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내 철에 맞는 맛을 찾아가고 있다
아침에는 약, 밤에는 독인 것은? 딩동댕! 바로 사과다. 그렇다면 지금 제철인 사과 품종은? 정답은 시나노 골드라는 이름의 노오란 황금사과라고 한다.
우리 가족은 일 년에 최소 4번, 안동에 사과를 주문한다. 외가 친척분이 안동에서 사과농장을 하시기 때문이다. 어르신들께 드리는 명절 단골 선물은 사과, 고민할 필요 없어 좋다. 명절 외에 사과를 주문하는 때는 안동에서 사과 주문 안내 문자가 올 때다.
그렇게 몇 해를 사과를 주문하다 보니 철마다 다른 사과의 맛을 기다리게 됐다. 그 무렵 먹었던 사과의 맛이 기억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내가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엄마, 시어머니, 심지어 친구집에 놀러 가서 만난 친구의 어머니도 지금 제철인 사과에 대해 이야기하시는 것이 귀에 들어온다. 엄마들은 신기하게 다 안다.
10월 초 제철을 맞은 황금사과. 몇 주 전 안동 소식통을 통해 곧 황금사과가 나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곧 시장과 마트의 과일 코너에 레몬 빛 황금사과가 보이기 시작했다. 옆에 누가 있던 것도 아닌데 '황금사과네?' 하고 알은척을 했다.
황금사과라는 별명만큼이나 색이 정말 노란 시나노 골드의 과육은 단단하고 맛은 단편에 가깝다. 아삭하고 단 맛의 사과를 좋아하는 내 입맛에 딱이다. 어제 막 도착한 택배상자를 열어 바로 하나 깎아 베어 물었다. 아삭. 맛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부사, 홍로, 아오리는 국내 사과 생산의 80% 를 차지한다고 한다. 부사는 예쁘게 동그랗고 홍로는 울퉁불퉁하게 동그랗다. 지난 추석엔 홍로를 주문했는데 금방 상하니 빨리 냉장보관 하란다. 이에 반해 11월이면 나오는 부사는 저장사과로 오래 보관해 두고 먹을 수 있다고 하니 조금 많이 주문할 예정이다.
이참에 사과 공부나 좀 더 해보자 싶어 인터넷을 검색해 봤다. 세상에. 사과 종류가 열댓 종류나 되는 것이다. 이렇게나 많다니. 내가 먹어 본 사과는 그중 기껏해야 다섯 종류나 될까 싶다. 경도, 산도, 당도 그리고 제철에 따라 구분한 그림을 보며 한참사과를 공부했다. 엄마들은 이렇게 사과를 검색해보진 않으셨겠지.
남편의 휴일을 맞아 둘레길을 걷기로 했다. 오늘의 간식은 사과. 반쯤 올라가면 나오는 산스장. 거기서 먹으면 꿀맛일 것이었다. 오늘 개시한 황금사과를 큼직하게 잘라 초록색 반찬통에 담아 산길에 올랐다. 땀을 뻘뻘 흘리고 도착한 쉼터에서 먹은 사과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가족끼리 나들이나 먼 길을 떠날 때면 엄마는 꼭 아이스박스나 보냉백에 이것저것 담곤 하셨다. 생수, 믹스커피를 녹일 뜨거운 물을 담은 보온병, 과일, 견과류 등. 가족들을 먹일 간식을 싸느라 준비가 늦은 엄마를 보며 가족들은 대충 싸라고, 사 먹으면 되지 라고 재촉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사과를 깎아 반찬통에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은 묘하지만 싫지는 않다는 표정이다. 엄마들처럼 온갖 야채들의 제철과 같은 야채라도 미세하기 달라지는 맛까지 꿰고 있지는 못하지만 나는 분명히 변해가고 있다. 제철 사과 맛을 기억하는 내 모습이 나쁘지 않다. 나도 내 철에 맞는 맛을 찾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