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이스라엘의 다윗 왕이 반지 세공사를 불러 "날 위한 반지를 만들되, 거기에 내가 큰 전쟁에서 이겨 환호할 때도 교만하지 않게 하며, 내가 큰 절망에 빠져 낙심할 때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얻을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어라!"라고 지시하였다.
이에 반지 세공사는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었으나, 빈 공간에 새겨 넣을 글귀로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현명하기로 소문난 왕자 솔로몬에게 간곡히 도움을 청한다. 그때 솔로몬 왕자가 알려준 글귀가 바로...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이 글귀를 적어 넣어 왕에게 바치자, 다윗 왕은 흡족해 하고 큰 상을 내렸다고 한다.
라고 하는데- 어린 내가 본 이야기는 이렇게 상세한 이야기는 아니고, 위의 이야기도 별로 길지도 않지만 더 요약된 이야기였다. '슬플 때 보면 기뻐지고 기쁠 때 보면 슬퍼지는 문장'을 찾아오라고 했다는 이야기.
보통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은 힘든 시기를 지나는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새기면서 견디고 버티는 의미로 유명하지만 나는 그것 때문에 좋아했던 건 아니다.
나는 이 말이 처음 의도 그대로 두 가지 상황에서 모두 적용되는 문장이라서 좋아했다.
양가적인, 모순되는, 뒤집어도 말이 되는, 뭐 이런 것들을 좋아했기 때문에(지금도 이런 걸 좋아한다).
이런 이유로 좋아하긴 했지만 일상 속에서 이 말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는 순간은- 나도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힘든 순간들이었다. 힘들 때마다 이 말을 떠올렸다. 지나갈 거라고, 괜찮아질 거라고.
그렇게 좋아하는 말이었으니 당시 나의 미니홈피(싸이월드) 홈페이지 '제목'으로 설정해두기도 했다.
블로그로 친다면, (네이버 블로그의) '602의 스멀스멀 아른아른'이 들어가는 위치에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를 넣어놨다. 메인 글도 아니고 타이틀로 정했을 만큼 좋아한 말이었다. 내가 기억하기로 싸이월드 웹페이지가 사라지는 순간까지 나의 홈페이지 제목에 자리했다.
시간이 흐르고 그 말은 벽지의 무늬만큼 당연해져서 수없이 미니홈피에 들락거리면서도 딱히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
당시에는 친구들과 놀고 나면, 각자 자신의 미니홈피에 오늘 찍은 사진들을 업로드하고, 서로의 사진들을 스크랩하고, 스크랩 해온 게시글의 아래에 댓글로 코멘트를 달곤 하는 게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과 같은 일상이었다.
나처럼 사진을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만난 날이었기에 각자의 미니홈피에 많은 사진이 올라왔다. 그것들을 스크랩하고, 나도 코멘트를 달고, 친구가 어떻게 코멘트를 달았는지 궁금해서 친구의 미니홈피에 들어갔다.
내가 올렸고 친구가 퍼 온 사진들 앞에 [스크랩]이라는 말이 붙어있었다. 스크롤을 주욱 내리면 출처가 나온다.
출처: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즐겁게 놀고, 웃으며 찍힌 사진들 밑에 나온 문장.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내가 처음 이 문장을 보고 좋아했던 그 이유 그대로, 기쁠 때 보면 슬퍼지고 슬플 때 보면 기뻐지는 문장임을 새삼 떠오르게 했다.
그때 오랜만에 그 문장의 의미를 떠올렸다. 원래 이런 문장이었지. 그렇지. 이 좋은 것도 순간이구나, 지나가겠구나.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더 먹었다.
당시 나는 어떤 일 때문에 매우 속상하고 힘들어했었다. 컴퓨터 메신저를 통해 친구에게 힘들다는 이야기를 했다.
근데 남에게 털어놓을 수 있는 종류의 고민도 아니라서, 친구에게 구구절절 털어놓지도 못하고 한숨 같은 하소연만을 했다. 이야기의 기승전결도 디테일도 없는 고민 털어놓기. 듣는 이의 입장에서도 이 친구가 힘들구나 싶긴 하겠지만 딱히 도움을 줄 수 있거나 해줄 수 있는 말은 별로 없는 대화였다.
그런 대화를 하다가 이제 슬슬 자러 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대화(채팅) 중에 잠시 침묵이 찾아왔고, 침묵 뒤에 도착한 친구의 메시지.
[이것 또한]
보자마자 웃음이 나왔다. 나의 미니홈피 제목으로 너무나 오랫동안 있었기에 나와 가까웠다면 늘 봤을 그 말, 그러나 너무 당연해서 정작 나는 이제는 봐도 보이지 않고 잊고 있던 그 말.
답장을 보냈다.
[그래. 지나가겠지.]
그날 그렇게 한숨 같던 메신저 대화를 하던 건 기억이 나면서, 사실 내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힘들어했었는지 그 이유는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단 네 글자로, 그때의 나에게 너무나 적합한 위로를 해 준 친구와는 별다른 일도 없이 멀어졌다.
그렇게 다 지나간다...
그러니 그저 겸허한 마음으로 더욱더 현재에 충실하며 사는 것이 최선이겠지.
늘 순간을 소중히.
원글: https://blog.naver.com/s_hi/223305915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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