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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fulmito Jun 13. 2023

아이들의 선택은 풀빌라

 긴 공휴일이 이어지면 몇 달 전에 숙소를 예약해 두고 미리 여행 계획을 세워두곤 했지만, 아이들이 사춘기에 들면서 긴 공휴일은 더 이상 내 마음대로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주말마다 친구들과 약속이 가득한 아이들과 함께 점심을 먹을 일도 잘 생기지 않는다. 주말에도 남편과 단 둘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아이들이 교회 행사에라도 참석하면 어렵게 얻게 된 기회에 신이 나서 단둘이 여행을 계획하곤 했는데 말이다. 어느새 아이들과 4명이서 다 같이 근교 카페를 같이 가게 되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럽고 남편의 목소리도 들뜬다. 이래서 인생의 모든 순간이 소중하다고 하나보다.


 6월에 아이들 학교에 재량휴업일이 있어서 1박 2일로 가족여행을 가자고 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엄마아빠와의 여행에도 흡족하게 동참해 준다. 그나마 어릴 때부터 부지런히 가족여행을 데리고 다닌 덕이 아닌가 싶다. 1박 2일 여행을 두고 가고 싶은 곳이 있는지, 캠핑 혹은 풀빌라는 어떤지 아이들의 의견을 묻는다. 오래 고민할 필요도 없이 아이들의 원픽은 풀빌라.


 코로나 시대에 물놀이하기가 힘들어지면서 처음 풀빌라를 가기 시작했는데, 큰 아이들이 놀만큼 풀이 크면서 가격이 적절한 곳을 찾기가 쉽지는 않다. 가성비가 좋아서 지난 2년 동안 갔던 도 올해는 가격이 많이 올라버렸다. 원하는 만큼 풀이 크지는 않지만 가격이 적절한, 가까운 곳에 있는 풀빌라를 한 달 전에 예약해 두었다.


 너무 가까운 곳이라 여행 기분이 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기는 했지만, 휴직하고 요즘 여행을 업인 듯 여행을 실컷 다니다 보니 그 정도 아쉬움은 감내할 수 있다(원래 멀리 가고 싶어 하는 건 늘 나 하나뿐이었다). 사실 여행이 다가오고 보니 딸아이 감기가 덜 나았고 아이들 시험도 다가오고 있어 가까운 곳에 예약을 해 둔 것이 무척 다행이다. 부담 없이 잠시 가서 쉬고 올 수 있는 곳. 여러 가지 우연이 겹쳐 완벽한 선택이 되었다.


 여행을 앞두고 온 가족이 오랜만에 마트 나들이에 나섰다. 구워 먹을 고기, 소시지, 상추, 떡볶이, 컵라면, 갖가지 음료와 과자를 취향대로 골라 담았다. 평소에는 장 보면서 과자를 잘 사지 않지만, 여행 준비만 하면 먹고 싶은 과자를 마음껏 주워 담는다. 기회는 이때다 하며.


 1박 2일이라 꾸릴 짐이 많지 않다. 먹으러 가는 사람들처럼 먹거리만 한 가득이다. 쉬러 가는 거니까 먹을 것이 가장 중요하긴 하다. 딸아이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오전에 가려고 했던 루지 파크도 취소하고 오전 내내 집에서 쉬다가 점심까지 먹고 집을 나섰다. 3시 체크인 시간을 맞춰 숙소에 가면 그만이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풀빌라 가고 싶다던 딸아이는 침대에 뻗어 잠이 들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일단 쉬는 게 급선무다. 아들과 남편이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먼저 풀에 들어갔다. 미온수를 요청해 두었더니 6월 더운 날씨에는 온천욕을 하는 것 같다. 작년에는 6월이라도 미온수 신청을 안 했더니 물이 너무 차가워 나는 풀에 들어가지도 못했었는데... 모든 게 입맛대로 되지는 않는다.

 

 남편과 아들이 물놀이를 하는 동안 나는 옆 테이블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는 물놀이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서 딸아이가 일어나면 잠깐 들어갈 생각이다.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 처음 보는 새 네 마리가 숙소 앞 우거진 수풀 속을 놀이터 삼아 날아다니는 모습이 시선을 끈다. 머리는 까맣고 몸은 노랗고 까치처럼 생긴 긴 꼬리에는 푸른빛이 돈다. 저 새는 뭘까? 몹시 궁금하다. 새 이름에 능통한 동생에게 물어보기 위해 열심히 사진을 찍으려는 너무 멀어서 포착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알아낸 새 이름은 물까치! 이렇게 우연히 발견하고 알아가는 자연이 재미있다.



 드디어 딸아이가 일어났다. 정신을 차리고 물놀이를 하기 위해 수영장으로 들어왔다. 힘이 없어도 포토타임을 빼놓을 수는 없다. 열심히 딸램 사진 찍어주고 나도 풀장 입장. 딸아이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혹은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어서 오늘의 물놀이는 고요하다. 어릴 적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둘이 신나게 노는 모습에 미소 짓던 옛날이 문득 그립다. 지금도 친구들끼리 오면 그렇게 신나게 놀텐데. 고요한 물놀이를 즐기는 이 시기도 지나가고 나면 또 그리워지겠지. 사춘기 아이들과 함께 여행의 시간을 보내는 지금 이 순간순간이 소중하다.


 남편이 숯에 불을 붙이며 고기 굽기 노하우를 아들에게 전수한다. 이런 사소한 것들이 추억이다. 따뜻한 물에 들어갔다 나오니 컨디션이 좀 좋아졌다는 딸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고기를 구워 먹고 마시멜로를 구워 먹으며 어느새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운다. 잘 왔구나. 이런 시간이 필요하구나.

 

  우리의 여행 루틴대로 영화 한 편 보려다 딸아이가 잠이 온다길래 오늘은 빨리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나는 딸램이 잠든 옆에 누워 책을 읽었다. 가벼운 책을 들고 왔더니 휘리릭 책장이 잘 넘어간다.


 늦게 잠이 든 것 같은데 새벽 일찍 눈이 떠졌다. 아무래도 여행을 오면 잠을 푹 못 자는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징표다. 읽을 책을 들고 거실로 나왔는데 온갖 새소리와 개구리 소리, 서서히 밝아지며 드러나는 시골 풍경이 멋들어지게 어우러진다. 아~ 좋다. 급히 지도를 켜서 방향을 확인했다. 테이블에 앉아 일출을 볼 수도 있겠다. 새벽에 일어나니 좋구먼.


 책을 읽다가 구름 속에 잠시 모습을 보이는 일출을 구경했다. 집중하는 사람에게만 잠시 모습을 나타내겠다는 듯.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나만의 알 수 없는 뿌듯함으로 기분이 좋다. 다시 자러 가야겠다.


 다시 자고 일어나도 내가 일등이다. 여행만 오면 부지런해지는 게 특징이다. 빵을 굽고 있으니 남편이 일어나 아침 준비를 돕는다. 빵과 베이컨을 굽고, 양상추와 피망을 썰어두고, 양파수프를 끓이고, 잼과 치즈, 피클을 꺼내 아침 준비를 마쳤다. 일어날 생각 없는 딸아이를 두고 셋이서 먼저 아침을 먹는다.


  늦게 일어난 딸이 홀로 아침을 먹는 동안 나는 따뜻한 물을 받아 스파를 하며 책을 읽고, 남편과 아들은 오전 물놀이를 한 판 더 벌인다. 고요하지만 알찬 1박 2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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