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 것' 쇼핑은 이제 그만 하려고
음식물 쓰레기통이 필요해 검색창을 열었다. 다양한 브랜드, 소재, 가격의 음식물 쓰레기통이 나열된다. 예전 같았으면 음식물 쓰레기 담는 통에 뭐하러 돈을 쓰냐며 싼 것만 찾았을 텐데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무엇이 가장 편리할지 고민하고, 스테인리스 304로 만든 이름 있는 브랜드의 것으로 골랐다. 음식물 쓰레기통을 3만원 주고 샀다.
3만원이 그리 큰돈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최저가, 핫딜, 싼 것만 찾던 나에게 음식물 쓰레기통을 이 가격으로 샀다는 건 대단한 변화이다. 임신한 나에게 유통기한이 임박한 할인율 70%의 음식을 사다 주는 엄마를 보면서 겁이 났다.(이전 글 임신한 딸에게 유통기한 임박 상품이라니) 지금처럼 살다가는 나도 내 아이에게 그저 싼 음식, 싼 옷, 싼 물건만 사주는 엄마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싼 것’ 쇼핑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이번에 구입한 음식물 쓰레기통은 좋은 스테인리스라 튼튼하고, 설거지가 잘 되고, 뚜껑을 닫으면 냄새도 나지 않는다. 사소한 물건이지만 쓸 때마다 편하고 기분이 좋다. 이런 식으로 쌀 세척 볼, 프라이팬, 냄비, 알러지 케어 이불도 샀다.
싸고 좋은 건 없더라
늘 ‘싸고 좋은 것’을 찾아 헤맸지만 그런 물건은 없었다. 수많은 ‘싼 것’ 쇼핑 끝에 비싸고 안 좋은 물건은 있어도, 싸고 좋은 물건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싸고 품질이 좋지 않은 물건은 수명이 얼마 안 가서 오히려 돈이 더 들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 그런데 나의 경우 더 문제는, 품질이 좋지 않아 불편한데 그걸 참고 계속 쓴다는 것, 그래서 쭉 불편하게 산다는 데에 있었다.
이불의 촉감이나 무게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차피 산 것이니 그냥 계속 덮고 지낸다. 예쁘고 저렴해서 산 수저가 알고 보니 소재가 플라스틱이라 찝찝하지만 어차피 샀으니 부러지지 않는 한은 계속 쓴다. 노트북 가방을 샀는데 가방이 노트북보다 더 무거워서 웬만하면 노트북을 집에서만 쓴다. 이렇게 사고 쓰다 보니 만족하면서 편하게 쓰는 물건이 없었다. 사소하지만 매일 사용하는 것들이 늘 뭔가 불편하고 만족스럽지 않았다.
좋은 물건을 제 값 주고 사려고
이제 좋은 물건을 제 값 주고 사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제 값을 주고 산 쌀 세척 볼, 프라이팬, 알러지 케어 이불은 모두 대만족이다. 쌀 세척 볼은 쌀을 한 톨도 흘리지 않게 해 주고, 내 평생에 제일 비싸게 준 프라이팬은 아직도 기름이 미끄러지고 있고, 이불은 먼지가 붙지 않고 빨아도 금방 말라 참 좋다.
편하고 만족스러운 물건들은 단지 편리하다는 것에서 끝이 아니다. 일상의 작은 부분들이 만족스러우니 행복도가 올라갔고 삶의 질이 높아졌다. 좋은 물건을 사고 그것을 사용하는 내내 기분이 좋은 건 단지 편해서만은 아니었다.
예전에는 내가 산 물건들은 늘 싸고 품질이 좋지 않은 물건이기 때문에 함부로 사용했다. 망가지거나 잃어버려도 ‘어차피 싸구려, 상관없어.’라고 생각했다. 내 물건이 ‘나’인 것은 아니지만, 물건을 막 쓰는 스스로를 보면서 ‘나’를 그렇게 대하는 것 같아 가끔은 씁쓸했다.
이제 새로 산 물건을 막 대하지 않는다. 그저 싸서 산 것이 아니라 사고 싶은 물건을, 좋은 품질의 것으로 골라 산 것이기에 흠집 나지 않게, 더 오래 사용할 수 있게 조심히 대한다. 내 물건들이 소중해졌다. 그리고 나도 더 소중한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 내 자신이 귀한 대접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내가 ‘싼 것’ 쇼핑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던 게 바로 이런 이유였던 것 같다. 값싼 물건만 사용하면서 스스로를 ‘값싼 물건이면 되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이 속상했다. 값싼 물건을 쓴다고 값싼 사람인 게 아닌 건 알지만, 그럼에도 난 스스로를 너무 평가절하하고 하대하며 살았던 건 아닐까?
사소한 일이 더 중요하다
대단하고 커 보이는 일보다 작고 사소한 일이 더 큰 영향을 줄 때가 많다. 대단하고 큰 이벤트는 일생에 몇 번 없지만 작고 사소한 일은 매일 일어나니까 더 중요하다. 일상적인 쇼핑에 대한 태도와 그로 인해 바뀐 물건들은 내 삶을 기분 좋게 흔들고 있다.
이제는 비슷한 물건을 천 원 더 싸게 샀다고 뿌듯해하지 않는다. 물건을 사러 가서 기능이나 품질을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더 싼 거 없냐고 묻는 일을 하지 않는다. 이제는 더 저렴한 제품을 찾기 위해 한 시간씩 검색하던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좋은 품질의 물건을 제 값 주고 구매하는 지금이 너무 좋다.
노트북을 넣고 다니는 백팩이 너무 무겁고 커서 노트북은 집에서만 사용한 것이 몇 년이 됐다. 새 백팩 구매의 기준은 ‘노트북이 들어가고 가벼워야 한다.’이다. 무게가 가볍다고 알려진 가방을 찾았는데 가격이 30만 원 가까이 된다. 가방에 10만 원 이상의 돈을 써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이 가벼운 백팩을 메고 싶다. 그런데 자꾸 내가 30만 원인 가방을 멜 자격이 있는지부터 시작해서 가방의 월 사용 횟수, 사용 기한 등을 계산해 보게 된다. 아직은 망설여진다. 나는 이 가방을 살 수 있을까? 고민을 좀 더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