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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몬키 Feb 07. 2024

시작하는 연인들 1부

시켜줘, 수린이

"사주에 물이 부족해요."

역술가가 꼭 그렇게 말해서만은 아니고, 수영만 잘 할 줄 알아도 여행의 즐거움이 배는 될 거라고 늘 생각했다. 작년 이탈리아 남부에서 정말 멋진 절벽 해변엘 갔는데, 그 아래 바다로 이어지는 깊은 곳까지 서슴없이 나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수줍게 몸만 담갔다. 발밑에 뾰족한 돌이 유난히 아프더라.


한강 수영장에서도 유려한 영법으로 숙숙 나아가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런 사람들은 물도 많이 안 튄다. 수영 고수들이 일으킨 잔잔한 물결 뒤로 "프하아아압!"하며 인생 마지막 호흡을 하러 고개를 뺀 남편과 코에 물이 들어가서 잠시 김민종 포즈를 취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모르면 배우자. 아마 그게 7년 전이었지? 남편과 호기롭게 수영 초급 아침반을 끊었다가 딱 3번 나갔다.(솔직히 나는 2번으로 기억하는데, 남편은 "에이 훨씬 더 나갔지, 3번?"이란다.) 그땐 한참 아침잠이 많을 나이였다. 지금 아침 7시면 우리집은 거의 대낮인데. 아무튼 늘 마음 한 켠에 자리 잡은 수영에 대한 간절함을 이제는 풀어야했다.


정주영 회장이 소 1001마리를 몰고 와도 죄송하지만 직접 줄을 서야만 센터 입소가 가능하다. 수영 강습의 세계는 이런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특정일(보통 25일 전후)에 새벽 6시부터 현장 방문으로만 접수를 받는다. 아~ 그래서 6시에 가시게요? 그러면 대기번호 248번이세요. 마감이 빠른 초보반은 4시부터 줄을 선다. 이것이 '수케팅'이다. 인터넷 강국 대한민국에서 시스템이 없어서 몰라서 현장 접수를 고집할리 없다. 어쩌면 딱 3번만 나오고 사라질 인간인지 아닌지를 시험하는 건지도 모른다. 다 내 잘못이지만 나도 그렇겐 못하겠다. 당장 내 사주에 물을 채워줄 문턱 낮은 수영장은 정말 없는가?


있었다. 많이 낡았지만, 낡은 건 괜찮다. 물만 차있다면. 금요일 밤, 나는 당장 남편을 끌고 센터에 방문해 가격 등을 살피고 주말에는 내내 수영복을 찾아봤다. 와우. 여기도 정말 새로운 세계더라. 할말이 많지만, 이전에 사놓은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조신한 수영복은 없던 걸로 치고 몹시 화려한 수영복 2벌을 주문했다는 것만 알려둔다.


모든 게 빠르게 진행됐다. 수영장 발견, 수영복 주문, 왁싱(이건 나만 했다), 다이소 방문, 샴푸 등 소분 작업. 그리고 대망의 월요일! 저녁 8시 첫 수업을 앞두고 정말 가기가 싫어졌다. 퇴근 후 집에서 생활의 달인이나 보고 싶은 마음. 아무런 배움도 없는 안락한 평일 저녁이 갑자기 좋아보였다. 긴장되고 귀찮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스믈스믈 생겨났다. "하고 나면 엄청 뿌듯하실 거예요!" 동료가 격려해주었고 어느 덧 퇴근 시간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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