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한테 이혼한다고 했다며?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그냥 떨어져 산다고 했을 뿐이야.
뭘 잘못 들으셨네.
아버지는 네가 이혼한다고 했다는데 안 했다고?
응, 안 했어.
이게 이혼이나 마찬가지지 뭐야.
그냥 이혼하자.
안 되는데, 이혼은 못 하겠는데?
그동안 지낸 세월이 분해서 이혼 못 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이혼해!
별거를 결정할 때 이혼할 생각은 없었다.
한 집안에서 말을 안 하고 살 때도 스스로 나가주기만을 바랐다.
막상 그의 입에서 먼저 이혼하자는 말이 나오니까 그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버티는 척했다.
몇 번 거부하다가 마지못해 받았다.
이제까지 내가 이혼하자는 말은 꺼낸 적이 없어.
이혼한 사람들처럼 살아도 그것만은 하지 않으려 했어.
당신이 원하니 그렇게 해.
서류 준비되는 대로 연락해.
협의이혼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했다.
막 성년이 된 주성은 제외하고 미성년인 현아에 대한 양육권, 양육비, 면접 교섭권에 대한 합의가 필요했다.
친권과 양육권은 내가 가지기로 했다.
면접교섭권은 형식상 한 달에 한 번으로 정해 놓았다.
그것도 애들이 아빠와 만나기를 꺼려한다면 강요하지 않기로 했다.
장은 양육비는 줄 수 없다고 했다.
선심 쓰듯이 다른 재산에는 손대지 않겠다며 양육비는 청구하지 말라고 했다.
현아가 성인이 되기까지 쓸 양육비는 그동안 쓴 양육비에 비하면 미미할 것이라 더 이상 다투기 싫어 포기했다.
재산 형성에 기여한 바 없는 장은 내가 준 3,500만 원을 위자료와 재산분할로 간주하고 물러났다.
결혼 전에 스트레스로 신경정신과 문턱을 넘으려다 돌아나왔다는 그에 대한 위로로 갈음해도 좋았다.
어찌 됐든 나는 그의 집에서는 새파란 총각을 꼬드겨서 결혼하고 이제 이혼으로 집안을 풍비박산 낸 여자다.
주성을 낳아 장손으로서 대를 잇게 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가정법원 앞에서 만난 장과 나는 접수 후 대기 번호를 받고 기다렸다.
마치 버스터미널 대합실 같다.
우리와 같은 이혼 직전의 부부들이 복도를 서성거렸다.
대부분 둘이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는데 장과 나는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얼굴빛이 어두운 사람들 가운데 둘은 곧 이혼할 사람 같지 않게 들뜬 연기를 하는 것 같다.
곧이어 우리 차례가 왔다.
협의이혼 확인실에서 몇 가지 협의이혼 의사를 확인했다.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미 협의를 한 사항이라 긴 말을 할 필요도 없다.
2부의 신고 서류를 받아 들고 나왔다.
누구라도 한 사람이 먼저 구청에 신고하면 일주일 뒤에 이혼이 확정된다.
큰길로 나서자 차량들이 하나둘씩 헤드라이트를 켜고 달린다.
옆을 스치는 사람들 시선도 따갑다.
가정법원이라는 간판을 끼고 나오자니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장이 어색함을 감추려는 듯 말했다.
저녁 먹고 갈래?
아니, 그냥 갈래.
잘 지내.
그래, 애들하고 잘 지내.
현관을 들어서니 센서등이 밝게 켜진다.
어두운 안방에 불을 켜고 옷장을 뒤져 내일 입을 밝은 원피스를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