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경쟁에서 벗어난 헹복함
우리집은 아직 아이들의 사교육에 투자를 하지 않는다. 대신 두 딸 아이에게 들어갈 사교육비를 모아서, 2년에 한번씩 해외(유럽)에서 한달살기를 한다.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느냐고 묻는 친구들이 있지만, 우리 가족이 하는 방식은 그렇게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다. 대신 아내의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 우선, 현지의 어학연수나 무슨 캠프 어쩌구저쩌구 하는 것은 절대 등록하지 않는다. 숙소는 에어비앤비를 열심히 뒤져서, 정말 현지 주거지역의 취사시설이 갖추어진 아파트를 한달 예약한다. (유럽의 에어비앤비 숙소 중에는 한달을 계약하면, 40-50% 할인인 곳을 찾을 수 있다. 겨울이 비수기인 도시는 더 쉽게 이런 숙소를 찾을 수 있다.) 항공요금은 내가 회사 출장다니며 쌓인 마일리지를 이용한다. 한달살기 기간동안 생활은 정말 현지인들에 섞여 지낸다. 식사는 현지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동네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다가 만들어먹고, 관광지는 관광상품이 아닌, 직접 현지의 대중교통으로 가서 구경한다. 많은 시간을 현지 도시의 뒷골목 탐방이나 시장탐방에 쓰고, 아이들이 직접 현지 시장에서 물건을 사보기도 한다. 아이들이 영어를 잘 해야하지 않느냐고? 그건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그동안 살아본 곳이 파리, 피렌체, 리스본 인데, 이 도시의 관광지가 아닌 주거지의 현지인들은 영어를 잘 하지 못한다. 그런데 서로 손짓발짓하다보면, 대중교통으로 이동도 하고, 시장에서 장도 볼 수 있다. 오히려 어른보다 아이들이 당당하게 잘 물어본다. 심지어 시장에서 아이들이 알아서 덤을 받아오기도 한다. 아빠는 뭐 하냐고? 아내에게 미안하지만, 난 한달이나 휴가를 낼 수 없어서, 중간에 일주일 정도만 함께 하거나, 아예 난 못 가고, 아내가 아이들만 데리고 다녀온 적도 있다. 이렇게 하면, 홈쇼핑에서 동남아 여행상품으로 4인 가족이 다녀올 비용이면, 유럽에서 한달살기가 가능하다.
올해는 이스탄불에서 한달 살기를 하고 있다. 가족들은 2주전에 도착해서 살고 있었고, 난 어제 도착해서, 앞으로 12일정도 같이 지낼 계획이다.
올해 한달살기가 2년전과 다른 것은, 첫째딸이 중2올라갈 나이라는 것(중1부터 사춘기가 왔다.). 그리고 둘째딸도 초5올라갈 나이가 되었다는 것. 그리고 2년전에는 나는 아예 같이 지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제 난 이스탄불에 도착한지 겨우 하루 지났지만, 가장 놀란 것은 아이들의 표정이 너무 밝아졌다는 것이다. 심지어 첫째도 내 옆에 붙어서, 쉴 사이 없이 그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둘째는 말할 것도 없이 하이톤의 목소리로 즐겁게 조잘대고 있다. 2주간 무슨일이 벌어진 걸까?
한국의 학교는 아이들을 끝없이 경쟁으로 내몬다. 심지어 누가 얼마나 많은 학원을 다니는 지도 경쟁이다. 집의 경제적 수준도 경쟁이고, 부모의 직업도 경쟁이다. 이를 좀 더 몸으로 느끼는 아이와 좀 덜 느끼는 아이는 있지만, 분명히 아이들 자신과 주변의 어른들이 아이들을 경쟁에 몰아넣고 있다. 그런데, 우리 가족이 하는 한달 살기 동안, 아이들은 경쟁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방학동안 친구들은 학원을 다니며 선행학습을 하는데, 자신은 그렇지 않다는 부담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 영어 실력에 대해서는, 심지어, 자신감도 가진다. 이 세상에 영어를 못하는 사람은 많으며(심지어 유럽에도 많다), 영어를 아주 잘 하지 못하더라도, 현지에서 어울려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 한국처럼 친구는 여기에 없지만, 대신 비교하지도 비교당하지도 않는, 그리고 경쟁과 친구관계의 질서(?)에서 오는 스트레스로부터는 완전히 해방될 수 있다. 이러한 조건의 2주간이 두 딸 아이들에게 정말 아이다운 해맑은 웃음과 사춘기의 극복(?)을 허락해준 것은 아닐까?
이스탄불에 와서 보니, 아내는 몸살이 나 있었다. 몇일전에 체한 것이 낫지 않는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한달 살기를 하면서, 긴장을 많이 한 것이 원인인 것 같다. 아이들은 엄마가 외국 와서 아프니까, 나름 이것 저것 엄마를 도와주고 있었다. 상도 차리고, 치우기도 하고. 시장에서 물건사면 돈계산도 하고… ^^;; 심지어 장보면서 과자를 스스로 싼 것을 고르기도 한다.
다른 글에서, 난 가격과 비용의 차이를 이야기했었다. 우리 가족의 해외 한달살기의 비용은 얼마일까? 흑자일까? 적자일까? 아내가 몸살난 비용을 제외하면, 분명히 큰 흑자라는 생각이 든다. 아내의 몸살 비용은, 아내에게 미안하지만, 아이들이 엄마를 돕는 것을 배웠다는 측면에서 보면, 역시 흑자이다. 이제부터 할일은 내가 같이 있을 열흘 남짓의 기간을 흑자로 만드는 것이다! 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