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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릴라 Feb 01. 2021

임신한 딸에게 유통기한 임박 상품이라니

퓨레 핫딜을 사지 않은 이유

임신 6개월 때, 엄마가 마트에서 잔뜩 장을 봐서 집에 왔다. 된장, 주스, 요거트, 샐러드, 해산물, 고기 등 품목은 다양하지만 엄마가 가져온 식자재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상품 위에 스티커가 몇 개씩 붙어 있기 때문이다. 20프로에서 시작해서 50프로나 70프로 할인을 알리는 스티커로 끝나 있다. 마트 마감 세일 애용자인 엄마가 전날 밤에 가서 유통기한 임박 상품으로만 싹 쓸어온 것이다.       


언제나처럼 특별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문득 서운함이 몰려왔다. “임신부한테 유통기한 임박 상품은 너무 한 거 아니가?” 하니, “그렇나? 나는 좋은 거 안 사봐서 살 줄 모른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안다. 가난했었고, 지금도 여유롭지 않다는 거. 유통기한 임박 상품이라도 엄마가 딸 생각해서 마트까지 가서 일부러 장 봐왔다는 거. 안 해본 사람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좋은 물건 사기 어려운 거. 머리로는 다 알고 괜찮다 했지만 마음 한쪽에 이 날의 장면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70프로 할인인데


언제 어디서나 저렴한 것만을 추구하는 엄마의 정신은 나에게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다. 원래도 할인을 좋아하는데 아이를 키우면서 맘카페의 ‘쇼핑핫딜방’을 알게 되었다. 아이가 생겨 살 것은 많은데 수입은 줄었고 핫딜방에 매료되었다. 사고 싶은 물건으로 검색어 알람을 설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하루에도 몇 번씩 핫딜방을 들락거렸다.      


일상적으로 핫딜방에 갔다가 ‘퓨레 핫딜’을 보게 됐다. 할인을 잘 하지 않는 브랜드의 무려 70프로 할인이었다. 무슨 일인가 자세히 봤더니 유통기한이 보름 남은 상품이었다. 15개월인 아이가 평소 먹듯이 하루에 하나씩 먹으면 유통기한이 지나기 전에 다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어차피 먹는 퓨레 싸게 사면 좋으니까’라고 생각하면서 구매 버튼을 누르고 결제를 하려다 멈칫했다.      


이 상황이 뭔가 익숙했다. 내가 지금 사려는 퓨레는 엄마가 나한테 줬던 ‘유통기한 임박 상품’이었던 것이다. ‘어차피 똑같은 상품이고 유통기한 전에 먹을 수 있는데 뭐가 문제야? 무려 70프로 할인인데 여기서 아껴서 다른 좋은 거 사주면 되지.’ 혼자서 한참 변명을 하다가 결국은 사지 않았다. 난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았고, 아이를 나처럼 크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내 아이에게는 이어지지 않길


유통기한은 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있는 기한이고, 소비기한과 다르다는 걸 알고 있다. 유통기한이 며칠 지난 음식을 먹고 탈이 난 적도 없다. 하지만 유통기한 임박 상품만 먹는 사람과 어떤 것이 제일 좋은 건지 고민해서 고른 음식을 먹는 사람은 다를 것이다. 건강은 다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생각하는 마음이다. 매번 제일 저렴한 음식만 먹는 사람이 스스로를 귀하게 여길 수 있을까?           


엄마에게 사랑과 기대를 받으면서 컸지만 스스로를 소중하게 대하는 법을 배우지는 못했다. 나 자신에게 돈을 아끼고 마음을 아끼며 살다 보니 이제는 아이에게까지 똑같이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임신 중에 비싼 과일과 소고기를 매일 사 오는 남편을 나무라고, 출산 전 마지막 음식은 할인쿠폰으로 무한리필 돼지갈비를 먹었다. 아이에게 필요한 물건을 살 때 첫 번째 기준이 가격일 때가 많았다.


상황에 따라 돈을 아껴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 정도로 어렵지 않은데 임신한 딸에게 정성 들여 유통기한 임박 상품을 사주는 엄마, 임신했을 때조차 좋고 값나가는 음식을 마음껏 사 먹지 못하는 딸은 그냥 인색한 사람이다. 자신과 남에게 돈과 마음을 쓰는 데 인색한 것이다. 엄마와 나의 인색함이 아이에게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를 소중하게 대하기로 했다     



나는 아이가 무엇보다 스스로를 귀하게 대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자신이 귀한 줄을 알아서 다른 사람도 똑같이 귀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아이가 그렇게 되려면 나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걸 안다. 내가 스스로에게 좋은 대접을 해야 아이에게도 똑같이 하고, 그래야 아이가 그렇게 성장할 것이다.


이 일 이후로  ‘쇼핑핫딜방’에 설정했던 수십 개의 알람을 대부분 해지했고 방문도 거의 하지 않는다. 아이의 물건을 살 때에도 구매 목적과 품질을 가격보다 우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지만 지금껏 살아온 습관이 있기 때문에 쉽지 않을 거다. 핫딜을 보면 앞뒤 재지 않고 결제를 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를 위해서,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서 달라지겠다.


나는 그럴 만한 귀한 사람이니까. 아이도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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