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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영이 Mar 27. 2023

[602] 외국인 이웃들과의 에피소드들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듯 그저 이웃일 뿐이라고

스마트폰도 없던, 십 년도 더 된 오래전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1.

가족과 동네 마트에 간 어느 날이었다. 한 외국인이 아버지께 아는 척을 했다. 아버지도 반갑게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에 와서 잠시 같이 일을 한 적 있는 인도인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그분께 나를 딸이라고 (My daughter) 소개했고, 그분도 내게 웃으며 인사해 주셨다. 

나도 그냥 간단히 Hello, Hi 같은 말을 하면 되는데 (아직은 어리다는 핑계를 댈 수 있는 나이였기도 하고) 어색함에 입이 굳어버린 나는 너무나 한국인스럽게, 말없이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이후 이번엔 혼자 마트에 간 날이었다. 웬 외국인이 내게 아는 척을 했다. 처음엔 알아보지 못했지만, 내가 이 동네에 인사를 하고 지낼 외국인이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내게 인사를 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바로 전에 만났던 아버지 지인이었다. 


사실 다양한 외국인들이 여럿 있는 동네이지만 그분은 인도인이라는 외형적 특성으로 특정이 됨에도 불구함에도 나는 ‘알아보지는 못했으면서’, ‘내게 인사를 했다’는 사실에 대한 추론을 통해 누구인지 짐작을 한 것이었다. 반면 그분은 그 비슷비슷한 한국인들 사이에서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해주었다. 


그분은 내게 아버지 안부를 묻고, 나도 짤막하고 어설픈 영어로 대답했다. 다른 말도 더 나눴던 거 같은데. 그렇게 잠깐의 대화를 하는 동안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시선을 엄청나게 받았다. 워낙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걸 싫어하는 나이기 때문에 그 시선을 더 잘 느낄 수 있었지만. 어쨌든 나는 ‘외국인과 대화를 하는’ 그 잠깐 동안 받는 것일 뿐이지만 이분은 항상 이런 시선을 일상적으로 받아야 하겠구나, 생각했다. 


정작 그분은 그 시선에는 이미 초탈했을 수도 있고, 초탈 이전에 (나와는 다르게) 괜찮았을 수도 있는데도. 그렇게 잠깐의 대화를 나누고 헤어졌다. 이번에는 웃으며 Bye Bye라고 인사를 했다.




2.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특히 외국인이 많은 동네였다.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여럿 있었다. 한 번은 우리 집에 가는 건 아니고, 다른 엘리베이터를 탄 일이 있다. 닫히려는 엘리베이터를 잡아탔더니 인도인(복장으로 알 수 있었다) 여자분과 그의 어린 딸이 있었다. 나는 또 “땡큐”가 나오지 않아서 웃음과 고개 꾸벅으로 감사 인사를 때웠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보니 그분보다 내가 훨씬 일찍 내릴 예정이었다.


그리고 당시 나의 집도 엘리베이터가 운행되는 층 치고는 저층에 속했기 때문에 다음 상황이 예측이 되었다. 키가 작은 어린아이들은 저 높이 있는 숫자는 보이지 않고 눈앞의 엘리베이터 문만이 보이기 때문에 문이 열리는 순간 그냥 내리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이번에도 그럴 거 같았다.



드디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내가 내리려고 하는 순간 어린아이도 함께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아니라고 해야 하는데, 이런 어린이한테 No!라고 하자니 너무 거부하는 반응인 거 같았다. 그 잠깐 사이에 많은 고민을 한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 내 뒤를 따라 내리려는 어린아이의 얼굴 앞에 손을 내저었다대충 ‘아니’라는 의미는 비슷하겠지. 그런데 뒤에 있는 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잡으며 뭐라 말하는 게 들렸다. 


바이.”

고개를 들어보니 그분이 미소를 머금고 내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게 인사를 한 거라는 걸 알았다. 

그러니까, 내가 아이의 눈앞에 말없이 손을 흔들었고, 그분은 내가 아이에게 ‘인사’를 해준 것으로 이해했고, 그러니 다시 내게 친근하게 “Bye.”라고 인사를 한 거였다. 


