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
그리운 민정님,
너무 오랜만이죠? 민정님께 정성스러운 소포와 손편지를 받고도 5개월이 지났네요. 민정님의 마음과 편지와 선물이 고마워서 진심을 가득 담은 답을 해야겠다는 결심만 가지고 있다가 오늘이 되었어요. 민정님은 괜찮다고 하겠지만 받은 편지를 다시 읽어보니 미안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네요.
민정님의 편지를 받은 때는 복직한 지 2개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잘하고 싶다는 긴장감과 약간은 들뜬 마음에 피곤한 것도 못 느끼면서 바짝 얼어 있을 때였어요. 의욕은 넘치는데 마음처럼 되지 않고, 모두 내 생각과 다르고, 휴직 3년간 무능력한 사람이 되어 버린 느낌도 들었고요.
그때 받은 민정님의 편지와 마음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요. 민정님 편지를 가방에 넣고 다녔어요. 막상 하루 종일 정신이 없어서 읽은 건 몇 번 안 되지만 내 가방에 편지가 있다는 것만으로 힘을 낼 수 있었어요.
봄에 편지를 받았는데 이제 가을이에요. 여전히 하루하루 정신없지만 1학기보다는 여유가 생겼어요. 저는 어떻게 지내냐 하면요. 6시에 아이와 같이 일어나서 밥을 먹고 어린이집 등원 및 출근 준비를 합니다. 9시에 집에서 나서서 10월부터 어린이집 통폐합으로 새로 옮긴 곳(3번째 어린이집이네요.)이 낯설어 우는 아이를 내려줍니다.(육아시간을 써서 한 시간 늦게 출근해요.) 그리고 출근했다가 4시 30분에 퇴근하면서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리고 집에 와서 마을의 밤과 홍시 채집을 가요. 집에 돌아오면 간식을 먹고, 저녁을 먹고, 놀다가 9시 반쯤 같이 잠이 듭니다. (요즘 다시 창고살롱을 해서 일주일에 1-2번 정도 늦게 자요.)
제 하루를 적어놓고 보니 단순하고 평범하고 여유마저 느껴지는데요. 저는 왜 매일 숨이 찬지 모르겠어요. 복직하고 나서 영화 <아저씨>의 대사를 자주 떠올리게 돼요. “니들은 내일만 보고 살지? 내일만 사는 놈은 오늘만 사는 놈한테 죽는다. 난 오늘만 산다.” 당장 내일 뭐할지, 주말엔 어디에 갈지, 다음 달엔 무슨 행사가 있는지 그런 생각까진 할 수가 없더라고요. 오늘만 생각하고 사니까 생각이 단순해져서 더 좋기도 하고요.
휴직 중일 때는 막연히 복직만 하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최소한 직장에서의 생활이라도요. 그런데 어느 것 하나 예전처럼 할 수 있는 건 없더군요. 독서 모임도 할 수 없고, 듣고 싶은 연수도 시간이 맞는 게 하나도 없고, 수업 준비에 들이는 시간도 예전 같을 수 없고, 육아시간을 쓰고 있으니 늘 눈치가 보이기도 하고요.
‘모든 것이 변했다’는 걸 받아들이는데 6개월 정도 걸린 것 같아요. 나도, 환경도, 일도, 모두 다요. 아이가 생겼고, 3년을 쉬었다가 복직했으니 당연한 건데 이걸 몰랐어요. 복직 후에 지금까지의 시간은 예전처럼 할 수 있다는,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럴 수 없다는 걸 깨닫는 과정이었어요.
여기저기에서 민정님의 흔적을 발견하고 반가워하곤 합니다. 에디터의 이름으로, 포토그래퍼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의 글에서, 사진에서요. 여전히 바쁘게 잘 지내시죠? 전 처음부터 민정님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지가 신기하고 궁금했는데 복직하고 지금 보니 더욱 미스터리의 영역입니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말이에요.
민정님이 여름 방학에 한번 만나자고 했는데. 이제는 겨울 방학을 기약해야 할까요. 산청까지 오는 길이 너무 먼데, 와서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해서 선뜻 언제 보자고 말하기가 어렵네요. 제가 ‘언제 밥 한번 먹자’는 관용구에도 혼자 날짜를 고르고 있는 사람이라서 더 그렇겠죠. 가만히 생각하면 참 신기해요. 민정님과 저는 아무런 접점이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만나서 서신을 주고받고, 그리워하고 있을까요. 참 좋은 인연입니다. 민정님.
2022.10.7. 가을
은진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