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찜해두었던 카페에 가겠다며 신나게 집을 나선다. 비를 맞으며 운전을 하다가 언제부터 내가 비를 기다렸던가 싶어 웃음이 난다. 누군가는 빗소리가 좋다고 하고 누군가는 낭만적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비냄새가 좋다고 한다. 또 누군가는 하늘이 우는 것 같아 울적해진다고도 한다. 하지만 내가 비를 싫어했던 이유도 지극히 현실적이었고, 현재 비 오는 날을 기다리게 된 것 역시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오감각이 둔해서 불편한 것이 많지 않은 내가 싫어하는 몇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비 오는 날 젖은 신발과 양말이다. 몇년 전 장화를 삼으로써 이 현실적인 원인을 제거하고 나니 딱히 비 오는 날을 싫어할 이유가없어졌다.
그리고 올해 내가 비를 기다리는 이유는 놀러 다니며 고속도로를 많이 타느라 더럽혀진 차가 자동세차로는 잘 씻기지 않음 때문일 뿐이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열일하는 와이퍼의 콜라보를 지켜보며 입술을 쪼갠다.
비가 오는 날 현장학습을 강행하는 딸아이의 학교에 그 전날 소심한 민원(이라기보다는 제안)을 넣고 결과는 바뀌지 않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했다는 생각에 마음의 걱정은 털어버리고 아이들을 야영과 현장학습에 보낸 이후 엄마는 카페 나들이에 나선다.
목향장미로 유명한 카페에 간다고 하니 남편은 날씨 좋은 날 제쳐두고 비 오는 날 가느냐고 의아해하지만, 비 오는 날 가야 사람이 적을 거라고 장화를 신고 따뜻한 가디건을 걸치고 집을 나선다.
역시나 예상대로 비 오는 날이라 사람이 북적이지 않으니 목향 장미가 터질 듯이 만개한 창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나의 예상이 적중한 것에 신이 나고, 마음에 드는 자리를 차지한 것에 또 신이 나고, 비가 오는 날을 내가 좋아하는 것 카테고리에 넣은 것이 또 신이 난다.
혼자 앉아 셀카봉으로 사진을 남긴 후,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즐기며 어떤 구도로 그림을 그릴까 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이 시간이 행복하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장미를 그리면서 행복하지 않을 방법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