나의 처음 의도는 그게 아니었지만 순식간에 따뜻함과 친근함을 느꼈다. 나는 크게 웃으며 아이의 엄마에게도 인사를 하고, 아이에게도 다시 제대로 된 ‘손인사’를 해주고 내렸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말은 나누지 않아도 마음을 나눴다는 느낌. 




3. 

동네에는 거주하는 이들뿐 아니라 관광을 온 외국인도 볼 수 있었다. 스마트폰도 없던 그 시절 길을 걸어가는데 저 멀리 웬 외국인 남녀가 지도를 들고 있는 걸 보았다. 길을 물어볼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꽤나 많은 사람들이 나보다 앞서가며 그들의 앞을 지나가고 있었으므로 ‘물어보고 싶으면 저 사람들한테 물어보겠지, 굳이 나한테 묻지는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고 하던가. 그들은 자신들 옆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음에도 그 이후에 혼자 지나가는 나를 붙잡고 길을 물었다. 


지도를 펼치고 이곳을 어떻게 가냐고 (영어로) 물었다. 나도 가본 적은 있는 곳이었다. 나 역시 영어로 길을 건너서 택시를 타라고 답했다. 

정말 택시밖에 없냐고 그들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왜 그러지?) 답했다. 그들은 지도를 가리키며 지도에 이곳을 가는 버스 번호가 적혀 있다고 말했다. 


왜 그러는지는 알게 되었지만 문제는 그 버스를 탈 수 있는 정류장이 지금 서 있는 곳에서 어느 방향으로든 1km가 넘게 걸어가야 있었다. 또한 한 시간에 한 대나 올까 말까 한 노선이었다. 하지만 설명하기 귀찮았고(모르겠고) 그들도 시간을 아끼는 게 좋을 거 같아서 나는 그냥 무조건 No라고 하며 길을 건너서 택시를 타라고 말했다. 그들은 내게 예상 소요 시간과 요금도 물었고 그에 대해서도 내가 아는 선에서 적당히 답해주었다. 택시를 타면 금방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영어로 어쨌든 알려달라는 대로 다 알려줬다. 당시 내가 느낀 감상은 뿌듯함이나 이런 것보다는 ‘이따위로 말해도 소통이 되는구나.’였다.


하지만 반대의 경험도 있다. 




4. 

번화가에서 놀다가 집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번화가의 버스정류장이니 근처에 택시 정류장도 있고, 사람도 많았다. 택시 아저씨들이 왁자지껄하는 걸 듣기는 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는데, 갑자기 그 택시 기사님들이 나, 그리고 나와 함께 있던 사람을 일제히 쳐다보는 거였다. 


‘나... 뭐 잘못했어...?’


대충 파악한 상황은 이러했다.

한국말을 못 하는 외국인이 택시 기사에게 와서 뭐라 뭐라(어딘가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택시 기사님은 알아듣지 못하고.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이래? 뭐래? 왜 그래?라며 기사님들이 모여들고. 안되겠다. 젊은 사람은 무슨 말인지 알겠지. 젊은 사람에게 물어보자,라고 결정을 했다. 그리고 내가 그 젊은 사람이었던 셈이다(당연하지만 번화가 버스 정류장이니만큼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 외국인이 뭐라뭐라 말했다. 말이 정말 빨랐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암튼 중요한 건 단 하나 아니겠는가.

“Where is your destination(목적지가 어디예요)?”

이 한 마디에 그 외국인은 수많은 말을 쏟아냈다(영어를 잘 할 줄 안다고 판단했던 듯). 영어 듣기 시험이라도 치는 심정으로 집중해서 들었다. 상황은 난감했다. 

여기 근처에 자기가 전에 갔던 곳을 가려고 한다, 여기서 택시를 타고 이쪽 방향으로 가면 된다, 근데 그곳의 이름은 모른다. 근데 가다가 건물을 보면 알아볼 수는 있다. 그러니 자신을 태워서 이쪽 방향으로 가주기만 하면 된다. 


