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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티제 Dec 07. 2023

카페에 들어온 지 다섯시간

그래도 아직은 사무실보다는 카페가 좋다

보통 혼자 카페에 가면 음료를 한 잔만 시키거나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면 케이크도 한 조각 함께 시키곤 한다. 그렇게 만원 가량의 돈을 지불한 후 스스로 양심적으로 카페에 머물러도 괜찮다고 허용하는 시간은 두 시간 남짓. 두, 세 시간이면 보통 카페에 들고 간 일들은 어느 정도 마무리된다. 만약 생각보다 일이 오래 걸려 조금 더 머물러야 하는 경우 만만한 아메리카노를 한 잔 더 주문하거나 디저트를 하나 더 주문하는 식으로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자릿값을 지불한다.


   오늘은 점심을 먹고 카페로 나섰다. 두 시에 미팅이 있었는데 삼십 분 일찍 카페에 도착했다. 항상 시키는 따뜻한 차 한 잔을 주문했다. 시간에 맞춰 일행이 도착하고 한 시간 정도 걸릴 것으로 생각했던 만남은 조금 길어져 두 시간 정도가 걸렸다.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네 시. 계속 울리던 스마트폰을 뒤집어 보니 저녁 약속이 취소되었다.


   이미 카페에 들어온 지 두 시간 반이 지나있었다. 자리를 옮길지 잠시 고민하다 조금 더 머무르기로 했다. 음료를 한 잔 더 주문하려다 일행이 떠나며 남긴 빈 컵과 나를 위해 주문해 주신 디저트를 볼모로 삼아 추가 주문 없이 조금 더 앉아있기로 했다.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을 정리하고 약속이 취소되어 만나지 못하게 된 친구와 카톡으로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덧 여섯 시. 밖은 벌써 어두워졌다. 이 무렵의 해는 참 빨리 진다.


   이미 차갑게 식은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벌써 다섯 시간이나 앉아 있었는데 인제야 음악 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캐럴이다. 벌써 12월이구나. 새삼스럽게 다시 캘린더 앱을 열어본다. 노트북에 고정되어 있던 시선을 창밖으로 옮겨보니 큰 유리 통창 밖으로 사람 키 두 배만 한 트리에 불빛이 깜빡깜빡 빛나고 있다.


    어느덧 퇴근 시간. 카페 앞을 지나는 사람들의 복장이 출퇴근 룩으로 바뀌었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오후에 카페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참 부러웠다. 그리고 궁금했다. 무슨 일을 해서 먹고 살길래 해가 중천인 그 시간에, 나는 사무실에 갇혀 있어야만 하는 그 시간에, 카페에 앉아 있을 수 있는 걸까. 생각해 보니 오늘 나의 모습이 누군가에겐 그렇게 비추어졌을지 모르겠다.


   늘 나인투식스의 삶에서 탈출하기를 꿈꿨다. 오전 9시에 출근해서 오후 6시에 퇴근하는 나인투식스 말이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규칙적으로 일을 하는 것. 월급날이면 꼬박꼬박 찍히는 숫자들이 주는 안정감과 비례하게 나는 늘 답답했다. 손발이 묶여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과연 내가 그 밖을 나가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잠이 쏟아지는 오후에 사무실에서 나와 커피 한 잔 사러 카페에 가는 시간은 정말 달콤했다. 하지만 오늘 내가 다섯 시간을 보낸 이곳이 그렇게나 달콤했냐 묻는다면. 마냥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들도 그랬을까. 그저 사무실이 아닌 카페에서 저마다의 싸움을 해내고 있던 것이었을까. 그래도 아직은 사무실보다는 카페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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