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에 배롱나무가 한창이다. 유난히 색이 강한 꽃이라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집 부근 동네 어디나 커다란 배롱나무 분홍, 흰색 꽃이 만개해 있다. 우리 집은 이층 거실 창 아래로 분홍 꽃 배롱나무를 죽 심어 아침마다 커피를 마시며 꽃을 감상한다. 마당 한쪽엔 또 다른 배롱나무 몇 그루가 우듬지에 불타는 빨강 꽃을 잔뜩 이고 있다.
“올해 꽃 지고 나면 저 우듬지는 잘라버리고 다듬어야 하는데, 꽃이 저렇게 많이 달리는데 아깝네요.”
주말 아침 우리는 두런두런 나무 이야기를 나눈다.
한 열흘쯤 전인가? 빨강 꽃 배롱나무 곁을 거니는, 무늬도 선연한 커다란 수컷 꿩을 발견했다.
“저기 봐요!”
남편을 부르는 사이에 녀석은 수풀 사이로 들어가 버렸다.
다음 날 아침에도 그 자리에서 거닐고 있는 꿩을 또 봤다.
더위가 길어져서 마당에 나가 풀 뽑을 엄두를 못 내는 사이에 담벼락 곁은 풀과 나무로 거의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얘가 들어왔다가 편안하게 산책을 즐기나 보다. 가끔 집 옆의 감귤 농장을 거닐고 있는 꿩 부부를 목격하고, 흐뭇하게 그들을 바라보며 식사를 즐기곤 했는데, 담 넘어 집 마당까지 들어온 꿩은 처음 보았다. 워낙 화다닥 사라져 버려 사진 찍을 짬도 없었다.
그날 오후 일터에 있는데, 남편에게 문자가 왔다.
- 꿩이 주차장에 있다가 내 차가 들어오니 다시 정원으로 날아갔어요. 우리 정원에 사네.
- 뭔가 먹이를 주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냉동실에 말린 새우 있는데, 그걸 좀 줘볼래요? 안 먹으면 벌레 생길까?
- 새들이 먼저 와서 먹지 않을까요?
저녁을 먹으며 둘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했다. 남편이 제안했다.
“이름을 지어 줍시다.”
“꿩돌이? 아니다. 수컷은 장끼라 부르니 장돌이로 하자.”
둘이 쿡쿡 웃으며 앞으로 그 새로운 친구를 장돌이라 부르기로 했다.
“농약 안 쳐서 먹거리도 유기농으로 안전하니 아예 자리 잡으면 좋겠네.”
우리는 공생의 삶을 꿈꾸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후 장돌이를 보지 못했다. 하기야 나는 생물을 어찌 인간이 잡을 건가. 그래도 자유롭게 살다 가끔 친구 집에 놀러 오듯 들러주면 좋겠다.
오늘도 나는 눈뜨면 장돌이가 거닐던 배롱나무 아래를 기웃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