난감한 내용이었지만 그대로 택시 기사님들께 전달을 했고, 기사님들은 다들 손사래를 치며 말도 안 된다.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을, 목적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태우냐며, 기껏 태워주고 돈도 못 받으면 말도 안 통하는데 그땐 또 어떡하냐며 거절했다. 이제 그 말을 다시 그 외국인에게 전달해야 하니 더 난감했다. 다시 외국인을 쳐다봤고, 이미 전달하지 않아도 택시 기사님들의 뉘앙스와 표정과 몸짓으로 상황을 파악한 거 같았다. 아마 나의 표정에서도 드러났겠지만.

“아... 저...”

“오케이, 오케이.” 

그는 걸어가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등을 돌려 말했던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래도 내가 아는 곳에서 내가 아는 길을 물어보면 괜찮기라도 하지. 정말 곤란한 건 서울에 방문했을 때도 내게 길을 묻는 사람이 많았다는 거다. 스마트폰이 일상이 된 지금은 좀 덜하려나? 하지만 당시엔 아니었고, 나도 서울을 모르겠고 외국어도 모르겠는데 정말 그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왜 내게 길을 묻는지 난감할 때가 많았다. 공항철도에서 특히 그런 경험이 많았는데, 그래도 공항철도에서는 대체로 downstair! 또는 upstair!를 외치면 해결이 되긴 했다(공항철도역을 이용해 봤으면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5. 

한 번은 서울의 병원에 가는 길이었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출구를 나와 걸어가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내게 와서 정중하게 길을 물었다. “안녕하세요. 실례지만 여기에서 ○○병원에 가는 길을 알려주시겠어요?” 뭔가 어색했지만, 어색함보다는 정중함이 더 인상적이었다. 한국인이 한국인에게, 특히 나보다 나이 많은 남자가 나(자기보다 나이 어린 여자)에게 길을 물을 때 무례하고 말이 짧았던 적이 얼마나 셀 수 없이 많은가. 그래서 그 남성분은 다르게 느껴졌다. 마침 나도 거길 가는 길이라며, 저랑 같이 가면 된다고 답하고 함께 걸어갔다.


이 낯선 서울 땅에서 내가 아는 길을 물어봐서 도움이 됐다는 사실에 들떴던지, 나는 평소답지 않게 스몰 톡을 시도했다. “진료 보러 가시는 거예요?” 그분은 역시 웃으며 정중하게 대답했다. “예. 여기는 처음입니다.”

여기는 처음? 초진(初診)이라는 뜻인가? 하지만 그것까지 물어보기엔 너무 개인적인 질문 같았다. 또한 나의 얘기도 해야 할 것만 같았고. 나도 그냥 미소로 답하고 “오늘 날씨가 너무 춥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따위의 말이나 했다. 


그렇게 대단한 대화 없이 길을 걷는데 그분의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

“응. 지금 가는 중이야. 좋은 분 만나서 같이 가고 있어. 금방 도착할 거야.”

내가 ‘좋은 분’이라니.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어느새 병원에 도착했다. 그분이 말한 곳까지 안내해 드리고, 나는 인사를 했다.

“저는 여기서 저쪽으로 가야 해서요. 말씀하신 곳은 여기서 바로 들어가시면 돼요.”

그러자 그분은 자세를 고쳐서더니, 정말 정중하게 내게 감사 인사를 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다 보니 한국말이 서툴러서. 실수를 하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그제야 알았다. 그분이 한국 사람이 아니라는걸. 중국인? 조선족? 모르겠다. 얼굴도 정말 한국 사람처럼 생겼고, 말투는 평범했다. 아니면 편견이 덜 작용했기 때문일까?



이후에도 시간은 흘러갔다. 나는 나이를 먹었고, 내게만 길을 묻는 사람들이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상관없이) 조금 귀찮아졌으며, ‘외국인이라고 한들 한국 땅에 오면서 한국말을 이렇게까지 못하는 게 말이나 돼?’라는 마음도 자리 잡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모두에게 스마트폰이 생겼다. 한국 검색엔진이든 그들만의 커뮤니티에든 물어보면 되는 거 아니야? 검색하면 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들. 


나는 그렇게 팍팍한 인간이 되어갔다. 




