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더우면 덥다고 안 나오고 추우면 춥다고 안 걷는다. 가끔 집에 있어 보면 한없이 늘어지거나 바쁘게 집안일을 하게 된다.
미루어도 뭐라고 할 사람 없는데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다.
치우다 말고 오늘만 날이냐, 또 주저앉아 뭐 먹을 거 없나 냉장고를 뒤진다. 스트레칭 몇 번 하고 컴퓨터 앞에서 손가락으로 주절거리다 엉덩이 배긴다고 또 일어나 서성거리면 하루가 다 간다.
고장난 텔레비전을 버리고 다시 사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텔레비전 앞에서 하루를 다 보내는 사람도 있다 하는데......
구구한 사정 필요 없다. 나가야 한다.
관악산 공원에서부터 서울대수목원을 거쳐 안양예술공원까지 걸었다.
산이라고 해서 몇 명 오지 않는데 오늘은 6명이 같이 걸었다. 모처럼 낮기온이 영상 8도까지 오르는 날이기 때문이리라.
이렇게 걷기 좋은 숲길인데 힘들 거라는 선입견 때문에 꺼리는 심신노약자가 안타깝다.
보통 체력이면 충분히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매일 걷기 전에 먹지만 관악산역에서 출발하는 날에는 주변에 식당이 없어 중간에 간식을 먹고 늦은 점심을 먹는다.
늘 가는 곳은 기계식 맷돌로 직접 만드는 두붓집이다. 야들한 순두부를 마음껏 가져다 먹고 청국장, 해물순두부, 콩비지 찌개 등을 주문해 먹는다. 대부분 청국장을 선호하는데 나는 콩비지 찌개를 주로 먹는다. 간수로 굳히는 두부보다 영양분이 농축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나름 잔머리에서 나온 것이다.
조금 더 내려가면 맛있는 김치찌개 집이 있다고
주사랑이 추천을 해서 두붓집과 번갈아 가고 있다.
이번에는 맛있는 김치찌개 집으로 갔다.
여자 넷이 앉고 나는 두 남자와 한 테이블에 앉았다. 남자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는 것이 슬기로운 길잡이 생활이다.
여자들은 나이를 먹을 만치 먹고 남자들과 살 만큼 살았는데도 밖에 나오면 내외 아닌 내외를 한다.
심지어 불편하니까 남자들은 길에 안 나왔으면 좋겠다는 길잡이와 길벗들이 있다.
집에서도 남편들 때문에 지치는데 길에서까지
남자들 때문에 신경 쓰기 싫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혼자서 뒤에 조용히 따라올 것이지
말을 자꾸 붙이려고 한다.
아는 게 많아 잘 난 체를 한다.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한다.
담배 냄새가 난다 등.
내게 등짝스매싱까지 날린 ‘멋지긴개뿔’ 같은
흡연자는 싫다. 말이 많고 옆에서 계속 진로를 방해하며 말을 붙이는 남자도 피곤하다.
이제 흡연자는 차단했기에 걱정이 없는데
수다쟁이 남자는 심심치 않게 오기에
참을 忍 자를 새기는 중이다.
어쨌든 오늘은 매주 한 번 오는 주사랑과
잊을만하면 오는 한 명의 점잖은 남자와 같이 앉았다. 오늘도 역시 주사랑은 막걸리 두 병을 시켜 두 사람이 권커니 자커니 하고 나는 한 잔을 아껴 마셨다.
줄어드는 내 잔을 눈여겨보던 주사랑이
또 한 잔! 하며 따르려는 것을 딱 2cm만 더 달라고 했다. 주사랑의 가스라이팅에 넘어가면 안 된다.
주사랑은 아재 근성을 보이는 여느 남자들과는 다르다. 묵묵히 뒤를 따라오다가 간식 시간에는
두어 가지 간식을 내놓고 저만치 다른 의자에 앉는다. 이것도 먹어 보라 하면 와서 하나 들고 다시 제 자리로 간다.
매주 한 번씩 관악산을 가는 것은 길도 좋지만 늦은 점심에 막걸리 타임을 간절히 원하는 그의 바람을 들어준 셈이다. 주에 한 번으로는 부족한 주사랑의 산행을 어떤 코스로 늘여줄까 생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