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과 곡선

얄짤없는 직선의 그어짐이다

by 민진

틈새마다 씨들이 날아왔겠지. 애기풀들이 꼬물거린다. 보도블록들이 반지를 끼고 있다. 날 풀리면 호미를 잡은 손들이 이들을 그대로 둘까. 우리가 좋아하고 아끼는 꽃이나 채소들도 알고 보면 풀이었다는. 필요대로 부풀리고 원하는 부분만 크게 하여 이름 붙이고 길러서 먹고 감상한다는.


은행나무 가로수 길을 지나 산책을 간다. 나무가 물을 마시도록 허락한 동그라미가 조그마하다. 그곳에 떨어진 빗물만 마시면 목마르지 않을까 싶게 좁다. 작은 원안에 옹기종기 풀 식구들이 모여 산다. 풀들도 가족끼리 사는지 제비꽃만 뭉쳐있고 씀바귀만 모이고 망초 꽃들도 끼리끼리 핀다. 물받이 땅에 보랏빛으로 피어있는 제비꽃이 아장거린다. 보랏빛의 무지개다. 저만큼 공공 근로하는 분들이 보인다. 속으로 제비꽃은 그대로 두었으면 좋겠어요, 한다. 자그마한 꽃은 물 한 모금으로도 충분하거든요. 돌아오는 길 그 많던 꽃들이 보이지 않는다. 길도 아닌 한정된 그 울안까지 숨 못 쉬게 정리를 해버려야만 할까. 나에겐 꽃이고 사랑인데 그들에게는 한낱 뽑아버려야 할, 없애야만 하는, 잡초였던 것이다. 얄짤없는 직선의 그어짐이다.


풀들이 땅 위로 고개를 내밀자마자 꽃송이부터 품는 이유였구나. 봄까치꽃도, 꽃마리도, 광대나물, 제비꽃 모두 키 재기할 생각보다는 앉아서 어서어서 꽃을 피우고 씨를 맺혀야지! 하는 듯하다. 언제 어느 때에 사람의 손길에 뽑혀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나. 하나같이 땅에 붙어서 자세히 안 보면 있는지 조차 모르게 꽃방울도 자금자금 조그맣게 한숨처럼 달려있다.

보는 것들이 다를까. 일상이 불편해져서야 되지 않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좀 보아주고 지내면 좋을 텐데. 들꽃을 그대로 두고 싶을지라도 맘대로 할 수 없는 입장이라는 것을. 일하는 분들에게 재량껏 할 수 있게 하면 안 될까. 봄까치꽃과 꽃마리와 봄맞이꽃을 그냥 두세요. 새봄이 이 풀꽃들 때문에 빨리 오는지도 모릅니다..


온통 색색으로 물들어 고즈넉한 진주성을 거닌다. 단풍은 더위가 지나가고 난 계절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다. 늦가을에도 기이한 것은 나뭇잎 하나 길에 구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길 만이면 이해나 하지. 길옆 뜰에도 나뭇잎 하나 앉아 쉴 시간을 주지 않는다. 패인 빗자루 자국만이 흙에다 금을 긋고 있다. 공원을 찾는 이유는 제계절의 맛에 취하고 낙엽 밟는 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싶은 것 때문 아닐까. 가을의 정취를 싹싹 쓸고 쓸어 담아놓은 자루만 둥개 둥개 나무 등걸에 기대어 있다. 정형화된 나무와 길들과 나중에는 하늘까지 쓸고 닦아서 구름도 정리 정돈하고자 할까.

글쓰기 강의를 들었다. 강사님이 총장님께서 학교를 구경시켜 주면서 일하는 분들에게 ‘낙엽을 너무 쓸지 말고 두세요.’ 했다는 이야기를 듣자 시냇물 한 줄 마음으로 흐른다. 같은 마음을 만난 듯이 하나가 되는. 비슷한 뜻으로 사는 분이 한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살아갈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초등학교 교장선생님도 가을이 지나기까지, 아이들이 낙엽을 밟을 수 있게 해 주세요. 휴지만 줍도록 하세요.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직선과 곡선이 맞물려 살아야만 하는 세상이긴 하다. 곡선만 강조하다 보면 발전이 없을 수도 있을까. 자로 잰 듯 직선으로 반듯하게 그어가기만 한다면 어떻게 될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