6. 

어느 날 소포를 보낼 일이 있어 우체국에 갔다. 포장대에 사람이 여럿 있었고 나도 그 사이에 껴서 내가 보낼 소포를 포장하고 주소를 기입하고 있는데 계속해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그쪽을 쳐다보니 역시 포장대에 있던 외국인 여자분이 나를 쳐다보는 거였다. 

왜 쳐다보지? 

나는 남자뿐 아니라 여자의 시선을 받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이유를 알 수 없는 시선일 때에는. 유쾌하진 않았지만 포장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그 사람이 나에게 와서 말을 걸었다. 동남아 쪽 사람일까? 어설픈 한국말이었다. "받는 사람이 여기예요?”라고 했다. 

나는 한국말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왼쪽 위가 보내는 사람, 오른쪽 아래가 받는 사람이라고 대충 알려주었다. 나는 포장이 끝났으므로 우편 접수와 계산을 하고 우체국을 나서다가, 내가 알려준 말을 제대로 이해했나 싶은 마음에 그 여자 옆으로 가서 슬쩍 쳐다보았다. 

내가 말한 위치에 주소를 적고는 있는데, 맙소사. 받는 주소가 한국이 아니었다. 해외 우편물을 보낼 생각이었던 거다. 나는 당황해서 그게 아니라며, EMS 용지를 꺼내주며 여기에 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 여자분도 당황한 거 같았다. 일단 내가 아까 한 말을 번복하는 셈이기도 하고, 나는 그냥 박스에 주소를 적어서 보냈으면서?라고 생각했던 걸지도. 받는 주소가 한국이 아니고 다른 나라면 이 종이에 써야 한다고 설명을 덧붙인 뒤에 나는 우체국에서 나왔다. 




7. 

버스를 타러 버스 정류장에 가는 길이었다. 버스 정류장에 웬 외국인 남성이 초조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이쯤 되면 이제 나도 대충 각이 나온다. 나에게 뭔가 물어볼 것이라는 것을. 아니나 다를까 내게 와서 어설픈 한국말로 □□병원에 가는 길을 물었다

우리가 서있는 곳에서 □□병원에 가는 길은 정말 단순했다. 그대로 직진만 하면 되는 거였다. 쭉 가면 된다, 나는 한국말로 성의 없이 대답했다. 


그는 당황하는 게 느껴졌지만 추가로 뭘 더 물어보진 않았다. 대신 자신의 핸드폰을 열었다. 거기에 나한테 물어볼 말을 (번역기 등에) 쓰려는 건가? 싶어서 나도 그의 핸드폰 화면을 보았다. 핸드폰 화면에는 대화창이 떠 있었다. 내 앞의 사람이 ‘보낸 메시지’는 영어도 한국어도 아니었는데(내가 읽을 수 없는 언어였다), ‘받은 메시지’들은 영어였다. 그리고 받은 메시지들의 내용은 친구 누가 크게 다쳤다고, □□병원 nnnn호라고, 빨리 오라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초조해 보였구나. 모르면 몰라도 메시지 내용을 읽어서 알게 되었으면서 모르는 척할 수가 없었다. 내가 줄 수 있는 도움이 대단한 게 아니기도 하고. 나는 그에게 버스를 타고 갈 건지, 옆에 있는 스쿠터를 타고 갈 건지 물었다. 문자 그대로 직진만 하면 되는 길이지만 내가 한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서, 나의 핸드폰을 꺼내 지도 앱을 켜서 상세히 설명해 줬다. 여기가 우리가 있는 곳이야. 그리고 계속해서 직진을 하다 보면 **가 보일 텐데, 그 옆이 □□병원이야. 이런 말들. 나도 어딘가를 가던 길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설명해 주고 곧 자리를 떠야 했지만.





8. 

당근 마켓이라는 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도 몇 가지 안 쓰는 소소한 물건들을 판매하려고 판매글을 올렸다. 이후 몇 번 물건을 팔아보고 이렇게 거래하는 거구나, 슬슬 감을 잡아갔다.


