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시험을 본 아이에게 무엇을 칭찬해야 할까?
첫째 딸아이가 드디어 학교에서 처음 '시험'이라는 것을 오늘 본다.
물론 초등학교시절에도 수행평가라는 것을 하기도 했고, 중학교 1학년 1학기에도 수행평가라는 것을 하기는 했다. 그러나, 제대로 '시험'이라는 이름의 '시험'은 오늘 처음 본다.
그래서, 최근 한 달 정도를 아이는 집에서 시험공부라는 것을 했다.
물론 그동안에도 꾸준히 공부는 해왔다. 우리 첫째는 학교 성적을 위한 사교육은 거의 받지 않는다. 나와 아내의 나름 교육철학으로, 흔히 말하는 학원이라는 것을 거의 보내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학교에서 시험을 본다고 하니, 긴장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동안 해온 것처럼, 집에서 수학과 영어 문제집을 꾸준히 풀게 하였고, 추가로 아내는 인터넷에서 과학과 사회문제를 출력해서 풀게도 했다. 거기에 평소에는 교과서를 학교에 두고 다니는 아이에게, 금요일에 하교할 때, 교과서를 집에 가져오게 해서, 집에서 교과서를 읽게도 하였다. 어찌 보면, 아이보다 부모가 더 긴장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정말로 우리 첫째는 겉보기에는 시험을 그다지 의식하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지난 주말에도 사촌 만나서 놀면 안 되느냐고 물어봤고, 실제로 사촌이랑 만화카페에 가서, 거의 3시간을 놀고 오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자신감인지, 아니면 아직 아무 생각이 없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내가 어린 시절, 선생님들로부터 들었던, '시험기간이라고 따로 더 공부하지 말고, 평소에 꾸준히 공부하고, 시험기간에도 다름없이 공부하면 된다'는 말씀을 첫째는 그대로 실천하는 것 같았다. 물론 겉보기가 그렇다는 거다. 아마 속으로는 지도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을 것이다.
지난주에는 수능이 있었다. 올해에도 수능일은 변함없이 추웠고, 주위에 고3을 둔 부모들은 어딘가에 가서 기도하기도 하며, 수능일을 보내는 것 같았다. 이 역시 수험생 본인 못지않게 부모가 더 긴장하며 보내는 하루인 것 같았다. 난 지금도 생각한다. '수능'이라는 하루의 시험이 한 사람의 남은 인생 전체를 좌우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제도인가? 이제 평균수명이 80살이라고 하고, 아마 우리 아이들은 평균수명 100세인 시대를 살아갈 것이다. 이런데, 고작 18살에 치른 하루의 '시험'이 남은 인생을 좌우한다면, 그게 올바른 제도일까? 물론 그 하루가 그동안 학교에서 공부해 온 결과를 확인하는 것임으로 단순한 '하루'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하면, 초중고 합해서 12년 동안 공부한 결과가 남은 80년의 인생을 좌우한다는 것은 올바른 제도일까? 대안이 없다는 것은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현재의 제도가 최선인 것은 아닌 것 같다.
아이가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하려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칭찬해 주라는 말이, 언젠가 읽은 육아 관련 서적에 실려있었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은 이 책에서만이 아니라, 살아오면서 굉장히 많이 들어온 말이다. 그러나, 내가 살아오면서, 숱하게 치른 시험 중,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했던 시험은 무엇이 있었을까? 물론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 그 자체에서 얻은 것은 분명히 있었다. 인내, 꾸준함 등등.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했던 시험은 기억나지 않는다. 시험을 보고 돌아왔을 때, '그동안 수고했어'라는 말도 들어봤고, 그 시험에서 떨어졌을 때, '괜찮아, 다시 하면 되지'라는 말도 들어봤고, '괜찮아, 다른 길이 있을 거야'라는 말도 들어봤다. 그러나, 이런 말은 위로를 위한 말들이었지, 내 인생에 미친 영향은 항상 과정보다 결과가 컸다.
우리 첫째를 보면, 나와는 다른 세대이고,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며, 나와는 다른 세상을 살아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생각이 아니라,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이 아이들은 대입수능이라는 작은 문을 향해 걸어가고 있으며, 요즘은 그 문을 통과해도, 다시 혼잡한 좁은 길을 헤매며 앞으로 걸어가야 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난 믿고 싶다.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한' 세상이라고. 그래서 '결과보다는 과정을 칭찬'해줘야 한다고. 오늘 저녁에 첫째에게, '시험 잘 봤어'가 아닌, '고생한 만큼 후련하지?'라고 물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