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꼬낀느 Aug 09. 2024

여름휴가, 끝이 충격적이었던 책 세 권


언젠가부터 소설 읽기를 멈추었다. ‘픽션’보다 인생이 참혹하다는 걸 보았던 지점에서 소설은 거짓이었고, 무의미했다. 대신 쉬는 시간엔 멍하니 드라마만 보았고, 그 무렵부터 한국 드라마가 비약적 성장을 해서 볼만했다. 나는 모든 한국 드라마를 섭렵했다. 어쨌거나 이야기를 좋아하는 성향이다.     


남편이 출장 갔고, 저녁 시간이 많아진 날. 나는 더위를 피해서 소설책을 잡았다. ‘요즘 드라마 볼 게 없다.’ 하고 검색을 때리니, 우습게도 몇 년 전에도 나 같은 사람이 있었다. 드라마 대신 하루에 한 권 소설책을 읽었다.

      

그리고 눈이 있다. 시력을 보호하기 위해 온라인에서 책 보는 것을 삼가기로 했다. 그래서 에어컨 켜고 시원한 데서 뒹굴뒹굴하며 “내 나름의 휴가인 게야.” 하며 종이책을 읽고, 펜으로 쓰면서 느낌을 적었다.    

우연히 잇달아 읽은 세 권의 책이 모두 끝부분에서 충격적인 결말을 보여줬다.      

     



『우리가 끝이야 It ends with us』

- 콜린 후버, 위즈덤 하우스, 2022.5.16.     


동생이 미국에서 화제가 된 아마존 베스트 셀러인 로맨스 소설이라고 해서, 가볍게 시작했다. 처음이 좀 어정쩡하면서 ‘책장 잘 넘어가게 쓴다.’ 했는데, 마지막 메시지가 강했다.     


아버지의 최악의 모습을 잠시 본 탓에 장점을 전혀 보지 못했다. 5년 동안 본 최고의 모습이 5분 동안 본 최악의 모습을 만회하지 못했다.     


부모가 아무리 자식을 잘 키워도, 이성을 잃고 날뛰는 모습을 5분만 보여준 적이 있다면 자식의 기억엔 그 기억이 더 강하게 남는다. 무섭다.     

끝내주게 멋진, 미국에서 가장 돈 잘 버는 신경외과 의사 남편이지만, “맞으면서 살아도 괜찮은 남자는 없다!”    


한국어 제목이 모호한데, 책을 다 읽고 나면 이해가 간다. 엄마와 갓 태어난 딸은 남편의, 아빠의 폭력을 이제 거부한다. 그게 아무리 본인의 상처에서 나온, 의도하지 않은 것일지라도.  

첫 부분의 연애가 달다구리해서, 내가 왜 남의 연애사를 읽고 있나 싶지만 휴가지에서 심심풀이 땅콩을 먹다 마지막에 덜컥 걸린 기분이다. 삶은 사랑이 다가 아니다.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 あなたが誰かを殺した』

- 히가시노 게이고, 북다, 2024.7.23     


최근의 베스트 셀러이다. 추리소설이라 주제를 논할 수 없는 게 유감이다.      


이렇게 오래 살아도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는 건 아니구나. 인간의 어리석음을 새삼 깨달은 기분이었다. 이 사람이면 죽여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 차리고 애들이나 똑바로 키워!”

책은 외치고 있다.

아직 한국에는 없던 상황이지만, 앞으로 얼마나 갈까. 끝이 씁쓰름하다. 다 읽고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히가시노 게이고를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다시 한번 볼만하다. 그런데, 대체 나와 같은 나이의 그는 어떻게 101권의 책을 쓸 수 있는 걸까.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동급생 Reunion』

- 프레드 울만, 열린책들, 22.9.25     

작가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곳곳에 함정처럼 배치한다. 다 읽고 나서 문득 깨닫는다. 책은 한 권의 교묘한 짜깁기이기도 하다.     


<내가 그를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는 친구>라고 쓰기 전에 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뒤에도 나는 이것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으며 내가 친구를 위해 – 그야말로 기뻐하며-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믿는다.     


책을 읽으면서 마지막 한 문장을 들추어 보지 말기 바란다. 그래야 책을 다 읽은 다음에 쉽게 내려놓을 수 없이, 다시 책 전반을 되짚어 보며 한참을 그 자리에 머물게 된다.     




덥기는 하고, 내 남루한 글쓰기에 버럭하는 시점. 

글에 진력내면서, 다시 글에 탐닉하는 게 좀 웃기기는 하지만 그래도 피서는 역시 책 읽기이다. 시간 잘 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막말 댓글에 상처는 받지 않으려 하지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