어느 날, 물건을 사고 싶다는 연락이 왔는데 다짜고짜 자기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며 전화를 달라는 거였다. 요즘의 나 같으면 그러지 않을 테지만, 그때는 나도 당근 마켓이라는 걸 해본 지 얼마 안 되어서 아무 생각 없이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어투가 뭔가 어색했고, 그래서 연세가 많으신 분이라고 생각했다(폰 번호를 알려준 것도 타자가 느린 어르신이라서 그런 거라고 생각).

그리고 약속 장소에 나갔는데 상대방은 연세가 많은 분이 아니라 외국인이었다! 그래서 한국말이 서툴고 한국어로 채팅을 하는 게 서툴렀던 것이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순식간에 쿨거래를 하고 헤어졌다.

이후 다시 그때와 비슷한 물건을 올렸더니, 또 그 외국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마 내가 올리는 그것과 같은 물건들을 수집하는 것 같았다. 다시 거래 약속을 잡고 만났다. 이미 한 번 본 사이였으니 편안한 마음으로 거래를 했다.


나는 그 사람이 비슷한 물건을 계속 사는 것이 궁금했고, 그는 나에게 비슷한 물건을 더 갖고 있냐고 물으며 대화가 길어졌다. 이때 그 외국인은 발음은 어설프지만 괜찮은 한국어로 말했고, 나는 어설픈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서 대화를 했다. 첫 만남과 달리 약간의 사담을 더한 거래가 끝나고 헤어지며 내가 이렇게 말했다. 

“Take care~” 

때는 2020년. 즉 코로나 초기로 모두가 혼란스러워하던 때였으므로 덧붙인 말이었다.


그는 가려다 말고 다시 웃으며 돌아와서 내게 물었다. 아래의 대화는 백 퍼센트 한국어로 나누었다.

“외국에서 살았던 적이 있어요? 진짜 신기해요.”

“외국에 살았던 적 없어요. 뭐가 신기해요?”

“한국 사람들 좋은 사람도 많지만 아무리 좋은 사람들이라도 한국말 못 하면 일단 무시해요. 이렇게 (영어로) 말해주는 사람 거의 본 적 없어요.”

“그쪽도 나한테 영어로 안 하고 한국말로 하잖아요.”

“보통은 그걸 당연하게 생각해요.”


신기하고 이상했다. 나의 영어는 전혀 유창하지 않고 틀린 부분도 많았을 텐데. 이런 말 한마디에 이런 반응을 보일 정도라면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던 걸까. 한국에 온 지 몇 년이 됐는지를 알려주기도 했고 본국의 코로나 상황도 걱정이 많다는 등의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일회성의, 중고 거래를 위한 만남이었고 이후에 연락을 하거나 우연히 마주친 적도 없다. 





앞서 말했듯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고 길을 물어본 외국인들은 여기에 다 적을 수 없을 만큼 늘 많았고, 내가 사는 동네에도 외국인들이 많았다. 그들과 마주친 모든 경험들이 100% 유쾌했던 것은 아니다. 분명 별로인 만남도 있었지. 그렇다면 한국인들과 마주쳤을 때 나의 경험은 어떠한가? 마찬가지로 나에게 길을 물어본 한국인들도 셀 수 없이 많았는데 그들의 태도는 과연 어떠했을까?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상관없이 좋은 경험과 나쁜 경험의 비율은 비슷했던 거 같다. 내가 한국에서 한국인들과 어울려 사는 한국인인 이상, 불쾌한 인간의 절대다수는 한국인들이 차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굳이 편견을 세우고 싶지는 않다. 그냥 사람이 다 거기서 거기인 것이다.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이 여러 에피소드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여기 등장한 외국인들은 나의 친구가 아니다, 지인이라는 말조차도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이웃이라고는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저 이웃일 뿐이다. 민폐 행위를 하는 이웃이 있다면 그 사람의 국적에 상관없이 화가 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국적을 따지며 날을 세우고 적대시할 필요가 없는 것도 이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좋은 이웃을 만나는 건 기쁜 일이지만 내가 먼저 그런 좋은 이웃이 되어줄 수도 있는 거라고. 




원글: https://blog.naver.com/s_hi/222982701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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