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시간 나면 다시 가고 싶은 곳이 있다. 바삐 돌다 잠시 멈출 때 거기 가서 먹고 걷고 보고 쉬면서 충전하고 싶은, 낯설지만 익숙한 곳. 그게 나에게는 20년 동안 열 번 가까이 방문한 고베이다.
고베 재즈 스트리트는 매년 가을 고베에서 열리는 재즈 페스티벌이다. 올해 41회인데, 나는 세 번 참석했다. 올해 10월 12일과 13일 총 여덟 군데 연주회장에서 12시부터 4시까지 40분씩 유료 공연하고, 무료 스테이지도 있었다. 1일권은 사전 예매 4,100엔, 2일권은 7,700엔이다. 한국에도 좋은 재즈 축제가 많은데 못 가면서 여기 오는 이유는 딱히 축제 자체가 너무 좋기 때문은 아니다.
고베가 편하고, 마침 학생들 중간시험이 끝나는 날이고, 오는 김에 기왕이면 재즈도 듣는 것이다. 일본의 재즈 감상은 한국과 사뭇 달라 듣고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지난 토요일 나는 네 군데 연주회장을 찾아 연주를 듣고, 저녁에도 재즈클럽 Sone에서 저녁 먹으며 음악을 들었다. 정갈하고 오밀조밀한 기타노 지역의 골목들을 돌아다니며 다음 회장을 찾고, 내 단골집에서 간단히 밥 먹는 순례는 화창한 날씨만큼 기분을 한껏 높여 주었다.
일본 재즈클럽에 가면 한국과 달라서 신기하고 재미있다.
고베는 일본의 “재즈 타운”으로 유명하다. 일본 재즈의 발상지로서 고베의 역사는 1923년 일본 최초의 프로 재즈 밴드가 고베에서 공연하면서 시작되었다.
-고베 여행 공식 사이트
젊어서부터 재즈를 들었던 하루키 세대가 이제 6, 70대가 되어서도 연주를 들으러 온다. 장바구니를 들고 온 중년 아줌마부터 머리가 허연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푸르른 20대 초반 젊은이들은 거의 없다. 그 노인들이 미소를 은근히 지으면서 발을 까딱, 머리를 갸우뚱하며 얼마나 몰입하며 듣는지 보고 있는 나도 즐거워진다. 거기다 박수와 호응이 장난 아니다.
첫 연주회장에서 클라리넷과 비브라폰, 트럼펫은 피아노와 베이스와 기타의 배경 아래 돌아가며 즉흥연주를 들려준다. 아마도 70대일 원숙한 연주자가 부드럽게 들려주는 Autumn Leaves나 My blue heaven은 정겹게 관객을 하나로 모은다. 그러다 클라리넷이 한 번씩 감성을 후려치면 정신이 번쩍 든다. 참 오래간만에 잊은 줄 알았던 뭉클한 감상을 느낀다. 때로 삶은 굉장할 수 있다.
두어 군데 돌아다니다 점심을 먹는다.
“난 비밥이나 쿨재즈 좋은데, 이제 스탠더드나 부드러운 재즈는 슬슬 싫증 나네.”
함께 여행 간 녀석의 불평에 큰 연주회장을 떠나 라이브클럽 치킨 조지에 들어갔다.
“바로 이거야!”
전날 티켓을 사러 갔던 바에서 마주쳤던 피아니스트의 역동적인 즉흥연주에 우리는 함께 웃었다.
여러 연주를 들으며 둘이 이런저런 추억을 쌓고 ‘뿌듯한’ 하루를 보냈다. 또 서귀포의 어마무시하게 더운 날씨 탓에 여름내 못 걷다가 4만 보 넘게 걷고 왔다.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지난번 재즈 스트리트에서 내가 팬이 되었던 클라리넷 연주자 95세의 키타무라 에이지(北村英治)가 연주 예정이었지만, 폐에 물이 차서 담당의가 연주하지 말라 해서 못 온 것이었다. 그렇듯 모든 것은 흘러가고, 나도 언젠가 흘러갈 것이다. 그날까지 이 밝은 햇빛을 한껏 즐기면 되는 거지.
고베에 가면 Sone소네, 클럽 겟세카이(月世界), 치킨 조지, 그레이트 블루 같은 재즈 라이브 하우스를 찾아 그곳의 재즈를 즐겨보자. 대표적으로 Sone는 분위기도 좋고, 품위도 있으니 누구나 만족할 것이다. 그곳에 가서 잠시 그들의 문화를 느껴보는 것도 고단한 여정의 쉼표가 될 것이다.