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솔 Nov 28. 2024

17. 첫눈 오는 날

_ 즐거움 vs. 걱정. 아이는 지금에 있고, 난 내일에 있고

어제 서울지역에 첫눈이 왔다. 내 기억에 대부분의 첫눈은 진눈깨비 수준의 눈이었는데, 어제 내린 눈은 함박눈이었다. 뉴스를 보면, 서울지역 눈기록으로는 117년 만의 폭설이었다고 한다. 20cm 이상이 내렸다고 하니, 11월만이 아니라, 12월, 1월, 2월 모든 겨울을 통틀어도, 폭설일 것 같다.


어제 아침, 아침마다 깨우기 힘든 아이들인데, '첫눈이 왔는데, 쌓였어'라는 말 한마디에 벌떡 일어나서, 창문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며, 다 큰척하는 첫째도, 어리광 부리는 둘째도 모두 아직은 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을 먹으면서도, 아이들은 틈틈이 여전히 눈이 내리는지를 확인했고, 밥을 다 먹자마자 가장 먼저 챙긴 것은 눈놀이를 위한 방수장갑이었다. '우산 가져갈래?'라는 물음에 당연한 듯이, '아니, 패딩에 달린 모자 쓸 거야'라고 대답하며, 집을 출발하였다.


아이들과 다르게, 난 아침에 일어나 밖에 하얗게 쌓인 눈과, 창밖으로 펑펑 내리는 눈을 보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 길거리 미끄럽겠는데. 아이들이 미끄러져서 다치면 어떡하지?', '난 오늘 사무실을 가야 하나? 집에서 재택근무를 할까?', '내일 아침에 차량점검 예약해 놓았는데, 이렇게 계속 오면, 차량점검 연기해야 하려나?' 등등. 첫눈을 보며, 즐거움을 느끼기 전에 '걱정'과 그 '걱정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마련'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첫눈을 보며, '즐거움'을 느끼기 전에 '걱정과 대책'을 생각하게 된 것은. 그리고, 여전히 첫눈을 즐기는 우리 아이들이, 첫눈을 즐기지 못하고, '걱정'을 하게 되는 것은 앞으로 언제쯤일까? 그리고 첫눈을 즐기는 아이들과 걱정하는 나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단순히 나이의 차이일까?


아이들과 나의 가장 큰 차이는 아이들은 현재, 즉 '지금'에 있고, 난 '미래'에 있다는 사실일 것 같다. 내 걱정은 미래에 대한 것이다. 미끄러져서 넘어지면 어떡하지? 출근은 어떻게 해야 하지? 눈이 계속 오면, 내일은 또 어떡하지? 이 모든 것은 미래에 벌어질 수도 있는 일이지,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아니다.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그냥 '지금 눈이 온다'라는 단순한 사실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지금 눈이 온다'라는 현재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첫눈을 즐길 수'있다.


사실, 대부분의 걱정들은 '미래'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미래는 말 그대로 알 수 없다. 단지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런 미래를 '부정적'인 일이 일어날 것을 가정하고, 미리 그에 대한 대책을 세우려고 하고, 그 대책이 통하지 않을 것을 걱정하고, 그래서 다시 다른 대책을 생각하고. 어른들이 하는 대부분의 걱정들은 이런 것들 인지도 모른다.


반면에 아이들은 항상 '현재'에 있다. 그래서,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모든 체력을 다해서 놀 수 있고, 첫눈이 내리면, 그 눈을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으며, 혹여 어른들에게 야단을 맞은 다음에도, 바로 웃고 떠들 수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이 아이들이 가진 힘이고, 어른들은 잃어버린 능력일 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알 수 없는 미래를 꼭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차피 알 수 없는 미래이고, 내가 조절할 수 없는 미래라면,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잘 될 거라고. 물론 지금 눈앞에 벌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겠지만. 지금 눈앞에 벌어진 일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 몸과 마음을 '지금'에 두고, '지금에 최선을 다하면서', 미래는 '그래 잘 될 거야'라고 생각한다면, 나를 억누르고 있는 많은 걱정들이 사라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이들에게 공부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할 때, 항상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미래의 나'에 중심을 두고 설명한다. 커서 잘 살려면, 커서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려면, 커서 행복한 삶을 살려면, 지금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그러나, 몸과 마음이 '지금'에 있는 아이들에게 이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오늘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미래에 남들보다 잘 살기 위해서', 혹은 '알 수 없는 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의 아이들을 위해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분명한 것은 행복한 삶이란 '현재에 내 몸과 마음이 있는 삶'인 것 같은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