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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국화

by 민진

납작한 생선이 들어왔다. 눈이 오른쪽에 붙었는지 왼쪽에 붙었는지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 찾아보니 오른쪽에 붙어 있는 것이 도다리, 왼쪽에 있으면 광어란다. 오른편에 볼록하게 모여 있다. 손질을 해서 우선 냉동보관을 한다. 봄이면 남쪽에서는 도다리 쑥국 향기가 퍼진다. 마트에 갈 때마다 쑥이 없다. 친구랑 쑥을 캐러 가기로 한다. 배추꽃으로 화전을 붙이고 고구마 두어 개 챙기고 김밥과 순대는 로컬 푸드에서 준비한다. 친구가 식탁보를 가져와서 펼쳤더니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알록달록한 김밥, 꽃전, 딸기, 순대, 고구마. 소풍이다.


오르는 길에 수레국화가 벌써 피어나고 조팝이 하얗다. 꿀 풀을 닮은 조개 나물이 뽀송하게 꽃을 피워 물었다. 점심을 먹고 쑥을 캔다. 지대가 높은 곳이라 많지는 않다. 캐다가 이야기하다가 내려오면서 사진을 찍는다. 한 수 배운다. 햇빛에서 찍어야 사진이 살아있다고. 나는 햇빛이 없는 날 찍어도 예쁘기만 하던데. 쑥은 봉지에 담고, 꽃들은 손전화기에 넣어서 집에 온다. 친구에게 사진을 전송한다.

그 친구는 교통사고로 휠체어를 탄다. 누구보다 삶을 사랑하고 열심히 산다. 시를 좋아해서 나에게 매일 두 편씩 보내준다. 고마워서 맞바꾸는 의미로 가끔 사진을 보낸다. 파란 수레국화를 띄웠다. 모르는 꽃이라고. 북천 양귀비 축제에 가면 수레국화가 밭 째 피어 있다는 말이 무심결에 튀어나왔다. 머쓱하고 미안하다. 가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함부로 말한 것 같아서.

‘당신은 비장애인입니다.’라는 말을 처음 들을 때는 기분이 묘했다. 이때껏 썼던 일반인이라거나 정상인이라는 말에 익숙했다. 말 뜻에는 당신도 앞으로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들어있다. 더 비약을 해서 생각하면 장애인이 되기를 바란다는 뜻이 숨어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 지금이야 자연스럽게 비장애인이라는 말에 익숙하다. 사람은 미래를 모르고 살아가기에. 생각지도 못한 코로나라는 바이러스가 세계를 이렇게나 궁지로 몰아넣을지 누가 알았겠는가. 인류 앞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하루하루의 삶을 소중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가르친다.


친구에게 꽃을 보여주고 싶어서 약속을 잡았다. 비가 내렸다. 공원에는 수도 없는 꽃 사과 꽃이 흐드러져 벌을 불러들이고. 강 모래톱 너머로 유채가 아닌 갓 꽃이 노란 물결을 이루고 있다. 해마다 씨를 퍼뜨려 피고 피어서 군락을 이루어 꽃 들이 되었다. 같이 보려고 다시 약속을 한다. 바람이 너무 분다. 전화를 해보니 휠체어택시가 늦는다며 아직 출발을 하지 않았다고. 약속을 취소했다. 이 바람 속에 꽃 좀 보려다가 감기라도 들면 어쩌나 싶어 겁이 났다. 나 혼자 바람을 맞아 그런지 갑자기 몸이 안 좋다. 어렵게 걸어와 타이레놀 한 개 입에 넣고 잔다. 그 친구에게 새로운 봄을 선물하려고 했던 마음은 욕심으로 남았다. 노력들이 허사가 되었을 때, 작아지는 마음.

오월이 오면 수레국화를 보러 가야겠다. 오늘 못 본 꽃들은 그때 가서 마음껏 볼까. 색이 아주 다른 꽃 양귀비와 수레 국화지만. 함께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약속을 미리 하지는 않아야겠다. 무색한 일이 생기면 마음을 또 다칠까 봐. 기차를 타고 갔었는데, 올해는 노란 휠체어 택시를 타고 꽃들을 실컷 보고 산채비빔밥을 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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