나간다. 탱자나무 울타리는 달빛 속에서 더욱 엉큼하다. 텃밭을 지난다. 얼굴 넓적한 토란잎들이 달빛을 받으면서 비웃는 것 같다. 얼마 되지 않는 거린데 왜 그렇게 멀게만 느껴졌을까. 어린 마음에도 눈치가 보여 마음에 돌덩이 하나 올려놓았을까. 돌멩이 네댓 번 던질 거리를 자작자작 걸어간다, 지날수록 여동생 손을 더욱 꼭 붙잡고 싸목싸목 서러운 마음으로. 개울 물소리는 천둥소리 같이만 들리고 한 걸음 한 걸음이 천 걸음이다. 사립을 지나 안마당으로 들어간다.


할머니를 부른다. 혹시 엄마 여기 있어요. 방문은 열리지 않고 대답 소리만 건너온다. 없다, 집에 가거라. 할아버지의 한마디. 말없이 돌아서는 두 아이. 언제 따라 들어왔는지 울안 하늘에 둥그렇게 선 달빛이 은 싸라기들을 뿌린다. 내 마음을 다 안다는 듯,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 듯. 눈물이 핑그르르 도는 눈으로 바라본 달님은 그날따라 가득한 보름달이었다. 고사리 손끼리 맞잡고 오는 길, 달빛이 보듬어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달님이 엄마를 보내주었을까. 곧이어 엄마가 내 이름을 부르고.


나를 달로 비유하자면 어느 정도일까. 초승달은 지나 반달로 차기나 했을까. 오후의 빛처럼 가슴의 열정은 옅어지고 그림자 달이라도 되는 것 같이 히마리가 없다. 내가 완벽한 달로 차오르는 것이 아득하여 초승달을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 서서히 차오르는 달처럼 아직도 사부작이 걸음을 해도 된다는 마음을 붙잡는가. 시간을 엿가락처럼 이어 붙이고 싶다. 가득 찬 달도 모자랄 나이인데, 아직 초승달만 쳐다보는 가녀린 삶이라니. 그래도 너무 애달아 말자. 이지러진 달도, 반달도, 초승달도 다 하늘에서 살고 있느니. 삶의 깊이는 보름달을 닮고 모양은 초승달처럼 살 수 있다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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