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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테라피스트 R Nov 16. 2019

언제나 아득한 이름들이 있다

<돈황의 사랑> 윤후명

by  문학평론가 김탁환


나 역시 답사차 타클라마칸 사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실크로드에서 우리네 선조의 흔적을 찾기 위한 답사였다.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의 궁전 변화에서 조우관을 쓴 고구려인을 만났고, 중국 쿠차의 옛 성벽에서 고선지 장군의 늠름한 모습을 그렸으며, 우루무치에서 둔황까지 아홉 시간 기차를 타고 또 두 시간 버스를 달리는 동안 비단길을 걸어서 돌아온 신라승 혜초의 발바닥을 어루만졌다.

타클라마칸 사막 끝, 모래 우는 명사산을 넘으니 드디어 돈황이다. 내가 처음 ‘돈황’이라는 지명을 접한 것은 1983년 윤후명의 장편소설 <돈황의 사랑>을 읽고 나서다. 중국이 개방되기 전이었던 탓에 돈황이 과연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소설의 주인공도 이렇게 뇌까린다. 

“아무리 중요한 것일지라도 우리하고 직접 관련이 없으면 무의미하다는 거지.”

      

윤후명은 <돈황의 사랑>에서 서역과 우리네 삶의 연관을 친절하게 집어 준다. 막고굴 장경동에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되었고, 신라인들이 즐기던 다섯 놀이 중 하나인 속독이 “서역의 타슈켄트와 사마르칸트 지방에 자리잡고 있었던 나라인 소그드에서 전래한 탈춤놀이”였으며,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오랜 시가 중 하나인 「공후인」의 공후 역시 서역에서 온 악기라는 것이다.


주인공은 실직으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그 때문에 아내는 중절 수술을 하기까지 이른다. 그는 꽉 막힌 현실 속에서 사막을 걷는 사자의 환영을 본다.



“가도 가도 끝없는 허공을 사자는 묵묵히 걷고 있다. 발을 옮길 때마다 모래 소리가 들린다. 달빛에 쓸리는 모래소리인가, 시간에 쓸리는 모래소리인가, 아니면 서역 3만 리를 아득히 흘러 온 공후의 소리인가.”


<돈황의 사랑>에서는 공상으로만 추측하던 아름답고 이국적인 동네 둔황에서 나는 하룻밤을 묵었다. 그리고 어슬렁어슬렁 사자 흉내를 내며 막고굴의 벽화를 하나씩 살폈다. 237번 석굴로 들어서니 비파를 머리 뒤로 넘긴 아름다운 비천상이 나를 맞아주었다. 그 왼쪽 당나라 변화에서 조우관을 쓴 신라인을 만났다.



삼국 시대, 돈황은 갈 수 없는 땅이 아니었다. 요시미즈 츠네오의 명저 <로마문화 왕국, 신라>에서 확인되듯, 신라인들은 중국을 넘어 인도를 건너 멀리 로마의 문화를 직접 받아들였다. 그 교역에서 쉬어 가는 고을로 돈황이 자리 잡았던 것은 아닐까. 사마르칸트와 도통한 동서양의 문명교류에 우리 민족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음을 확인했다. 윤후명이 환상적으로 연결한 돈황과 우리네 삶을 이제 좀 더 사실적으로 문명 교류라는 큰 틀에서 조망할 때가 되었다.


돈황에서 서안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대학 시절 즐겨 부르던 노래 한 구절이 떠올랐다.


“길은 내 앞에 놓여 있다. 나는 안다. 이 길의 역사를. 길은 내 앞에 놓여 있다. 여기서 네 할 일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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