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교시 수업을 마치고 비어있는 2교시에 구청으로 갔다.
퇴근 후 가도 되는데 빨리 끝내고 싶었다.
서류를 접수하고 나니 홀가분했다.
이제 두 번 결혼에 두 번 이혼한 여자가 되었다.
처음 재판이혼 때는 이 진상의 횡포로 직장에 알만한 사람에게 다 알려졌지만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알게 될까 전전긍긍하며 불안에 떨었었다.
장과의 결혼 생활을 19년이 되기 전에 협의로 마무리한 이번에는 아무런 불안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가슴속에 늘 자리 잡고 있었던 육중한 돌이 빠져나간 것 같은 시원함이 느껴졌다.
행정실에 부양가족 신고를 다시 할 때 눈치가 보이긴 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것 당당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에 이유가 있어 할 말은 있지만 윤아에게만은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나 버리고 갈 때는 잘 살았어야지, 또 이혼하고......
엄마 팔자도 참 그러네.
그러게나 말이다.
너한테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그동안 장과 헤어진 것처럼 지내왔기에 생활에 별 차이가 없었다.
아직 보증기간이 남은 월셋집에 엄마와 윤아가 살고 나는 수시로 들락날락했다.
엄마의 치매 증상이 점점 심해져 집안은 엄마가 여기저기 묻힌 오물 냄새로 진동을 했고
모두 출근하고 학교에 간 사이에 엄마 혼자 있는 것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어 엄마를 모시는 것을 다시 생각했다.
아버지 돌아가신 후에 모시겠다던 남동생은 나에 대한 불만도 있어서 이제 와서 모시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큰언니와 의논했다.
요양원 얘기도 나왔지만 차마 그럴 수 없어 큰언니가 모시고 가기로 했다.
이제 엄마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엄마, 내가 출근하면 엄마 혼자 계셔서 불안해서 그래요.
언니네 가서 사세요. 윤아와 자주 갈게요.
난 여기가 좋아. 윤아랑 여기서 살게.
거기 가면 사위도 있는데 불편해.
같이 살겠다는 엄마의 의견을 무시하고 엄마는 언니가 모시고 갔다.
티격태격하기도 했지만 윤아 어릴 때부터 같이 살아온 엄마를 보내려 하니 윤아나 나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언니가 엄마를 모시고 간 후 우리는 네 식구가 되었다.
출퇴근이 불규칙한 윤아와 대학생인 주성이 방 하나씩을 차지하고 나와 현아가 안방을 같이 사용하였다.
다소 좁다는 것 외에는 별 불편함을 못 느꼈는데 화장실이 한 개밖에 없어서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